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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좋은 고향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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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살기 좋은 곳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어서 다른 곳으로 이사했으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주거 환경에 대한 만족도나 불만족도라는 것은 개인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곳에 대한 그리움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나라와 나라간에도 예외가 아닙니다.제 3세계나 후진국 사람들은 미국을 마치 지상 낙원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가서 살기를 소망하고 있는가 하면,미국 사람들 가운데는 구라파에 가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민간 단체 연구 기관의 하나인 “인구 위기 위원회”가 최근 작성한 세계 각국의 정치 불안을 계수화한 보고서에 의하면,정치 상태가 안정되고 살기가 평안한 나라가 일본,노르웨이,스위스,이탈리아,덴마크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그리고 최악의 국가는 모리타니아,에디오피아,자이레,부룬디,수단 등의 순이고 한국은 120개 국가 중에서 23위였다고 합니다.
밖에서 보는 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이 우리 나라는 남과 북의 긴장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국내 정치의 불안정과 이념의 대립과 통일 논의의 난맥상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안정의 각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미국 조지 타운 대학의 도널드 맥도널드 교수는 “한국민들은 통일의 결과로 빚어질 문제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일부 젊은이들은 통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시켜 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현실적으로 통일 이후에 나타나는 첫번째 결과는 아마도 엄청난 혼란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통일은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만 그러나 통일이 지상 천국의 지름길은 아닙니다.더욱이 무신론과 공산주의 혁명을 통한 통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세계적 여론 조사 기관인 갤럽이 최근 헝가리 국민 950명을 대상으로 정치 여론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에 의하면,4분의 1만이 다음 선거에서 공산당에 투표를 할 것이라고 했고 겨우 5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사회주의에 희망을 걸 수 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나라는 미국,일본,서독,영국,프랑스의 순이었고,싫어하는 나라는 소련으로 드러났습니다.
공산주의의 교조국인 소련이 공산주의 국가 국민들로부터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지목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뿐입니까 새로운 삶의 터전을 얻기 위해 통합하려는 동독과 서독인들은 무엇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공산주의보다는 민주주의가 좋고 무신론 국가보다는 유신론 국가가 더 살기 좋다는 산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상에는 이상 국가도 낙원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 16절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그것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우리에겐 두 고향이 있습니다.
본문 15-16절을 보면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두고 온 고향이 있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습니다.
두고 온 고향,떠나온 고향이란 함경도,평안도,황해도,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제주도를 망라해 태어나서 자라고 살던 곳을 말합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어느 의사 장로님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부산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부산 말씨가 아니라고 했더니 본래 태어난 곳은 평양이지만 625동란 때 피난 내려와 줄곧 부산에서 39년 동안을 살았기 때문에 부산이 고향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상에 있는 고향이란 떠날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그리고 엄밀하게 말한다면 현재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어디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난 추석을 전후해 귀성 인파로 전국이 떠들썩했었습니다.
9월 11-14일까지 나흘 동안 전국에서 무려 2,809건의 교통 사고가 발생하여 그 중 146명이 죽었고 3,594명이 부상당했습니다.그래서 어떤 신문의 칼럼은 “피로 얼룩진 귀성길이었다”고도 했습니다.
제아무리 가고픈 고향이라고 해도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가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영원한 고향은 사고로 얼룩지는 그런 고향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나라입니다.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지상에 살고 있으면서 영원한 고향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은 그 나라를 “더 나은 본향”이라고 말합니다.

2.더 나은 고향
본문 16절에서 말하는 “더 나은 본향”이란 지상의 것에 대비시키는 비교급적 표현입니다만,그러나 사실은 세상 고향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고향을 말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1)위치가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면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이란 높은 곳,고상한 곳,거룩한 곳,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향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그 위치부터가 세상 고향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생물이 있습니다.
첫째는,두더지나 지렁이나 굼벵이처럼 땅속을 헤집으며 땅속에서 사는 생물입니다.그것들은 땅 위로 나오면 죽습니다.
둘째는,개미나 뱀처럼 땅위를 기어 다니며 사는 생물입니다.그것들은 공중에 매달려 죽고 맙니다.
셋째는,새나 날아 다니는 곤충처럼 하늘을 날며 사는 것들입니다.그것들은 땅속에 묻어 놓으면 죽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에 속하는 존재여야 할까요
두더지나 지렁이처럼 땅속을 헤집고 다니며 빛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한편 땅 위에 살긴 해도 개미나 뱀처럼 한 번도 일어서지 못한 채 땅 위를 기어다니며 사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가치있는 존재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그곳을 고향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영원 지향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20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본래 바울은 유대 시민권과 로마 시민권을 함께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건 것들은 유한한 것이며 임시적인 것일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절 끝을 보면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고,마태복은 25:34을 보면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2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에비하러 가노니”라고 했고,요한계시록 21:2에서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5:1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라고 했고,“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위 말씀들에는 우리가 사모하는 고향의 특성이 드러나 있습니다.
첫째는,하나님께서 만드신 곳입니다.
둘째는,우리를 위해 만드신 곳입니다.
셋째는,그곳은 영원한 곳입니다.
넷째는,그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다섯째는,그곳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곳입니다.
사글셋방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셋집을 전전하다가 18년 만에 25평짜리 내 집을 마련한 어느 자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집을 계약하던 날 그 자매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흥분때문에 잠도 오지 않았지만,눈을 감으면 기쁨이 깨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그들은 영적 실향민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오늘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돌아갈 영원한 고향이 있다면 그는 실향민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미고 산다고 해도 일단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버리게 되면 그 집에 5일 이상 머물러 있기가 어렵습니다.
유대인은 당일로 시체를 장사했고,우리네는 3일장이나 5일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집에서 죽더라도 시체를 집에다 두지 않고 장의사로 옮긴 후 거기서 몇 날 동안 기다리다가 장지로 갑니다.
일단 죽으면 20년이나 50년을 살던 내 집이더라도 그 곳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우선 산 사람들이 가만 놔두질 않습니다.
관에 넣어 며칠 놔 두었다가 산으로 옮겨 땅에 묻어 버립니다.
꿩이나 호랑이는 박제해서 사무실이나 안방에 놔 두는 것을 보았습니다만,죽은 사람을 박제해서 세워 두거나 눕혀 두는 것을 본 일은 없습니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돌아갈 고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고향은 땅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으며,사람이 톱질하고 망치질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때부터 만드신 곳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2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라고 했고,골로새서 3:1에서 “위엣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토마스 월프(Thomas Wolfe)의 작품 가운데 다시 갈 수 없는 고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려서 고향을 떠나 크게 성공한 주인공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어느 날 그의 고향 애쉬빌(Asheville)을 찾아가지만 실망합니다.고향과 친구들이 너무나 변해 있었고 옛날의 그 고향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그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이렇게 독백합니다.
“이제 나는 고향으로 되돌아갈 순 없다.길이 있다면 나는 앞으로 가야 한다.뒤돌아가는 길은 영원히 사라졌다”
우리의 고향은 앞에 있지 뒤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향은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고향은 돌이나 나무나 흙으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고향은 사라지고 변하는 유한한 세계가 아니라 영원히 불변하는 고향입니다.
우리는 더 좋은 고향을 위해 전진하는 사람들입니다.
저 높은 곳,영원한 고향,더 좋은 고향을 향해 전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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