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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용서는 잊어주는데 까지이다.! (사 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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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쁘고 슬픈 추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추억은 우리의 삶에 생기를 주고 의미를 주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는 가슴아픈 추억은 우리의 오늘의 삶에 상처를 주고 살아갈 의욕조차 꺽어버 리고 맙니다. 과거의 사건을 추억하는 것은 오늘을 보다 의미있게 만든다는 것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를 낙심케 만드는 과거는 나를 파괴하여 우리를 어제의 사람으로 묶어버리고 오늘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어제에 매인 사람은 파괴적인 성격으로 공격적이 되기 쉽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공격적이 될 때는 자기학대, 자기비 하,자포자기로 흘러 자살하거나 될대로 되라는 식의 삶으로 전락합니다. 또 다른 사람 에 대하여 공격적이 될 때는 히틀러같은 살인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요즈음 밝혀 지는 자료에 의하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어릴적에 어머니와 유대인 남자와의 부 정을 목격하고 그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후에 유대인을 향한 병적인 증오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증오심은 그의 삐뚤어진 인격으로 나타나서 무고(誣辜:아무 죄 가 없음)한 사람 500만명을 단지 유대인이란 것 때문에 처참하게 죽이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인류의 비극이였던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상처받은 과거가 빚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로 인해 상처받는 생명이 없도록 살아야 한다고 외쳐댑니다. 또 다른 한편 으로는 과거에서 자유를 얻지 못할 때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 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의 자유 !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3장 12절로 14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賞)을 위 하여 좇아 가노라.

 무엇을 잊어버려야한다는 것일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잊어야할 목록을 적어보았습니다.

첫째, 성공과 자랑스러운 일을 잊으라 ! 왜냐하면 어제까지의 성공은 오늘의 우리를 십중팔구 교만으로 인도하는 패망의 선봉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일반적 으로 나도 왕년에는.... 의 추억속에 살면서 현재의 실패를 옛날의 성공으로 위안 삼아보려는 삶의 태도는 다시오지 않는 오늘 하루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 보내기 쉽상 입니다. 마치 소공원 벤취에 앉아 옛날을 색이 다 바래도록 울궈먹는 할머니 할아버지 의 하루를 보는 듯 되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젊은 날은 신속하게 날아가고, 오늘은 어제처럼 여전히 하얀 백지를 선물로 받아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제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아니라, 오늘 해가 다 가기 전 에 그려내야 할 오늘의 새 그림을 최선을 다해 그리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 실패의 아픈 추억을 잊으라 ! 인생길에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비록 어떤 일 에는 실패했고, 어떤 때는 실패했을지라도 그 때 그 일에만 실패했을 뿐 인생전체를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제의 그림은 생각 처럼 좋은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하십시다. 그렇다고해서 한장을 넘겨서 새로운 백 지를 놓고서도 어제의 실패를 되풀이 해서 그리겠다는 바보스런 고집을 부려서야 되겠 습니까 ! 국민학교 2 학년인 제 딸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다가 제 뜻대로 그려지 지 않으면 그리던 지금까지의 일은 다 잊고서 한 장을 넘겨 또 새롭게 정성을 쏟아 그 림을 그립니다.

세째, 그러나 무엇보다도 잊어버려야 하는 것은 우리의 죄의식, 죄책감 입니다.

믿음이 있다. 은혜롭다. 심령이 강건하다.

이런 표현은 까마득하게 잘 잊고 언제 그랬더냐는 식으로 산다. 다시말하자면 철 판을 두텁게 깔고 뻔뻔스럽게 살아간다는 말로 바꾸어 볼 수 있을 껏 같습니다. 믿음 이란 그 근거를 우리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실패하실 수 없으십니다. 번연히 죄가운데 빠져 아무짝 에나 쓸모없는 인생을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시작된 믿음의 길...

그래서 우리는 얼마든지 뻔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앞에 사실 내놓을 만한 그럴듯한 일을 살아본 적도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런 존재는 못될 것이 분 명합니다. 여북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잘 아시기에 세상에 의를 행하고 죄를 범치아 니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느니라. 고 못 박으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 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2 )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 사 43:25) 하나님께 돌아와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죄의 경중(輕重)을 묻지않으시고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새 사람으로 우리를 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묻지않으시는 과거를 왜 우리는 자꾸만 꺼내어 놓고 오늘을 어두운 색깔 밑으로 밀어내야하겠습니까... ! 하나님이 묻지않으시고 잊어주신 나의 과거나 이웃의 과거를 우리도 잊어야 합니 다. 과거에 잡혀사는 것은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이요, 그것이 바로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샌티맨탈한 인본주의적인 고뇌가 사람다운 것으 로 오해하지 마십시다. 의인은 감정과 무드로 인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고 외쳐야 합니다.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로 던지셨나이다 ! ( 사 38:17)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나이다.

(시 103:12) 라고 말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잊어주는데 까지 있다.! 30대 초반의 방황의 날들...

생각하기도 싫은 아픈 기억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했던 시간이였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성도요, 그리스도인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용서 를 외쳐도 용서가 안되어 괴롭기만 했습니다.

젊은 날의 회색빛 노트에 낙서로 그려진 단어...! 진정한 용서는 잊어주는데까지 있다는 것입니다. 이 후로 제 자신에 대해서나 다 른 사람을 향해 진정한 용서를 베풀어 보려고 잊자 ! 잊는 것이 축복이다. 잊어야한 다. 를 되풀이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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