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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세메스의 소처럼 (삼상 0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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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아 벌써 5일째가 되었습니다. 올 한해도 하나님 의 恩惠와 祝福이 우리 교회 교우 여러분의 家庭과, 職場과 經營하시는 모든 일 위에 풍성히 臨하시기를 主의 이름으로 祝願합니다.

今年은 丁丑년 소의 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라는 동물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소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 그 무엇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동물이라'는데 特徵을 들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소는 철저히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태어나고,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存在하는 동물이다] 싶을 정도로 그 일생이 다 우리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바쳐지는 동물입니다.

지금은 우리 農村도 농업 기술이 상당히 발전해서 境遇가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사 짓는 사람들에게는 소는 정말 필수 불가결한 동물이었습니다. 농촌에서 자라신 분들은 아주 잘 압니다만, 소가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전혀 想像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논과 밭을 갈고, 무거운 짐을 싫어 나르고 하는 일들이 모두가 다 소의 몫입니다. 소가 없이는 절대로 힘든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더 이상 소에게 일을 시킬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하면, 또 어떻게 합니까 마지막에는 도살장으로 보내지고 죽여서 그 고기로 사람에게 提供됩니다. 이 고기로 제공되는 소의 각 부위를 또 하나하나 살펴보면 더욱 感動的입니다. 머리는 머릿고기로/ 살은 살코기로/ 내장은 내장탕이나 곱창 전골로/ 뼈는 사골탕으로/ 피는 선지국으로/ 꼬리는 꼬리곰탕으로/ 껍질은 가죽으로 가공하여 신발이나, 가죽 장갑 혹은 가죽옷으로 만들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배설물은 또 어떻게 하느냐 그것만은 쓸모가 없어서 버리느냐 천만의 말씀이지요 거름과 비료로 사용됩니다. 요즘에 특히 인기가 있는 유기농 농사에 이 소의 배설물은 아주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료가 됩니다.

자 그리고 보면, 소는 정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동물입니다. 100% 다 중요하고. 100%다 사람에게 유익하기만 한 동물입니다. 고로 우리는 이 소의 해를 맞으면서 다시 한번 소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알아야 하겠습니다.
한편으로 또 저는 이 소를 생각하면서, 우리 성도의 信仰 生活이 꼭 이 소와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소처럼 100% 유익하기만 한 信者-하나님의 榮光을 위해서나, 주님의 몸된 우리 교회를 위해서, 혹은 이웃의 형제들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버릴 것이란 하나도 없는 유익한 信者/ 항상 남에게 100% 유익만 줄 수 있는 그런 信者가 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입니다. 소와 같은 信者-정말 필요한 信者며/ 貴한 信者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 교회에 바로 이런 信者들이 많이많이 나올 수 있기를 여러분의 목사는 진심으로 바라며 所望해 마지 않습니다. 우선 목사인 저부터가 그래야 하겠고, 그리고 또 여러분 한분 한분 모두가 다 바로 이런 신자 되시기를 꼭 바라는 것입니다. (아멘 입니까/ 노멘)

오늘 본문 성경에도 바로 이 소에 대한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가 하나 나오고 있습니다. 곧 저 유명한 베세메스의 소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잘 주목해 보고, 이 소에게서 우리의 배울 점이 무엇인지를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本文의 背景을 정확히 알려면, 앞장인 4-5장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이 때 이 시기는 바로 사사 時代의 末期인 엘리 제사장의 시대였습니다. 當時 이스라엘은 불레셋과 한판 戰爭을 치르게 되었는데요, 이 전쟁에서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궤를 적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자고로 법궤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臨在의 상징으로서 정말 생명과도 같이 귀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이스라엘의 기적과 이적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그 법궤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법궤를 메고 강물에 들어가면 강물이 갈라졌고, 법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가면, 무슨 전쟁이든지 다 이겼습니다. 법궤 앞에는 그야말로 천하가 다 무적이요, 無所不爲 無所不能이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번만은 그 사정이 아주 달랐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 법궤를 메고 앞장서서 전쟁에 임했으나, 그러나 저들은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체, 단번에 적의 공격을 받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더 큰 불행은 그 소중한 법궤를 또한 적들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다 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정말 말할 수 없는 낭패와 수치와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은 아주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곳으로부터 발생했습니다. 곧 이스라엘로부터 법궤를 빼앗아 간 불레셋에서 바로 이 법궤로 말미암아 엄청난 큰 사고와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쩐 일인지 법궤가 가는 곳마다 아주 무서운 毒種이 생기고 전염병이 돌아서 수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어 가는 끔찍한 災殃이 계속 일어났던 것입니다.

