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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눅 14: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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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한 바리새인의 두령이 안식일에 예수님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천국 잔치에 초대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Ⅰ.하나님의 잔치(15-24)

지난 시간에는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초대되어 가셔서 식사를 하시면서 ① 안식일에 고창병 든 자를 고치신 일과(1-6) ② 또, 식탁의 자리에서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상좌(上座)에 앉지 말라(7-11) ③ 또, 남을 대접할 때 그 사람이 너를 도로 청하여 갚음이 될 사람에게는 하지 말라(12-14) 예수님께서 한 두령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함께 먹던 사람 중에 하난가 하나님 나라에 떡을 먹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감탄을 했습니다. 이렇게 감탄하는 한 바리새인의 말을 근거해서 예수님께서 천국 잔치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들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자동적으로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고(계19:9) 이방인들은 거기에 초대될 자격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은 것을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려고 했는데, 여기의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유대 지역의 풍습에서는 어떤 사람이 잔치를 계획하고서 바로 손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종을 통해서 1차 통보를 하고 잔치 준비가 끝난 후 2차 통보를 하여 잔치에 초대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초청은 두 번째 초청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초청 대상자는 첫 번째 초청 때 참석하겠다고 동의한 자들입니다. 다 잔치에 오겠다고 약속을 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손님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모든 준비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 일치하게 사양을 했습니다. 오기로 했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를 했습니다. 이러할 때 정성껏 잔치를 준비한 사람에게 큰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주인이 황당하겠습니까
이들이 하나같이 사양하는 이유는 ① 밭을 샀으므로 불가불 나가 보아야겠다는 것이요 ②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감으로 못 온다는 것이요 ③ 장가들었으니 못 온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못 온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다 핑계였습니다. 꼭 그 시간에 하지 않아도 될 일들입니다.
밭을 살 때 보지도 않고 샀을 리가 없습니다. 설령 그러하고 하더라도 이미 산 그 밭은 내일도, 모래도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소를 살 때도 시험해 보지도 않고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로이 산 소들은 차후에 얼마든지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또, 결혼했으면 신부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참석해야 합니다.
신명기 24:5절에 보면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했습니다. 군대도 가지 않고, 직무도 쉬게 해서 아내를 즐겁게 하도록 했으면 이런 잔치 집에 데려가서 인사도 시키며 교제를 가지며 잔치 집에 흥겹게 놀다 오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요, 거짓말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핑계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 주인이신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큰 구원의 잔치를 배설하고 죄인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서 초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는 일에 빠져서 방주로 들어오라는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노아 시대 삶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빠져서 방주로 들어오라는 소리를 농담으로 여기며 거절하다가 모두다 물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눅17:27)
또,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에 얽매여 구원의 초청을 거절함으로 유황불에 타 죽었습니다.(창19:24-25)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절한 이유는 밭을 샀고, 소를 샀고,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못 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하는 일에 걸림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게 얼마나 위험 천만한 일입니까
소 산 것 때문에, 밭을 산 것 때문에, 장가 든 것 때문에 주의 일 못하고 주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빼앗으면 될게 아닙니까

어느 신혼부부가 결혼을 해서부터 새벽 기도회를 착실하게 나란히 나오므로 목사님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저 신혼 부부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하고 줄기차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하나님이 목사님께 “박 목사야 내가 저 가정을 축복할 터이니 너는 저 가정의 신앙을 책임지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목사님은 “예,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하신다면 그들의 신앙을 책임지지요” 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신혼 부부는 너무 가난하여서 풀빵 장사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발들일 틈조차 없는 셋방살이하는 그 집을 찾아가서 목사님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므로 심방을 하고 축복기도를 해 주고 왔습니다. 그 후부터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돈을 많이 벌어 교동 시장에 점포를 내고 포목 장사를 하는데 너무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몇 해 후 점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그 때부터 바빠서 수요일 저녁 예배에 빠지고, 새벽 기도회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뜨문뜨문하더니 결국에는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목 때는 손님 놓친다고 주일 예배를 간단히 드리고 가서 또 돈을 벌고 주일 저녁은 빼먹고 좀 더 가더니 주일 날도 빠지기 시작해서 목사님이 권유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주일 날도 부득불 사업 관계로 계원들과 놀러 가기로 했으므로 사업하기 위해서는 이런 모임에는 빠지면 안된다고 가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들을 위해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신앙을 책임지도록 했으니까 기도를 합니다. 