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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삼상 0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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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들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외에 눈에 보이는 장애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농아들의 가장 큰 문제는 보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길을 건널 때 아무리 자동차가 경적을 울려도 저들은 듣지 못함으로 알지 못합니다.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보통 다른 장애인들 보다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농아들의 불행은(그것은 참된 의미의 불행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적을 듣지 못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소리 즉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장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육적인 농아들도 있지만 영적인 농아들도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영적인 농아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조금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소중히 여기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세상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는 영적 농아들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저들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자연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속에는 우리의 생명을 위한 경고와 축복이 담겨있는데 그는 경고도 듣지 못하고 축복의 말씀도 듣지 못함으로 육적인 농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험하고도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 농아가 사실은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영적 농아가 교회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므로 모든 위험을 피하며 또한 하나님의 축복속에 넉넉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똑같은 교회안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함으로 좌충우돌하며 늘 비틀어지고 여유없는 딱딱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무엘이 살던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엘리 시대에는 영적인 농아들이 많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시대는 과연 어떠합니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러나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소중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큰 하나님의 축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영적인 청력을 한 번 테스트 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요즘음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십니까 아니면 잘 들리지 않으십니까 좋은 음악을 들을 때 감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요즈음 어떤 경우를 통해서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은혜를 받아 그 충만한 은혜가운데 빠져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그 은혜가 최고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중의 복은 좋은 귀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을 하실 때에 '들을 귀 있는자는 들을찌어다'라고 말씀을 하시곤 하셨던 것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해도 듣고 은혜받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돌을 들어 치려하는 삶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귀의 복을 받으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누구 보다도 잘 들어 늘 은혜 충만한 삶을 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화) 귀 어둡기전에 어느 목사님의 간증설교 한 할머니가 속이 아파 병원에 가셨대요. 병명은 위(胃)가 안 좋은것으로 나왔고 그래서 의사는 잔탁을 드시라는 처방을 내려 주었대요. 그런데 이 할머니, 속만 안 좋으신게 아니라 귀까지 안 좋아 잔탁을 장닭으로 잘못 알아 들은 거예요. 그래서 이 할머니는 착실하게 의사선생님이 내려준 처방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가서 장닭을 큼지막한놈으로 사와서 이왕 먹을 것 인삼까지 넣어 푹 고아 먹었대요. 안 그래도 속이 안 좋은데 기름진 닭에 인삼까지 넣었으니 탈이 날 수 밖에요. 병이 오히려 더 악화되자 이 할머니 화가 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니 선상님이 하란 대로 했는데 속이 더 아프니 어찌된 일이요 그러자 의사선생님, 드시란 약은 드셨습니까 하모!. 어떻게 드셨는데요. 인삼을 넣어 푹 고아 먹었지! 띠용--잔탁에 인삼을 넣어 고아먹었다니 기절할 일 아닌가요 들을 귀를 가지고 바르게 듣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좋은 귀를 가질 수 있는가

첫째, 말씀을 사모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주 많이 들어야만 합니다.

교포 2세들을 보면 한국말을 잘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에서 부모들은 한국말을 하지만 저들은 그 한국말을 들으면서 자라는데도 한국말을 잘 못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모에게서 듣는 한국말보다 학교나 밖에 나가서 듣는 외국어가 헐씬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1년만 나가살면 그 나라말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해외선교에 나가면 1년은 바로 그들과 함께 지내며 언어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좋고 복된 귀를 가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자주 그리고 많이 들어야만 합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에 나가 세상의 말을 듣고 하고 살다가 겨우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말을 잘 듣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의 하나님 나라 말 실력이 교포 2세들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어쨌든 일주일에 한 번만 교회에 나오는 분들은 영적인 농아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극히 예외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만 교회에 나오는데도 하나님의 음성을 잘듣는 사람이 있기도하고, 또 일주일 내내 교회에 나와 살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은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도하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경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자주 그리고 많이 듣기를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겸손한 사람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교만한 사람은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려고 하셨겠습니까 어른들이 너무 딱딱하고 교만하여졌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사람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종의 자세를 취할 때에만 들을 수 있습니다. 교회와 사람들은 진심으로 섬기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은 잘 들려집니다. 그러나 섬기는 것보다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하여 교만하여지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음성은 점점 우리 귀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늘 아이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겸손한 종이 되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행함으로 순종하여야만 합니다. 귀에 귀지가 가득차 있으면 소리를 잘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 영적인 귀지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것을 치우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가 없습니다.

장애물이 있는 결과) 낚시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귀여운 딸을 데리고 바닷가에 낚시질을 나갔다가 잘 잡히지 않아 딸은 한 바위돌위에 얹혀놓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고기를 낚 았다. 한 곳에가니까 너무 잘 잡혀서 딸 생각도 잊은 채 정신없이 고기를 낚다 가 해가 기울어져 정신을 차리고 달려와 보니 바위는 물에 잠기고 딸은 벌써 물에 떠내려가 죽고 말았다.

딸과 너무 멀리 떨어져서 딸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게 되면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수가 없 다. 내가 쾌락에 빠져 세상에 깊이 묻히게 되면 주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부르시 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회개는 장애를 없애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양심에 어긋나는 삶을 살면서 그것을 회개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 사람이 되려면 회개의 은사를 받아야만 합니다. 회개와 말씀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할 것이 있는분들이 계십니까 그것을 미루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하시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하게 되면 점점 회개할 기회와 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을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을 우리는 회개라고 한다면 회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순종하여 불순종을 쌓아두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순종과 행함이 곧 들음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말 잘들음'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순종할 때 즉 말씀을 행함으로 실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라고 할 때, 성경읽으라고 할 때, 도우라고 할 때, 저를 통해 누군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소리를 알아 들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못알아 들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에게 들려지는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도 순종하고 실천하는 자세를 갖추어야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회개와 순종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언제나 잘 들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늘 마음에 감사를 품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의 귀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립니다. 그러나 늘 마음에 불평과 원망을 품고 그것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의 귀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에서 오고 불평하는 마음은 부정적인 마음의 자세에서 옵니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라나 고생을 하면서 큰 자식들중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 가난함 속에서도 나를 키우시기 위하여 우리 부모가 얼마나 수고하고 고생하셨는가를 생각하고 부모에게 감사하고 효도하는 자식이 있는가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남들은 부모를 잘만나 잘먹고 잘입고 고생없이 자라는데 나는 부모를 잘못만나 이게 무슨 고생이냐라고 생각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늘 불평을 달고 다니는 자식이 있습니다.

언제나 보면 말 잘든는 자식은 긍정적이고 어려운 중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자식이고, 언제나 보면 말 잘 안듣는 자식은 부정적이고 밤낮 불평과 원망만을 일삼는 자식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고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눌러야만 합니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감사를 연습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엘리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때 사무엘 같은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이어져 간 것 처럼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듣는데 민감하고 예민한 사무엘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사무엘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사무엘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그 사무엘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하는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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