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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후손 (창 0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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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는 신앙 자의 후손과 불신앙 자의 후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앙 자의 후손이라면 셋의 후손(4:25-26, 5:1-32)을 말하고, 불신앙 자의 후손이란(4:16-24) 가인의 후손을 가리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죄가 들어오고 가인이 살인을 하는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인 이후 7대손(4:17-22)이 내려 갈 때 벌써 간음자도 생기고, 살인자도 생기고, 첩을 두는 못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들에게 별별 죄악 된 일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불신앙 자들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담을 통하여 신앙 자의 후손을 주십니다.
오늘은 이 신앙 자의 후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Ⅰ.신앙 자의 후손[셋의 후손](1-20)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후손을 내버려두시고 다시 아담을 통하여 신앙 자의 후손 셋의 후손을 허락하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셨습니다.
여기 사람이란 원래 히브리어로 “아담”입니다.
이 아담이 3절을 보십시오. 130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셋이라”하였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e)과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으나(1:26-27) 이제는 아담이 아담의 모양, 아담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육신을 따라 죄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을 말하여 줍니다. 곧 죄의 본성을 유전 받고 태어남을 말하여 줍니다.
아담의 후손은 가인과 아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이 가인으로부터 첫 순교를 당하자 하나님은 아벨 대신에 보상으로 셋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자녀는 가인과 아벨과 셋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아담의 여러 명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4절을 보면 아담이 셋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했습니다. 이 세 자녀들 말고도 다른 자녀들을 아담이 많이 낳았습니다. 성경은 이름들을 기록할 때 구속 역사에 필요한 인물들만 등장시켜 기록합니다.
특히, 본 장에는 족보가 나옵니다. 분명히 아담의 장자는 가인입니다. 가인이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성경에 셋의 이름이 오르도록 하셨습니다. 가인은 불신앙 자로서 하나님의 족보에서 제외되고 대신 신앙 자로서 셋이 하나님의 족보(생명록)에 오릅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성경에 여러 번 나타납니다.
가인이 아니라 아벨과 그를 대신한 셋이 선택되어 기록됩니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 선택됩니다.(창21:8,9)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됩니다.(창25:23)
므낫세가 아니라 에브라임이 선택됩니다.(출7:7)
엘리압이 아니라 다윗이 선택됩니다.(삼상16:1,13)
이와 같은 맥락에서 첫 아담이 아니라 둘째 아담(그리스도)이 선택(고전15:45)되어 구속 역사를 이끌어 나갑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고 사탄이 제아무리 계략 해도 당신 뜻을 반듯이 이루어 가시고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을 통하여 구속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은 인간 역사의 주도자이시며,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날도 당신이 만드신 족보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시고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실현해 나가십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아벨 대신에 셋을 낳고 800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고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창세기 2:16-17절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고 복을 주시며 또, 에덴 동산을 만들어 주시고 계명으로 주신 말씀이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5절을 보세요. “아담은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하였습니다.
저는 이 구절의 성경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경대로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이시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10명의 족장들이 나옵니다. 에녹을 제외한 모든 일들은 다 몇 년을 향수하고 죽었더라(5,8,11,14,17,20,27,31, 9:29) 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장들의 족보가 나옵니다.

1.아담은 셋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2.셋은 150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807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912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했습니다.

3.에노스는 게난을

4.게난은 마할랄렐을

5.마할랄렐은 야렛을6.야렛은 에녹을

7.에녹은 므드셀라를

8.므드셀라는 라멕을

9.라멕은 노아를
10.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몇 세에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고 몇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기록을 합니다.
오늘 본 장에는 그 사람들의 지나간 역사의 발자취를 말씀하여 줍니다.
발자국을 영어로 Footprint라고 합니다.
Foot는 “발”입니다. print는 “자국”을 말합니다. 그야말로 print 인쇄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고 나면 이력이 남습니다. 그 발자취가 남습니다. 그 발자취 하나 하나가 print됩니다. 어떤 Footprint를 남기겠습니까 한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 앞에 두 발자국이 인쇄되지만, 인간 역사에도 그 발자취가 남습니다. 신자의 후예로서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도록 기도합니다.

Ⅱ.신앙의 후손 에녹(21-24)