저들은 처음에/법궤를 아스돗이라고 하는 곳-그곳은 바로 저들이 섬기는 偶像인 다곤의 神殿이 있었던 곳인데-바로 그 곳에다 법궤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바로 그 다음날 發生하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神殿에 들어가 보았더니 저들의 우상인 다곤이 목이 부러지고 팔다리가 꺾여진 체 땅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그만 기겁을 하고, 얼른 그 법궤를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가드로 옮기고 또 에그론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법궤가 가는 마다 재앙은 계속 그치지 않고 일어납니다. 무서운 毒種이 계속 생기고, 그래서 하루에 수백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막 죽어 갔습니다.

그러자 불레셋 사람들은 정말 말할 수 없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틀림없이 이 법궤로 말미암아 이런 재앙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자-그러나 이 재앙의 법궤를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함부로 잘못 다루었다가는 어떤 또다른 불상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일단 나라의 유명하다는 점쟁이들 복술가들을 다 불러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재앙의 법궤를 어떻게 처치하면 좋겠느냐'그러자 점쟁이들은 아주 정확한 의견을 냈습니다. 첫째 법궤를 즉시 다시 이스라엘로 다시 돌려보낼 것. 둘째, 둘려 보내되 그냥 보내지 말고 온갖 예의와 법도와 정성을 다 기울여서 돌려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중심이 되는 암소 두 마리와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수레에 법궤를 실어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잘 주목할 내용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신접한 무당이요 점쟁이들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까지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이시고, 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바로 이 법궤를 이끄는 암소 두 마리에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보통 여기 법궤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그리고 법궤를 이끄는 두 마리의 암소는 바로 교회를 섬겨 가는 성도들, 신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는 여기서-곧 이 법궤를 이끈 암소들에게서 매우 중요한 靈的인 교훈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使命자 곧 하나님의 일을 맡은 모든 직분 자들이 꼭 알아야 할 바른 신앙적 자세를 우리는 여기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새해의 우리 교회를 섬길 새 일군들을 새 임원들을 일부 임명하고 발표할 작정입니다만, 특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도록 직분을 맡은 자들이 반드시 듣고 배우고 마음에 새겨야 할 아주 귀한 가르침이 바로 오늘 이 벧세메스의 소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좌로 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장 갈 길을 똑바로 걸어갔다 하는 것입니다<12절의 말씀....> 사실을 알고 보면, 이 암소들은 도저히 똑바로 앞만 향해 걸어 갈 수가 없는 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젖나는 소들이었기 때문입니다<7절을 보세요..>. 일부러 새끼가 딸린 이런 젖나는 소들을 저들이 골랐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지요 소가 똑바로 가지 않고 다시 돌아오기를 은근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역시 저들은 무당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하나님의 뜻을 받들면서도-여전히 의심과 불신을 버리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혹 이 일이/ 이 모든 재앙이 다 우연이 임한 것은 아닐까 괜히 우리가 지리 짐작으로 미리 겁을 먹고, 있지도 않은 이스라엘의 神인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 일을 수행하면서도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행하지 못하고, 일종의 시험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9절 말씀을 보세요....>
'보아서-]라고 하는 말이 무었을 뜻합니까 [한번 시험 삼아 해 보아서/ 라고 하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혹 소가 똑바로 걸어가면, 정말 하나님의 神이 개입해서 그런 것이라 판단하고, 또 반대로 소가 좌로 거꾸로 돌아오거나 左로 右로 치우치기나 하면, 그 때는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우리가 하고 있었다] [우리의 그 동안의 모든 재앙은 다 우연의 산물이었을 뿐이다] 그러게 판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만 생각해 보면, 저들의 이 시험은 성질이 아주 고약한 시험입니 다. 왜 하필이면 젖나는 암소를 골랐던가 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아주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일이지요 [소는 반드시 돌아 올 것이다] 혹은 꼭돌아오기를 바라는 心情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되는 암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니 다 똑 같지 않습니까 그 母情이란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고로 암소는 자기 새끼를 생각하고 반드시 다시 돌아 올 것이다. 이렇게 저들은 믿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입니다. 또 그러기만 하면 다 모든 일을 다 우연으로 돌릴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저들이 의도한 것입니다.

