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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막 0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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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증거일 뿐만아니라 특권입니다. 즉,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믿음을 소유할 것이고 또 그 믿음으로 인해 세상을 이길 힘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소유’했으면서도 그 ‘능력’은 알지못합니다. 마치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다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걷지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걷게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귀신들린 자의 아비는 한결같이 예수님께 나아가면 귀신들린 아이가 고침받는다는 믿음을 소유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19절)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믿음없다’고 단정해 버린 것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의 지식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목격해 왔고 세상의 교훈과는 다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아직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행함없는 믿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믿음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그들은 믿음을 소유했으되 그 믿음은 이미 생명을 상실한 죽은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1. 그들은 믿음을 제한하였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거든”(22절)
귀신들린 자의 아비는 예수님께 나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만일 당신이 아이를 고칠 수 있다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폭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그 마음 속에는 이미 불신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실패를 명확하게 지적하였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 (23절) 믿음은 이 세상의 법이나 우리의 경험을 바라보는 시야를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을 확신하고 바라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 아비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24절) 그의 태도가 달라지니 비로소 예수님은 아이의 완전히 영혼을 치유하셨습니다.

2.그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행함없는 믿음은 기도를 회피합니다. 기도는 믿음이 현실화되는 통로입니다. 기도에 게으르면 믿음의 화석화되고 맙니다. 사단의 세력은 예수님을 믿되 기도만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믿음을 죽이는 길임을 잘 압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29절) 기도없는 믿음의 현장에서는 사단이 언제나 승리자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있는 곳에는 겨자씨만한 믿음으로도 이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합니다. 기도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날 것입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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