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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어 있으라 (눅 21: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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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5절에서 38절까지에는 예수님께서 종말 예언을 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공적 강화는 종말 예언으로서 <복음서에 있는 소계시록>이라 불립니다. 본문에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5-6), 종말의 징조(7-19), 예루살렘 멸망(20-24)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25-28)이 나타나므로 주의 재림을 바라보는 성도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29-36절에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전도하시는 예수님의 구체적인 삶을 봅니다.

Ⅰ.일어나 머리를 들라(20-28)

B.C 19년 헤롯 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거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예루살렘에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황금으로 덮인 성전 지붕이며 대리석 기둥으로 장엄하게 세운 성전 그리고 헌납한 순금 포도나무 등을 바라보며 제자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미석(美石)과 헌물(獻物)로 꾸며진 성전을 바라보며 감탄할 때(5, 막13:1) 예수님은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6) 하셨습니다.
그리고 20절에 예수님은 한번 더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 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A.D 70년 로마 디투스(Titus) 장군이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킴으로서 그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그 때는 유월절 기간이었으므로 세계 각처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성지 순례를 왔던 때였습니다.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유월절 때는 그 모이는 숫자가 200만에서 250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는 80리 안에 있는 유대 남자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습니다. 많은 인파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칼에 죽은 남녀노소가 110만 명이었고,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9만7천명 이었다고 합니다. 이 때, 유대 나라는 망하고 성전은 불에 타고 로마 병사들이 보석을 찾느라 돌과 돌 사이를 헤치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유대 나라는 나라 없는 민족으로 약 2,000년 동안 유리 방황했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에 겨우 나라를 건설했습니다만,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현세 종말을 말씀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준비하도록 교훈 하셨습니다.

이런 이 전쟁이 일어나거든,
① 산으로 도망할찌며,
② 성 내(城內)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③ 또, 촌(村)에 있는 자들은 성안으로 들어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날에는 ①아이 밴 자들과 ②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이 밴 자들은 도망가기가 심히 불편합니다. 또, 젖먹이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는 도망가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면 공포에 질린 어린 아이가 마구 울기 때문에 적군에게 발각되어 해를 입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예루살렘은 주후 70년 전쟁이 일어나서 110만 명이 죽고 9만7천명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24절에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에게 밟히리라” 한대로 이스라엘은 1945년까지 근 2,000년 동안 이방인들에게 나라 없는 민족으로 밟혔습니다.
이는 주후 70년의 전쟁을 보시며 예수님은 종말을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1:25절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성경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하므로 그 구원의 물줄기가 이방인에게 넘어가 이방인이 먼저 구원을 받고, 시기가 나서 유대인이 돌아오면 그때야 종말이 올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에게 밟히리라” 하셨습니다.(24)
그러므로 이 날은 형벌의 날입니다.(22)

예수님께서 재림해 오실 때는 믿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날이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던 밤에는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430년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는 해방의 날이요, 자유의 날입니다. 그러나 애굽 인에게는 장자가 죽는 무서운 심판의 날이었습니다. 죽음과 공포의 날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5-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재림해 오실 때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고,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립니다. 베드로후서 3:10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채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나리로다 했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7) 했고 계시록 1:7절에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도 볼 것이요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16,17절에 “그 날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쫓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의 재림은 우주적인 사건으로 공개적으로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일정 지역에 오시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모든 사람이 볼 것이라 했습니다. 볼 수 있게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재림의 날, 이런 주님이 오시는 날에는 “너희는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음이라” 하셨습니다.
포천청처럼 죽이려고 머리를 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믿는 신자는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구속을 바라보기 위해 머리를 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해방입니다. 자유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 자유와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Ⅱ.깨어 있으라(29-38)

예수님은 재림의 때를 무화과 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
29-31절을 보십시오.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지랑이가 일고, 개나리 꽃이 피고, 노랑 나비가 날고, 실개천에 버들강아지를 꺾어 풀 피를 불면 완연히 봄이 온 것을 압니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하셨습니다.(31)