사실은 때로 믿는 우리들도 이런 경향이 많이 있는 줄로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부디 바른 길을 가도록 가끔은 징계를 내리십니다. 경고의 사인도 보내십니다. 너무 잘못하면 [건강을 친다든지, 사업을 친다든지/ 혹은 자녀 문제로 속상하게 한다든지... 아무튼 작고 큰 여러 가지 경고의 사인들을 보내십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때/ 얼른 잘 깨닫긴 합니다. [아 내가 잘못해서 그렇구나/ 성수 주일을 제대로 안 지켜서 그렇지/ 혹은 십일조를 때 먹었기 때문일 거야/ 혹은 맡은 직분에 충성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얼른 잘 깨닫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면서도 마음 속 한쪽 구석에는 또 계속 의심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야, 다만 偶然일 뿐이야]/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수없이 있기 마련이지 뭐/ 괜히 내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 거야...]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이건 참 한심한 일이지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또한 우리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여러분, 부인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지요 그러다가는 정말 뜨거운 맛을 보아서야/ 그 때서야 비로서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합니다. 교회를 섬기다가 보면, 이런 사람들 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늘 강조하는 말씀입니다만,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절대로 우연이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다 뜻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필연일 뿐입니다. 결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로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하는 태도 절대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아무튼 불레셋 사람들은 이런 고약한 마음을 품고 암소들을 시험하였으나, 그러나 암소들은 결코 저들의 시험을 받지 않고 똑바로 앞만 향해 잘 걸어갔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가면서 소들이 울었다고 했습니다...음매 음매 새끼를 찾으면서 그렇게 가엽게 걸어갔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끝내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결코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혹은 精에 이끌려 뒤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똑바로, 앞만 향해 걸어가면서 자기들의 사명을 훌륭히 잘 완수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울 수가 있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좀 하려고 하면, 반드시 인간의 情에 이끌리고, 달콤한 세상의 쾌락과 유혹에 이끌리고, 혹은 여러 가지 세상의 사정들에 이끌려서 구속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핑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도는, 특히 우리 교회를 섬기는 직분을 맡은 직분자들은 절대로 이런 구속하는 것들에 얽매이거나 핑계를 삼아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암소가 그 새끼를 생각하면서도 얽매이지 않았듯이-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걸어갔듯이-우리도 그렇게 얽매이지 않고 똑바로 우리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얽매이는 것들을 훌훌 다 벗어 버리셔야만 합니다. 혹 친지의 결혼식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집안 사정 때문에, 혹은 주일에도 가게문을 열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혹은 건강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다. 이렇게 핑계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스스로 차단하고 스스로 막아 버리는 가장 어리석은 우를 범하고 만다는 사실을 또한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벧세메스 소처럼 묵묵히 자기 일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철저한 자기 희생입니다.
여기 암소들을 한번 볼까요 저 아래 14절로 내려가 보면, 저들의 마지막 운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저들은 마침내 번제의 희생 제물이 되고 말았다 하는 것입니다. 번제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올렸던 제사의 하나인데, 이는 짐승을 잡아서 그 각을 떼고 피를 뿌려서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암소들은 처절한 죽음을 맞았다 하는 뜻입니다. 어떠한 유혹도 세상의 情에도 이끌리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한 소가 마지막으로 맞이한 결과는 또한 자기 몸 전체를 다 드리는 희생적 죽음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소의 특성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정말 이 벧세메스의 암소들이야말로 끝까지 희생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일을 할 때, 오직 기억할 한가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희생하라/ 희생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를 죽이는 희생의 각오가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귀한 자기의 시간을 바치는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물질을 바치는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몸이 따르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마지막으로/ 자기의 정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어지는 희생이 있어야만 합니다....곧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만 합니다. 혹은 완전히 녹아져서 정체가 없어지고 마는 소금이 되어야만 합니다.... 아직도 자기라는 정체가 조금이라도 살아 있거나 밖으로 드러나면 그것은 교회가 바라는 희생이 아닙니다...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자기 자랑과 그리고 교만이 될 뿐입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할지라도 그런 일은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의 덕을 헤치고,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만 줄 뿐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오직 하나 희생입니다. 희생이란 다름 아닌 철저히 자기가 사라지고, 자기 이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이 베세메스의 암소처럼 완전히 죽어져서 번제로 드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말이 없이 하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혹 말이 많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하지 않습니다. 혹 시작했다 가도 즉시 중단해 버립니다... 왜냐 그 일은 100 결국 무효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것을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오직 희생입니다. 첫째도 희생, 둘째도 희생, 셋째도 희생입니다...완전히 자기가 사라지고/ 완전히 자기가 없어지고/ 죽어지는 희생입니다. 새해의 우리 교회 일군들은 꼭 이러한 사람 다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아제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이 베세메스 소처럼 하도록 합시다. 다시 반복합니다. 첫째는 어떠한 유혹에도 세상의 情에도 이끌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끝까지 감당해 가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둘째는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겸손한 태도와 자세로 합시다. 오늘도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참된 일군들을 찾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가는 사람 꼭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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