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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과 빌립 (행 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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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속담에 침 뱉은 웃물물을 다시 와서 먹는다라는 게 있읍니다.

또 원수는 왜 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라는게 있읍니다.

 사람들의 관계의 묘한 면을 표현한 조상들의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들의 조상들이 많은 인생 경험을 한 결과를 남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고 있나 봅니다.

 얼마전에 웬 청년이 전화박스에서 전화를 하고 있을 때 그 밖에서 다음차례로 기다리고 있던 임신한 아주머니 한분이 전화를 좀 짧게 하라 는 말을 한다고해서 그자리에서 돌아서서 칼로 찔러서 숨지게한 사건이 있었읍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요지음은 핵가족 시대라 가정마다 자녀가 한명 아니면 두명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자라면서 협조해야할 사람도 없고 이해를 해야 할 사람이 없이 성장해갑니다.

 잘했거나 못했거나 다 그 부모되는 분들이 웃어 넘겨 줍니다.

물론 그 웃어 넘겨주는 부모의 심정을 알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부지 불식간에 저 혼자만을 위하여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인식이되 어 자라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남을 이해하는데 사람들이 인색해지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읍니다.

남이 나를 위하지 못하는 것에 신경질이 걸리는 원인이 되고 있읍니다.

 그 결과 남의 말은 생각 없이들 하게되고 남들이 하고 있는 자기의 말엔 성난 사자로 변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상은 그렇드라도 예수 믿는 우리들은 그러지 말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회상하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가 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는 사도 바울과 집사인 빌립이 등장을 합니다.

 두분의 관계는 참으로 묘한 관계라 할 수 있겠읍니다.

 1,20여년 전의 바울과 빌립 1),빌립--행6;3절에 형제들아 너희 간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리라

최초의 집사를 선정하는 일입니다.

 행6;5절에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들입니다.

 그 집사들의 이름중에 두번째 이름이 바로 빌립의 이름입니다.

 말씀의 설명 그대로 빌립은 믿음이 있었읍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읍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읍니다.

또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읍니다.

 행8;12,13절입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립립이 예루살렘에 있지 않고 지금 사마리아에 와 있읍니다.

 행8;4절에 보니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할새라고 했읍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흥왕하자 원수의 무리들이 교회를 핍박하여 끝내 예루살렘 교회는 산지 사방으로 흩어짐을 당했읍니다.

 그 흩어짐 때문에 집사인 빌립이 지급 사마리아로 와서 주의 복음을 힘있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8;26절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라사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집사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복음을 증거하여 많은 신자를 얻었읍니다.

빌립은 그 신자들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맡기고 이제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사로 내려 갔읍니다.

 거기에는 예루살렘에 예배차 왔다가 고국 에치오피아로 내려가고 있는 에치오피아의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있었으니다.

 집사 빌립은 그를 광야에서 만나서 전도를 해서 그자리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었읍니다.

 그리고 이제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북동쪽인 가이샤라 항구가 있는 곳에 와서 살고 있었읍니다.

 본문 9절입니다.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고 했읍니다.

 빌립은 자기만 믿음 있고 지혜있고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의 딸 넷이 다 성령으로 충만한 딸들이었읍니다.

 참으로 귀하게 집사의 사명을 다하고 살아가시는 모범 집사님이십니다.

 본문 8절에서 빌립을 그냥 집사라고만 호칭하지 아니하고 전도자 빌립이라고 부르고 있읍니다.

 빌립 집사님이 얼마나 전도를 잘했으면 전도자라고 했겠읍니까

빌립 집사의 전 생애가 다 전도자의 삶이었읍니다.

 2),바울--8절입니다.

이튼 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유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지금 누가 가이사랴에 이르렀읍니까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사도 바울입니다.

 이 사도 바울은 20여년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읍니까

행8;1절에 사울이 그의 (스데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0여년 전에는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20여년 전의 사울은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는 무서운 사람이었읍니다.

 그 첫 번째로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데 앞장을 섰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남은 집사들을 잡아 죽이겠다고 대 제사장으로부터 사령장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던 사람입니다.

 물론 오늘의 한 사람인 빌립도 잡으로 다녔읍니다.

빌립은 바울의 손을 피하여 사마리아로 그리고 지금 가이사랴로 많은 피난 길의 많은 고생을 했던 사람입니다.

 빌립 집사님이 딸이 넷이나 있는 것으로 보아서 초대 교회에서 집사를 뽑을 때 이미 결혼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꼬마 아이들이 있었는지로 모릅니다.

 그런처지에 바울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읍니다.

가정 모두가 격는 어려움이 극심했읍니다.

 2,20여년 후의 바울과 빌립

그런 못난 사람이었던 바울이 새 사람이 되어서 3차 전도여행 길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길목에 빌립의 집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만나게 되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맺었든지 아니면 은혜를 입었든지 사람은 이렇게 만나게 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과 빌립의 관계에서 빌립은 주님의 사랑으로 처음부터 사랑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의 입장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바울은 용서를 빌어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 바울은 빌립 집사의 집에 단 한 걸음이라도 발길을 들여 놓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빌립의 집에 여러날 동안을 머물면서 많은 위로 를 받습니다.

 바울과 빌립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은 참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마지막 가고 있는 마당이니 또한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읍니까

바울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이기에 그때 그날의 잘못을 낱낱이 털어 놓고 빌립과 함께 정리를 했을 겁니다.

 3,주님 앞에서의 만남 , 천국에서의 만남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이런 만남의 기회가 옵니다.

 만나기는 만나는데 그 만나는 때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서 만나느냐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젠 바울도 훌륭한 사람이 되었고 이젠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만이라고 할 수 있읍니까

설사 그렇더라도 이왕이면 바울의 입장이 되어서 만나느니 빌립의 입장이 되어서 만나는 편이 얼마나 더 좋은 일입니까

저는 오늘의 본문을 보면서 참으로 생각나게 하는 것이 많았읍니다.

또 니우치게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읍니다.

 우리들이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야하는데 ...

 그때 주님 앞에 서는 날 나 혼자만 가고 나 혼자만 서는게 아니지 않은가!

바울도 거기에 빌립도 거기에 함께 서야하는것이 아니가!

주님이 보고 있는 앞에/......

 거긴엔 나 때문에 손해를 당한 사람도 얽울함을 당한 사람도 거기엔 내가 흉보던 사람도 깔보고 멸시하던 사람도 사람축에 끼워 주지도 않던 사람도 와 있을텐데......

 저는 오늘의 본문에서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바울도 말할 수 없이 위대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만을 놓고 볼때 전도자 빌립은 늘 은혜를 베풀면서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바울의 마지막 길에 바울을 위로하는 가정이 빌립의 가정이란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주면서 산 집사 빌립은 그의 인생 다가도록 끝까지 주면서 베풀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만이 나의 날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위치가 뒤바껴서 만나야하는게 우리들입니다.

 지금 이해하는 편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많이 사랑하는 편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은혜를 베푸는 편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라도 주면서 사시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럼 한점 없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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