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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에 가신 이유 (욘 04:9-11 눅 19: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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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활동하신 장소는 크게 두 곳으로 나타납니다. 한 곳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또 대부분의 시간 동안 활동하신 갈릴리이고, 다른 한 곳은 시간적으로는 짧지만 그 비중과 의미에 있어서는 갈릴리 못지 않게 중요한 예루살렘입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등 구원의 역사를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펼치십니다. 물론 때로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비밀로 하라고 당부하시기도 하시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고, 또 적대자도 있었지만 추종자의 기세에 눌려 별다른 반발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역의 전성기를 보내고 계셨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제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하셨습니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가서 환영받을 곳도 아닌 예루살렘으로, 있다면 예수를 반대하던 자의 본거지가 있고, 기다리고 있다면 예수의 적대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을 받고 죽게 되리라는 것을 모르실 리 없는 예수님이 왜 그런 무모한 길을 떠나셨을까요 갈릴리에 그냥 있으면 더 많은 구원사역을 더 오랫동안 하실 수 있을텐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유대인 남자라면 일 년에 한 번 예루살렘에 가야 했지만, 지난번처럼 그냥 조용히 들어가서 할 일만 하시고 조용히 나오실 수도 있었을텐데, 이번에는 왜 마치 왕이 행진하듯이 요란한 환영 가운데, 마치 제왕이 즉위하듯이 그렇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까요
가장 단순한 대답은 죽기 위해서라는 것일 겁니다. 누가복음 8:31-33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아시면서,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선지자들이 이미 기록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예수님께 맡긴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뜻에 순종해서, 죽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고 그 일이 즐겁고 편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신 장면들을 보면, 비장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도 죽음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예수님은 모든 두려움과 고통을 감수한 채 말없이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구약의 예언자 가운데 요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님과 비교가 됩니다. 특별히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지내고 나오게 된 것은, 예수님이 무덤에서 사흘을 지내시고 부활하신 것을 미리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뜻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곳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으로 가려다가 억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요나는 그리고 나서도 계속 불평과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예수님과 요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가 되는데, 특별히 이 점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비교가 됩니다. 요나는 그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것도, 그 대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부하려고 했는데, 예수님은 자기를 잡아 죽이려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손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말없이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자기의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에게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셨을까요 그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게 되어 있는 우리를 대신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위해 그 아들 예수가 예루살렘에 가신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려고, 죽음의 장소, 예루살렘에 가신 것입니다.
정말로 예루살렘은 죽음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부와 권력을 독점하던 성전 체제의 본거지요, 정점이 바로 예루살렘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율법을 독점하여 그것으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던 곳, 그뿐만 아니라 이방인이요 침략자인 로마와 결탁하여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훼손하던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이름은 있지만 죽음이 지배하던 곳, 예루살렘으로 예수는 죽기 위해 가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장소 한복판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는 바로 그 곳,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곳,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세계에 부활의 복음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퍼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가시고기라는 물고기의 전설이 있습니다. 이 물고기는 크기가 작아서 큰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곤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시고기는 온 몸이 날카로운 가시로 되어 있어서 자기를 잡아먹은 물고기 배를 가르고 나와 오히려 큰 물고기를 죽게 한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그 죽음의 세력은 예루살렘을 찾아 온 예수를 죽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덤 속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시어 오히려 그 죽음을 정복하고 말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갈릴리에서 많은 사람의 환영과 추종에 안주하지 않고, 죽음을 위하여, 그리고 그 죽음을 극복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순종 하나만 가지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종려주일을 맞는 오늘, 우리는 지금 어디쯤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세상이 혹시 예루살렘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예루살렘처럼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려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전 체제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구속하고, 억압하고,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오히려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직도 갈릴리에서 떠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이 늘었다고 해서 교회에만 파묻혀 사회를 외면하고 역사를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순종하라고 하실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 있는,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향해 고난을 받더라도, 그러다가 혹시 죽게 되더라도 떠나라고 하십니다. 거기에는 새로운 생명, 부활의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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