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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로 세운 새 언약 (눅 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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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겠습니다.
먼저는 1-13절로 한 단체에서 두 부류의 신앙 자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고, 둘째는 14-23절로 피로 세운 새 언약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구속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유다의 배신과 유월절을 준비한 제자(1-13)

[1] 가롯 유다의 배신(1-6)
1절을 보십시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웠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해 주신 날입니다. 유월절은 니산월 14일입니다.
그 날 밤에 죽음의 천사들이 애굽 집의 장자로부터 짐승의 초태생까지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 위에 바른 이스라엘 집은 아무런 해나 생명의 손상하나 없이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은 “Passover”라고 해서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공동 번역에는 <과월절>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지나간다는 뜻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어린 양을 잡아 희생을 드리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급히 애굽을 떠났기 때문에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만들어 쓴 나물과 함께 먹었던 것을 기억하고 유월절 다음 날부터, 그러니까 15일에서 21일까지 한 주간 동안은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며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이 때 호주(戶主)는 등불을 켜 들고 집안 구석구석 틈바구니를 뒤져서 최후의 적은 누룩 한 조각까지라도 다 찾아 밖으로 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출12:12-14, 레24:5-8)
당시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길을 닦고 다리를 보수하고 길가에 있는 무덤들에 흰 칠을 해서 거기 닿아서 부정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누룩을 가정에서 찾아서 없도록 했습니다. 또, 예루살렘 사방 24km(60리) 이내에 사는 유대 성인 남자는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에 와서 유월절에 참석을 해야 합니다. 해외에 흩어진 유대인들도, 유월절을 예루살렘에 와서 지키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내년에도 자기들이 예루살렘에서 또 유월절을 지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팔레스틴 총독이 케스티우스(Cestius)였는데, 유월절에 도살되는 양의 수를 조사해 네로 황제에게 보고했다고 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양의 숫자가 25만 6천 5백 마리라고 했습니다. 율법에는 유월절 때 인원수 10명당 양 한 마리씩을 잡도록 했으니까 희생된 양의 숫자 대로라면 유월절 때 예루살렘에 모인 인파는 적어도 2백 70만 명 이상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 거대한 인파가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을 때,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이들은 밤을 세워 성전에서 유월절을 준비해야 했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어떻게 하면 민중의 소란 없이 예수를 처치할까 고심을 하며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호박이 넝쿨 채로 굴러들어 왔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롯인이라 하는 유다가 이들을 찾아 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은 아주 기뻐하며 돈까지 주기로 언약을 했습니다. 이들은 가롯 유다의 환심을 사려고 물질 공세를 폈습니다. 가롯 유다는 이들의 악의에 찬 호의를 허락하고 무리가 없을 때에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았습니다.

그러면 유다가 왜, 이렇게 악한 일을 도모하게 되었을까요
이는 가롯인이라 하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3)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12사도 중에 한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보다 더 큰 은헤와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3년 동안을 예수님을 잘 따라 다녔습니다. 다른 11제자는 모두 북방 갈릴리 사람들이라서 자주 고향도 가 보고 집안에 일이 생기면 가 보기도 했으나, 가롯 유다만은 먼 남쪽 가롯 지방 사람이라서 갈 수도 없어서 가장 예수님 곁에 성실하게 따라 다녔습니다. 또,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능력을 인정하시고 돈궤까지 맡겼습니다. 가롯 유다는 얼마나 살림을 잘 둘러대며 살았는지, 어느 한 사람도 입을 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능수 능란하게 처리를 잘했습니다. 이것을 나쁜 말로 표현하면 가장 위장술을 잘 쓴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믿음이 있고, 성실하고,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 신앙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보았을 것입니다만, 예수님은 그를 아시고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요12:6) 하셨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 다니면서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항상 인간적으로 열심히하고, 사람 보기에 좋게만 위장술을 잘 썼습니다. 변화 받지 못한 허점에 사단이 들어가므로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 넘깁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요, 잘 속이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사단은 욕심쟁이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하려고 합니다.
사단은 진리에 서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 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음으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사람 앞에 인정을 받으려 함보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살펴야겠습니다. 또, 자신이 진리에 서서 순종하는가 살피고, 주님이 쓰시는 일군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 유월절을 예비한 요한과 베드로(7-13)
7절을 보십시오. 유월절 양을 잡는 무교절이 이르렀습니다. 이 날 오후에 양을 잡고 저녁에 유월절 만찬을 먹습니다. 당시 잘 사는 집들은 대게 다락방이 있었는데 유월절 기간에는 다 무료로 개방되었습니다.
당시 랍비들은 대개 이런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토의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유월절이 이르자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유월절을 예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서 유월절을 예비할까요 장소를 묻는 제자에게 성 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저가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성 내로 들어갔고, 물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 이 제자들은 그저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을 잘했습니다. 가롯 유다는 자기 생각, 자기 판단대로 욕심에 이끌려 일을 계획하고 추진했다면, 베드로와 요한은 절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습니다. 여기에 엄청남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제가 신앙하기로 참다운 신앙은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라 봅니다.

