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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애 통 하 는 자 (마 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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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리는 옛부터 “남자는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남자가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매우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2.우리는 또한 매우 냉정한 사람을 일컬어 “피도, 눈물도 없는 모진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눈물을 흘려야할 부분과 장소에서 적절하게 눈물을 흘릴수 있다는 것도 사람의 멋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라고 부른다.

3.오늘의 현실을 돌아보자. 과연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있는가 아니면 “원망과 증오심”에 불타는 자들이 더 많지는 않는가 사람이 원망과 증오를 갖게되는 원인은 간단하다. 눈물을 흘려야할 부분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요, 애통해야 할 사건에 대해서 애통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물은 우리의 상한 감정을 씻겨주는 치료의 역할을 해낸다. 그래서 애통은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다.

4.예수님은 천국시민의 헌장을 선포하시면서 두번째 덕목으로 “애통”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 시간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한다.

1. 애통하는 자
애통 (펜데오/ 슬퍼하다) 고통스러운 사실 또는 사건으로서 현실적인 상황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인간 관계 속에 놓여있는 불의에 대한 애통입니다.
(뤼페오/ 슬픔을 겪다) 육적으로는 사랑하는 자가 죽었을 때에 찾아오는 비통과 비탄은
입니다
영적인 애통인 펜데오는 자신의 죄책과 부족 그리고 겸손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 안타까움의 슬픔이며,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은혜가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전에 삶에 대한 애통으로 그 결과는 회개를 이루어 구원을 얻게 하지만 육적인 애통인 뤼페오는 슬픔은 찾아온 불행과 슬픔에 대한 원망이며, 슬픔과 염려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결과는 사망입니다.
뤼페오든지 펜데오든 이는 인간의 체험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아픔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은 영적인 가난이 복이 있다고 말씀 하셨을지라면 펜데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고집하며 살아왔던 이전의 사건들에게 대한 후회와 새로운 삶에 대한 다짐과 결심이 있어야 하며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주님을 바라봄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 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130:3)
야곱이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창37:34)는 슬픔은 뤼페오이지 진정한 펜데오가 아닙니다, 진정한 애통은 느헤미아가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이 큰 환란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펜데오>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느1:3-4)함 같이 자신이 죄나 다른 사람의 죄 그리고 사회와 국가의 불의나 고통을 바라보며 슬퍼하며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 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이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집이 범죄하(6)였다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바라 보는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펜데오의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앞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라(시51:17) 슬픔이 없는 곳에는 위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심령이 가난한자 임을 고백하면서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3-24)
세속적인 슬픔은 극한 슬픔으로 인하여 육체와 정신이 피폐하게 되고 급기야는 삶의 의욕을 포기하기나 상실하여 자포자기 또는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펜데오의 애통속에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임하게 되므로 심령에 평강을 이루고 영적 세계에 대한 영안이 열리므로 소망을 얻게 됩니다.
위로(파라칼레오/ 곁으로 부른다, 권고하고 격려함) 주님께서는 항상 애통하는자를 찾으시며 함께 찾아오셔서 아픔과 슬픔을 함께 겪으시며 또한 위로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을 때에 죽음에 대한 비탄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 때문에 한편에 있던 강도는 주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23:39)는 외침은 뤼페오이지만 다른편에 강도는 예수여 당신이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42)는 참된 펜데오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 주님께서 그와 함께 아픔과 고통을 당하시며 또한 위로하시고 소망의 나라를 그에게 허락하시고 상한 심령, 애통하는 심령을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와 자비의 손길 그리고 내주 하시고 동고, 동락, 동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2:25)
의롭고(디카이오스/ 공정한,정의로운) 신정 통치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
경건함(율라베스/ 신중한,두려워하다) 하나님의 명령에 행동으로 충족시키고 준수하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는자 시므온에게, 디베랴 바닷가의 근심중에 있는 베드로에게, 얍복강가에서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야곱에게 즉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고 은혜와 위로를 간절히 바라는 펜데오의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찾아 오십니다.
주님의 위로를 받기를 원한다 면은 먼저 애통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을 바라보며 힘쓰고 애쓰며 참되고 변화되어진 삶을 살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상한 심령의 골짜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로의 산 봉우리는 높아져 갈 것입니다, 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앞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주님의 위로가 우리에게 임하여 질 것입니다.
에서는 너희가 아는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도다(히12:17) 펜데오는 자신을 위하여 우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하려 함이라(고후2:4)고 하였으며 예레미야도 처녀 내 백성이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애3:48-49)
예수님과 느헤미야, 예레미야, 바울등은 자신을 위한 눈물이나 슬픔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 그리고 이웃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죄악 때문에 울며 금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다리는 펜데오입니다.
I.왜 애통하는가
A.자신을 알았기 때문이다.

1.우리는 3절의 말씀을 통하여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한 주님의 위로를 읽게 된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드릴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보일 것도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죄인”임을 알았다는 말씀이다.

2.고아로 태어나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성장한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들은 자신이 고아출신임을 알았을 때 인간으로서 가장 비참함을 느꼈노라고 고백한다. 충분히 그 심정을 이해할 만 하다. 여태까지 친부모인줄 알고 살아왔는데, 알고보니 “저 분들은 나를 키워주신 양부모였다니”-.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일 것이요, 철없이 지내온 지금까지의 모습이 한심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알고보니 나는 비참한 존재로구나”하는 심정일 것이다.

3.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성경에는 애통에 대하여 39회 언급하는데, 크게 6가지로 분류가 된다.1)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애통했다.
창37장34절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2) 생존의 위협을 당할 때 애통.
에 4장 3절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 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3) 징계로 인하여 애통.
렘 49장 3절 헤스본아 애곡할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 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서 앞뒤로 달릴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방백들이 다 사로잡혀가리로다
4) 죄 때문에.
욜 2장 12절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5)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애통.
눅 6장 25절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6) 영혼사랑의 열정때문에 애통.
고후 2장 4절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B.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애통의 눈물을 흘리자.
II.어떤 복을 받는가
위로를 받는다. 하늘로 부터 오는 위로를 받는다
시 126장 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계 7장 17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고후 1장 4절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결 론
누구에게나 슬픔은 찾아 옵니다, 가롯 유다는 은 30에 예수를 팔고서 애통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에게 찾아온 애통은 뤼페오의 슬픔이기에 애통하다가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유다의 애통은 뤼페오의 슬픔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애통은 펜데오의 아픔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이 울기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니라(눅22:61-62)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의롭게 살지 못하고, 환경이나 현실적인 삶으로 인하여 주님을 따르지 못함으로 인하여 안타까워 하는 펜데오의 아픔이 오늘 우리들의 아픔이 되어야 합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3)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애통해 하며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심령이 낮아짐에 모습으로 무릎을 끊었습니다, 이것이 복있는 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주님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애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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