오늘 성경을 쭉 읽어 내려가노라면 21-24절까지 독특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에녹의 사건입니다.
다른 신앙의 족장들은 모두 몇 세에 누구를 낳고 몇 세를 살며 자녀를 낳고 몇 년을 향수하고 죽었더라 하고 있지만, 에녹은 죽었더라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죽었더란 말 대신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아담의 7대손 입니다. 이 에녹은 신앙의 후손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 더 신앙을 훌륭히 하다 하나님 앞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 나라까지 계속 걸어가 버린 사람입니다.
이 시간은 두 번째 믿음의 조상 에녹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며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에녹이 특별히 믿음의 생활을 잘했다고 해서 특별하게 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도 똑같이 아담의 후손으로 우리와 똑같이 육신을 입고 육정을 가지고 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18절에 성경은 야렛이 162세에 에녹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야렛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도 우리와 같이 자녀를 낳았습니다. 별다른 데가 없습니다. 21-22절을 보세요. 에녹은 65세에 므드셀라를 낳았습니다. 에녹은 므드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을 하며 “자식을 낳았으며” 했습니다.
이는 우리도 자식을 낳으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우리도 옛날 선지 에녹과 같이 이런 훌륭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성경은 보여 줍니다.
그도 육신의 부모부터 출생했고, 그도 자식을 낳아 가며 가정 생활을 똑같이 하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므로 꼭 수녀 마냥, 신부 마냥 독신으로 지내는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시집, 장가가서 가정 생활을 하며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저는 이 시간 에녹의 신앙을 몇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1)첫째,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이었습니다.
본문 가운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22,24)
그러니까 3세기를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드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식을 낳았습니다. 여러분 동행은 뜻이 맞아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뜻이 안 맞는 사람하고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뜻이 안 맞는 사람하고는 동행할 수 없습니다.
요사이 결혼을 하고도 뜻이 안 맞으니까 곧 이혼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과 뜻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하셨습니다.
자기 부인은, 자기 생각, 자기 뜻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에녹은 자기 생각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이 가능했습니다. 전혀 자기의 계획이나 뜻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드리고 그만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전합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 드리고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2)둘째,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히11:5-6)
성경에 에녹에 대한 기록이 세 곳 나옵니다. ① 본서 21-24절 ② 히브리서 11:5-6절 ③ 유다서 14,15절입니다. 이 세 곳 가운데 히브리서에 에녹은 “하나님 나라에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나 좋도록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대체로 내 뜻이 성취되고 내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빌고 그렇게 기도합니다. 나 좋도록, 내가 기쁘도록 합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에녹은 예수님과 같이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는 신앙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3)셋째,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나옵니다만, 공동 번역에는 에녹이 “300년을 하나님과 함께 살며”했고, 현대인의 성경에는 “300년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자식을 낳고” 했습니다.
지극히 친한 친구와는 깊은 교제를 가집니다. 사람들은 흔히 제일 좋은 짝을 택해서 교제를 가집니다. 낯선 사람하고는 동행을 하지 못하고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길을 걸어가며 깊은 교제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즐거운 교제를 가졌는지 시간 흐르는 줄 모릅니다.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친구 목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이 분하고 있으면 그저 좋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이 만나면 그렇게 좋습니다. 없으면 못살 것 같습니다. 어떤 땐 이런 친구가 없으면 어떻하나 할 때도 있습니다. 온갖 이야기를 다하고, 아무런 부담도 없고, 서로서로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도 함께 슬퍼하고, 어려울 때도 서로 도우며 기도합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드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함께 길을 걸어가니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어 계속 걸어가다 보니 그대로 낙원에까지 걸어가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친구와 밤늦게까지 놀다가 헤어지기가 싫어서 제가 그 집까지 바래다주다가 그 집까지 갔어요. 그래서 또 그 집에서 조금 놀다가 그 친구가 나를 바래다준다며 따라오다 또 우리 집까지 왔습니다. 또 바래다주다 친구 집까지 또 갔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함께 하다가 날을 새운 적이 있습니다.
오늘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재미있는 신앙생활, 재미있는 동행을 하다 보니 선 걸음에 그대로 낙원에까지 걸어가고 말았습니다.
거기서도 지금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킷토의 매일 성경 읽기”에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아주 재미있게 말해 줍니다.
마치 꼬마 아들의 손을 잡고 아들과 더불어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을 오르는 아버지의 예를 들고, 아버지 손에 이끌리는 아들의 예를 듭니다. 아들의 손목을 잡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온갖 것을 보여주고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고 안았다가 업었다가 놓았다가 목에 걸쳐 앉추었다가 아들이 즐겁게 웃는 일이라면 그대로 하는 아버지입니다.
또, 아버지 손에 이끌린 꼬마는 길이 험하고 날씨가 매서워도 길을 잃어버려도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하기 때문에 콧노래를 부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즐거운 교제를 하므로 항상 즐거웠습니다.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4)넷째, 에녹은 전진하는 생애였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갔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전진했다는 말입니다. 200년이 지난 뒤에 와서는 그는 처음 시작하는 곳에 서(stand)있지 않았습니다. 많이 걸어왔고 300년이 지난 후에는 보다 많이 즐거웠고, 보다 많은 것을 이해했고, 보다 많이 사랑했고, 보다 많이 주었고, 보다 많이 봉사했습니다.
제가 신앙하기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은 전진한다고 믿습니다. 자란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의 신앙은 자라지 않은 앉은뱅이 신앙이 아닌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에녹은 가고 가고 가다 보니 낙원에까지 걸어가고 말았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드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다 보니 365년만에 낙원에까지 걸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것이 에녹의 결론입니다.
나도 누구를 낳고 몇 세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기록보다 누구를 낳고 몇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 앞에 갔다는 이력을 남기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Ⅲ.신앙 자의 후손 노아(25-32)

에녹은 65세에 므드셀라를 낳았습니다. 므드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죽는 날에 심판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같은 교제를 가지다 보니 하나님이 장차 심판하실 것을 알고 그 아들의 이름을 짓기를 므드셀라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라고 지었습니다. 또, 에녹은 그 아들 므드셀라의 이름을 통해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또, 이것을 기초로 하여서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전했습니다.(유14,15)
에녹은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며 죽음을 보지 않고 계속 낙원까지 걸어가 버렸습니다.(히11:5) 이 모습은 장차 그리스도 재림 시에 있을 성도들의 홀연한 변화와 승천의 그림자가 됩니다. 므드셀라는 969세까지 살았습니다.(27) 사람으로서 제일 오래 산 사람입니다. 므드셀라의 아들이 라멕인데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노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안위자”, “안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노아는 500세 된 후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습니다.
이제 계속 신앙 자의 후손, 노아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가를 기대 하시고 말씀을 기다리며 주일을 사모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더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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