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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일을 창설하신 하나님 (창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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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이 창조의 역사라면 2장은 창조 역사의 보충 설명이며 인간 역사의 시작이 1장보다 더 세밀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2장은 주로 인간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재되고 있지만, 모든 주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집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시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으므로 이 날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들과 거룩한 성도의 사귐을 가지고 또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과 산 생애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안식일을 주신 하나님(1-3)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다 이루셨습니다.
말씀으로 첫째 날에는 빛을 만드시고, 둘째 날에는 궁창을, 셋째 날에는 땅을 만드시고 넷째 날에는 일월성신, 다섯째 날에는 어류와 조류를 만드시고 여섯째 날에는 짐승과 사람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33:6)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엿새 동안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2,3)
① 먼저는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에 이를 때에 마치니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2)
② 둘째는 이 날에 복을 주셨습니다.(3)
공동 번역에는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③ 셋째, 이 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3)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천지창조 과업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이 날에 축복하시려고 정하신 날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휴식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신을 지닌 몸이라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하면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이 날에 사람들이 쉬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도록 하나님이 이 날을 거룩히 구별하셨습니다.
거룩은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날을 축복하시려고 친히 다른 날과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에 육신적으로는 쉬고, 영적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므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서 새 힘과 만족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에게는 그저 “보기에 좋았더라” 하셨지만, 인간을 지으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또 이렇게 당신의 형상을 따라, 당신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당신이 친히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당신이 심히 좋아하는 자녀들이 당신이 친히 만든 만물을 다스리며 관리하며 누리며 사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좋으시며 보고 싶겠습니까!

제가 어릴 때는 어린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들으면 어머니는 야단을 치면서 ‘너 그러면 밥 안 준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밥을 못 얻어 먹을까 봐서 말을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거꾸로 되어 어머니가 꾸중을 하면 ‘나 밥 안 먹어!’ 라고 합니다. 그러면 극성스런 엄마는 밥 안 먹으면 어떻게 될까 봐서 밥그릇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달래 가며 먹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이 날을 구별하여 복을 준다, 축복한다 해도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달래도 안됩니다. 따라 다니면서 복을 준다고 해도 잘 안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이 날에 하나님 아버지 집에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 손잡고 데려가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구별하여 올라오라고 하신 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신의 부모와 같습니다.
그런데 왠지 요사이는 저들끼리 살기 좋아하고 부모님을 찾아뵈려고 하지 않습니다. 좌우간 가기만 가면 고추다, 배추다, 감자다, 농사지어 놓은 것 보따리 보따리 해서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날에 복을 주려고 오라는 것입니다. 가면 덕(德)이지요. 그런데 왜 가지 않으려고 합니까 부모는 농사지어 자식 주는 재미와 자식들 커 가고 잘 사는 것을 보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열심히 잘 감당하고 이레 되는 주일은 육신으로는 쉬고 영적으로는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 영적 만족과 축복을 받는 복된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Ⅱ.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4-7)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1장은 창조의 역사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이 기록됩니다만, 2장은 창조 역사의 보충 설명으로 인간 역사의 시작이 1장보다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 2장부터는 여호와(Jehova)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여호와란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출3:14), “구원의 하나님”(출6:6)이란 뜻이고,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며,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계1:18)
그래서 2장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적으로 사랑하시고 인간과 계약을 맺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 여호와란 단어가 6,823회 나옵니다만, 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서 부르는 외에는 아무도 부르지 못합니다.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를까 봐서 함부로 부르지 않은 것입니다.(3계명 때문)
그래서 성경의 사본을 기록하는 사본 기자들은 성경을 기록할 때 목욕을 하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고, 붓을 씻어 새 먹으로 썼습니다. 쓰기는 하나 결코 발음하지 않고 여호와라고 써 놓고 “야훼”라 “주”라 읽었습니다.