어느 해 추석이 가까이 오자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위해 수표를 모아 두고 내일 서울에 가서 물건을 해 올 것인데 그 밤에 이 가게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서 몽땅 다 타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이웃 점포까지 탔으니까 빚 더미 위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 이튼 날 이 부부는 신혼 때처럼 나란히 새벽 기도회를 나와 앉았더랍니다. 이 예화는 침산 제일 교회 시무 하셨던 박 경남 목사님의 그 교회 교인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주님 주신 복 때문에 주의 일을 게을리 한다거나 주의 부르심에 자꾸 거절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노아 시대나 소돔 시대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 짓는 일에 몰두하느라 하나님의 이을 우선하지 않고 이런 것이 우선되고 하나님의 일이 뒤로 미루어지고 핑계를 대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면 마태복음 22:7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 진멸하고 불사르리라 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종들이 돌아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핑계를 대고 오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 주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들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
주인은 몹시 노했습니다.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은혜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할 기회를 주시지 않고 제외시켜 벼렸습니다. 그리고 분해하시며 이제 골목으로 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여기 가난한 자는 연석에 초대되지 않는 자입니다.
병신은 결혼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소경은 밭을 보러 갈 수 없는 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자는 밭갈이할 수 없는 자입니다.
이들을 청해 하나님이 잔치를 베풀고 이들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되리라 하셨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멸시를 받는 이들이요, 재물이나 권력, 명예의 유무를 막론하고 세상에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초청에 잘 응하고 소망을 하늘에 두게 되었습니다.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 든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자 된 자들입니다. 과연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를 빠져나가기 보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주인의 명령을 받은 종들은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을 다니며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왔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자리가 남았습니다. “이 때 주인은 종들에게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
주인은 빈 자리를 그냥 두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강권해서 데려와 내 집을 채우라고 명했습니다. 강권하다(compel people to come in)는 말은 “억지로 청한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청해서라도 그들을 데려와 잔치에 참석케 하라고 명했습니다. 억지로라도 청해 오기를 명하는 이 주인의 마음은 한 영혼이라도 더 천국 잔치에 참여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베드로후서 3:8,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거시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도 멸망 받기를 원하지 않고 다 구원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주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해야 거기에 축복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는 강권하여 데려다 주의 집을 채우는 종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지고 빈 자리가 많습니다. 전도하여 이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전에 청하였던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자의 결국이 이러합니다.

Ⅱ.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25-35)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의 두령의 집에서 나오셔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이 때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갔습니다. 길을 가시면서 조금 전에 바리새인의 집에서 하시던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제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조금 전에 청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거절하고 오지 않는 것은 소유 관리 때문이요, 밭을 보고,. 소리를 시험해 보고, 아내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하지 못하므로 우선 순위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1) 우선 순위의 삶(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못하리라”
여기 “미워한다”는 것은 우선 순위를 말합니다. 마태 10:37절:“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했습니다. 앞에서 초청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기보다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 든 것, 인간사가 우선이 되었습니다. 이런 자는 제자가 되지못하고(26) ........ 되지못하리라(27) 했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못하리라
여기 “자기 십자가”는 남이 대신 져 줄 수 없는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남이 할 수 없는 한가지 사명들을 다 받았습니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입니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여자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독일에서 그 좋은 조건을 다 포기하고 아프리카 카메훈으로 갔는데 그가 처음 당한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제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 선교사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는가 기도하던 중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가지 일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세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들과 같은 방법으로 산에서 나무를 해 와서 물을 떠다가 불을 지피고 세탁물을 삶아 손으로 빨래를 열심히 해서 이 사람들을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관경을 보고 있던 원주민들은 다른 선교사와는 달리 자기네와 같은 방법으로 빨래를 하고 있는 그 선교사를 보고 감동하여 그들의 집으로 초청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자녀들을 그 선교사에게 맡기게 되어서 놀라운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말라리아를 네번씩이나 겪었지만 실제로 이 고통 중에 도움을 준 사람은 선교사들이 아니라 자기가 성경을 가르쳐 준 원주민이었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질 십자가, 그것을 차장 지고 가는 것 그것이 제자요, 제자의 삶의 길입니다.