여기 <이런 일>이란
8절 이하에 일어난 일들인데,
①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로라 할 것입니다.(8)
② 난리와 소란의 소문이 일어날 것입니다.(9)
③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입니다.(10)
④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에 큰 징조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⑤ 주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12)
⑥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넘겨주고 죽이고 하겠습니다.(16)
⑦ 예수님 이름으로 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17)
말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고 성경은 2가지를 부탁합니다.1) 첫째는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 염려로 신앙을 버릴까봐
① 방탕하지 말라
② 술 취하지 말라
③ 생활 염려로 마음을 둔하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면 그 날이 뜻 밖에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했습니다.
덫이란 촌에서 새나 쥐를 잡을 때 사용하는 “틀”입니다.
제가 어릴 때 참새를 잡으려면 바지게를 세워 놓고 막대기를 받치고 막대기에 끈을 달아 멀리서 잡아당길 수 있게 준비를 해 두고 그 아래 조나 먹이를 두면 참새 떼들이 날아듭니다. 그 때 줄을 잡아당기면 적어도 10마리 정도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참새는 모이를 먹는 데에 정신이 팔려 그만 덫에 걸린 줄도 모르고 모이에만 정신을 팔려 먹다가 죽는 모습을 봅니다.
재림 때, 사람들이 방탕에, 술에 취하는데, 일상 생활에 메여 그 일만 쫓다가 덫에 걸려 죽는 것과 같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성도는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 깨어 있으라 했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깨어 있으라”는 것은 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지 않고 깨어 할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깨어 있어야 합니까
① 장차 임할 종말을 위해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36)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라고 오늘 성경은 부탁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일입니다.
이번 부흥회를 마치면서 특별 40일 새벽기도를 할 것을 다짐하는 손을 들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손을 들지 않은 성도가 손을 잘 들지 않았지, 만약 손을 들었더라면 얼만 부담이 되었을까 손을 안 든 것을 지내 놓고 생각하여 다행으로, 은혜로 생각한다면.......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는 병행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성모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기를 “은혜 받은 자여 ....”했습니다.
은혜 받은 자, 마리아는 배가 불러오고, 부끄러워 산에 숨고, 두려워하는 그런 십자가와 해산의 수고로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참 은혜를 입은 자였습니다.
제가 신앙하기로 꾸준히 40일 새벽기도에 힘쓰고 애쓰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한 만큼 응답을 받고 축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기도에 깨어 있으십시다.

또, 이번 헌금을 드리면서 기도의 제목을 상세히 적어 내라고 하니까 거의 95%가 이런 기도의 제목이 나왔습니다.
3가지로 집약이 되는데,1)첫 번째는 <교회 부채를 정리하여 봉헌하게 해 주소서> 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도의 첫째 소원이라면 말로만 ‘주여! 부채가 정리되기를 바랍니다.’하고 헌금 봉투에만 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깨어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미 장로님들과 항존직은 할 것을 작정하고 이번 주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성도님들도 작정을 하고 이번 주부터 건축 헌금을 하도록 하십시다.
2)두 번째 기도 제목으로 <관문 교회를 부흥되게 해주소서> 였습니다.
<빈자리가 없게 해 주소서> 라고 기도했는데, 부흥되려면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빈자리를 누가 채워야 합니까
혹, 장로님들이나 집사님들이 공중(公衆) 기도할 때 주여 “빈자리가 많사오니” 하면 저는 괜히 이 오싹하고 오만 간장이 타고 듭니다. 부흥이 안되면 꼭 목사 책임인 것 같습니다. 이 빈자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구체적으로 전도하므로 이루어집니다. 이 전도는 예수님이 하셨고, 제자들을 통해 하셨고 하나님의 일군들을 통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강권해서라도 이 빈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3)세 번째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였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먼저 인사 하고, 내가 먼저 섬기면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이제 이 기도의 제목대로 내가 먼저 실천하고, 구체적으로 적용하면 교회 부채가 정리되고, 교회는 부흥되고, 우리 관문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두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주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으므로 우리가 인자 앞에 서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인생살이는 마치 양지바른 쪽에서 어린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따뜻한 봄날 태양이 동쪽에 떠오르면 동네 아이들은 하나 둘 모여서 각종 사금파리를 모아 소꿉을 사는데, 풀을 뜯어 김치를 담고, 흙으로 식량을 삼고, 조약돌로 공기 놀이를 하고, 신랑, 신부 놀이도 합니다. 한참 재미있게 놀 때면 누가 오라 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엄마는 저녁을 해 놓고 “얘! ㅇㅇ야, 그만 놀고 오너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소꿉을 살던 것을 놓고 툭툭 털고 기쁨으로 일어나 엄마, 아빠가 계시는 집으로 어서 어서 뛰어갑니다.
집에 가면 엄마가 맛있는 저녁도 해 놓고 반가이 맞아 줄 것을 알고, 또 아버지 집이 편안한 안식처로 알고 있기 때문에 뛰어갑니다. 소망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고 달려갑니다. 그러므로 기쁨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뛰어 가도록 삶을 살아갑시다. 이러하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믿음으로 산 자만이 달려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7,8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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