인간들은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이 없음으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아직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기 전 땅의 상태를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초목이 없었다는 말이나,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창조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경작해야 할 사람이 없어서 들판이나, 밭에 풀과 나무가 없었고 씨뿌리거나, 가꾸는 경작할 사람이 없어서 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인간 출현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또, 이때 땅의 상태는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노아 홍수 전에는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때는 궁창 위의 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물이 필터 역할을 해서 뜨거운 태양을 걸러서 식물인, 초목이 자랄 수 있도록 온도 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땅에서 올라온 안개가 밤이 되면 지면을 촉촉이 적셔서 식물이 자라기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들에는 초목이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않은 것은 성경이 말한 대로 경작할 사람이 없음으로 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경작할 주인공이 탄생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7절 “여호와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했습니다.
공동 번역 성경에는 당시 배경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자연이 경작할 주인공을 기다릴 때 여호와 하나님은 “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 온 땅을 적시자 야훼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경은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지면을 적셨더라” 라고 되어 있는데 공동 번역은 “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 땅을 적시자 야훼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 솟아난 물로 진흙을 이겨서 사람을 만든 것입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아름다운 토기를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 솟아난 물로 진흙을 이겨서 손수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뚱뚱한 사람의 모양도, 좀 작은 모양으로도 그리고 키가 큰 사람도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흙으로 친히 만드셨습니다. 내 코가 오뚝한 것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내 코가 돼지 코 마냥 넓적해도 하나님이 만들어 준 것이기에 감사하십시다.
7절과 19절을 대조해 보십시다.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19)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 같이 흙으로 지었습니다. 짐승도, 새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만, 사람은 당신의 형상(image), 당신의 모양(likeness)을 따라 창조하시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에 생기를 불어넣었을 때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령(living)이란 살아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란 히브리 말로 아담(히,아다마)입니다. 아담이란 흙이란 아랍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땅의 티끌” (dust from the ground)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①사도 바울은 첫사람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고전15:47)
②또,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 했습니다.(전3:20)
③시인은 우리가 진토라고 했습니다.
마치 토기 그릇이 그 수명이 다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듯이 돌아가므로 아무도 자신을 자랑하지 못합니다.(고전1:29) 그러므로 겸손해야 하고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시편 90:10절에 모세가 기도 중에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한 번 보세요. 60-70살을 살고나면 이 이마나 얼굴에 주름이 가고 볼이 들어가고, 이빨이 빠집니다. 이 몸이 흙으로 지어졌으므로 70-80년 눈, 비, 바람을 맞아서 흙에씻기고 파여서 이 이마에 골이 져서 주름이 가고 쭈굴쭈굴 하고 이빨이 빠져서 볼이 움푹 들어 가기도 하고, 눈 언저리가 푹 꺼지기도 합니다. 그것도 신속히 가니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언제 늙었는지 세월 빠르지요. 이런 인간이 창조자 하나님을 모르면 정말 불쌍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만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서 생령(living soul),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인격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오늘이라도 하나님께서 내 코에서 생기를 거두어 가시고, 오늘이라도 내 코에서 하나님의 입기운을 빼앗아 가시면, 내 영혼을 찾아가시면 내 육체는 여전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누가복음 12:16-21절에 어리석은 부자 청년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농사가 잘되어 곡간에 곡식을 잔뜩 쌓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부족하여 그 곡간을 헐고 더 큰 곡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쓸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말했습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리하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땅에만 쌓고 자기만 위해서 쓸 것을 쌓아 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은 일회적인 것입니다. 연극처럼 연습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이 고귀한 생명을 무엇을 위하여 써야 하겠습니까
썩어질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써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써야 하겠습니까
정욕을 위하여 육신을 도모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해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써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내 것도 아니요, 내 부모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며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찾으실 때 돌려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도로 찾으실 때 육체는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흙으로 돌아갈 것이요(전12:7)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전3:21, 12:7)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우리 몸으로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고후5:10) 그러므로 생명을 학대하거나 자살해도 안되고 낙태시켜도 안됩니다. 함부로 생명을 저해해서는 안됩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위하여, 내 생명의 주인을 위하여 몸과 마음과 뜻과 힘을 드리며 내 생애를 드려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계2:10)

한마디:하나님은 내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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