2) 버리는 삶(28-33)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은 망대를 세우거나 전쟁을 치르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망대를 세우는 자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 때 준공까지 들 예산을 하지 않겠느냐, 또 전쟁을 할 때 승산을 계산하지 않겠느냐 만약 일만을 가지고 이만을 이길 수 없으면 아직 멀리 있는 동안에 화친하지 않겠느냐 이처럼 망대를 지을 때는 물질을 쓸 생각을 하고, 전쟁에 나갈 때는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하지 않겠습니까
33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못하리라” 했습니다.
제자가 되려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버려서라도, 자기 생명을 버려서라도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제자의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맨 처음 전도사로 부임한 교회는 영주 시내에 있는 동산 교회였습니다. 이곳은 시내에서 동산처럼 되어 있어서 동산 교회라 부르는데 노인들이나 젊은이들이 벤치에 놀러 오기도 하고, 데이트를 오는 경치 좋은 곳입니다. 특히 오후 하교 길이 되면 국민학생들이 올라와서 교회 마당에서 놀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심방을 하고 오니까 학생들이 교회 마당에서 땅따먹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네모난 선을 긋고 뼘을 그려 놓고 병 뚜껑을 뚱겨서 가는 곳에 선을 긋고 3번에 뼘 안으로 들어오면 자기 땅이 되는 놀이입니다. 그런데 이 놀이를 하다가 싸움이 생겼습니다. 서로 밀고 당기고 이 땅은 내 땅이다, 이 땅은 내가 딴 땅이다 하며 싸움이 생겼습니다. 깔리고 깔고 하다가 피가 흐르는 심한 싸움판이 벌어졌습니다. 이 시끄러운 소리에 교회 사찰 집사님이 빗자루를 등 뒤에 숨기고 와서 전도사님 어쩔까요 쓸어버릴까요 하길래 그러라고 했더니 한참 내 땅이라고 싸우는데 집사님이 빗자루를 들고 썩썩 쓸면서 “야! 이놈들아 어찌하여 이 땅이 너희들 땅이냐 교회 당이지” 하며 다 쓸어 버렸습니다. 서로 자기 땅이라고 싸우던 이들은 멍하니 섰다가 툴툴 털고 내려갔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살이가 마치 소꿉을 사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들이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온갖 사기 그릇 깨어진 조각들을 가지고 살림을 삽니다. 풀을 뜯어 김치도 담고, 흙으로 밥도 짓고, 집도 짓고, 땅에다 논밭을 마련합니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담 너머 들려 오는 어머니의 부름을 따라 다 놓고 돌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닙니다. 어느 것 하나도 내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버리고 갈 것인데 33절 이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곧 땅에 것,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드는 인간사에만 소망을 두지 말고 위에서 부르시는 부름의 소망을 쫓아 사명을 감당하며 살자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짜게도 할 수 없고 땅에도 거름으로도 쓸 수 없어 버리워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참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선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쫓아야 하겠습니다. 재물도 생명도 버릴 수 있는 땅에 것보다 위에 것을 얻기 위해서는 땅에 것을 버릴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으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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