Ⅱ. 최후의 만찬(14-23)

이제 때가 이르매, 여기 “때” 라고 하는 것은 유월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석에 앉으셨습니다. 않으시자마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십자가에 고난을 받기 전에 이 유월절 먹기로 원하고 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원하고 원하였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오랫동안 이 만찬을 위해 생각하시고, 기도하시고 준비해 오셨음을 말합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참 유월절은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날에는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잔치를 벌일 것입니다.(계19:9)
이 천국 유월절을 위해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잡히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유월절이 마지막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신령한 포도주를 마시는 날까지 다시 유월절 잔을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8) 예수님은 이 유월절 만찬이 최후의 만찬인 것과 하늘 나라에서 다시 이루어질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떡은 무교병으로서 얇은 호떡과 같이 구워진 것으로서 돌아가면서 조금씩 떼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떡을 찢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찢는 십자가의 고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살이 찢기시는 것은 바로 제자들을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 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에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요16:51)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모든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 몸으로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셨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류가 받아야 할 모든 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5-6)

이 고난을 통해서 제자들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살이 찢김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맞고 예수님이 대신 찢겨 피 흘리심으로 passover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신하심으로 유월절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고난으로 우리의 죄가 가려지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후에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을 먹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이 자기의 죄 때문임을 깨닫고 마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누구든지 영생을 얻습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자기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셨음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대속의 죽음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대학생 선교회에 박 미영 자매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운명주의와 열등의식, 특히 정욕 죄로 자살을 여러 번 시도했던 분입니다. 그러나 이 분이 자기의 죄를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분에게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거짓 되고 음란하며 죄에 깊이 물든 이 사람이 십자가의 복음을 영접했을 때, 완전히 변화되어 한숨 쉬던 입술에 찬송이, 원망과 불평 속에 쌓여 있던 이가 감사와 찬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죄를 위해 살이 찢기시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말씀대로 믿으십시다. 먼지와 떼는 물로 씻을 수 있지만 죄는 보혈로,예수님의 피로 씻습니다. 내 이 더러운 죄는 예수님의 피로밖에 씻을 수 없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기념하라는 말은 원형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에 어린 양이 죽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므로 죽을 사람이 죽지 않았던 것처럼, 그래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것처럼 예수님의 피를 믿고 예수님의 살(떡)을 먹을 때(영접할 때) 죽을 사람이 죽지 않고 영생합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뗄 때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11:23-26) 사실 당시는 성경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만찬 의식, 이것이 후에 교회의 성례식이겠습니다만, 이 성만찬 의식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교회는 성찬식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그 의식 자체도 중요하지만, 의식보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이 참으로 나의 죄를 대신한 것임을 마음으로 깨닫고 새기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너무나 잘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항상 십자가 보좌 앞에 나아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구속의 사랑과 은혜를 새롭게 영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저녁을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새 언약>이란 모세가 출애굽 할 때 받은 <옛 언약>과 다릅니다.(렘31:31)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돌 판에 새기시고 짐승의 피로 인치셨습니다.(출24:7,8)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친 것입니다.

언약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계약(covenant)을 말합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세우신 것입니다. 이 언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에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히9:22) 했습니다. 죄란 끈질깁니다.
ㅇ바로 왕이 이스라엘을 내보내지 않으려고 한 것처럼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죄의 세력도 강하여 좀처럼 놓아 주려 하지 않습니다.
ㅇ그래서 어떤 이는 담배를 못 끊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죽어 갑니다.
ㅇ또, 어떤 사람은 노름에 미쳐서 재산을 다 날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다시 노름을 하지 않겠다고 머리를 깎고, 손가락 하나를 자르고도 붕대를 감고 하더랍니다.
ㅇ정욕 죄도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반복하여 죄를 지을 수록 죄의 사슬이 굵어지고 강해집니다. 그래서 삼손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빼앗기고 눈도 빼기고 죽어 갑니다. 그래서 정신을 못 차리고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처럼 죄의 사슬은 끈질깁니다.
사도 바울은 죄를 안 지려고 몸부림을 쳐도 안되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롬7:24)고 절규를 했습니다.
ㅇ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유월절 양처럼 흘리심으로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죄의 세력은 불탄 새끼줄처럼 끊어져 버립니다.
구약 성경에는 사람이 죄를 지어 사함 받는 길이 흠 없고 깨끗한 일 년 된 양을 택해 죄 지은 사람이 양의 뿔 사이에 손을 얻고 자기 죄를 고백하면 그 지은 죄가 양 머리로 갑니다. 그러면 그 양을 잡아 제단에 뿌리면 어떤 죄라도 사함을 받는데 기간은 일 년 동안입니다. 그래서 이 제사를 해마다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 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했고,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도 부정한 것을 정결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을 깨끗케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뇨(히9:13,14) 되려 반문하고 있습니다.

저 구약 성경 레위기 17:11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 조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벧전1:18,19)

대학생 성경 읽기회 선교회 선교사로 일본에 가 있는 이 은혜 선교사님은 음란과 정욕의 노예로 별별 죄를 다 지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그가 히9:18-19절의 말씀“염소와 송아지의 피로도 부정한 것을 정결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을 깨끗이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뇨” 하신 말씀을 붙잡고 새 삶을 가졌습니다. 죽은 행실 깨끗이 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했다는 신앙 간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혈의 능력을 믿고 나아 오는 자들의 모든 죄를 간과(passover)해 주십니다. 우리의 행위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 피를 보고 유월절(passover) 하십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죄를 눈감아 주시고 넘어가십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이 시간 마음 깊이 영접하십시다.
옛 언약은 행위의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범죄 하므로 그 언약이 파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여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시기 위해 자기의 피를 부으심으로서 세우신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행위에 따라 구원이 주어지고 안 주어지고가 아닙니다. 행위에 따라 파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의 피를 마음에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의 날에 그 피가 증거 되어서 그 피를 보고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죽음의 사자들이 그 피를 보고 passover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 구원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희생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괴약하고 악독한 누룩을 버리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한 삶을 통해서 영적인 무교절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고전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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