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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데반 집사의 신앙 (행 0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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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일곱 집사의 선택입니다.오늘은 일곱집사 중에서 가장 열심으로 활동하였던 스데반 집사에 대하여 살피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스데반 집사는 초대교회의 첫번째 순교자의 영광을 가졌던 신앙인입니다.‘스데반’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면류관입니다.그는 진정으로 그 이름에 걸맞는 신앙으로 면류관을 받은 신앙인이였습니다.

1.직분보다는 봉사가 우선이였던 사람들
사도행전 6장을 제목을 붙인다면 ‘일곱집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사도행전 6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집사”라는 단어가 없습니다.6:3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라고 되어 있지 집사인지,장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이 일곱명의 선택된 사람이 집사인 것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도행전 21:8 입니다. 그곳에 보면 “일곱집사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왜 성경에서 일곱명의 사람을 선택하면서 집사라고 분명히 기록하지 아니하였을까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가 아니고,봉사였습니다.직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활동이였습니다.겉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속모양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너무나 바깥모습을 중하게 여깁니다.사람의 됨됨이 보다는 학벌과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려고 합니다.교회는 이런 잘못된 것을 닮지 말아야 합니다.

2.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
사도행전은 ‘누가’라는 제자가 기록하였습니다.누가는 의사입니다.골로새서 4:14에는 ‘사랑받는 의원 누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하였을 것입니다.그래서인지 숫자에 대하여 제법 자세히 기록을 합니다.
1:15에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명이나 되더라”
2:41에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레를 받으니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4에는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6:1에는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6:7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렇게 제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교회안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이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곱명의 집사를 선택한 것입니다. 6:1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교회안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꾼을 선택한 것입니다.무슨 명예와 이름을 위해서 일꾼을 선택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이들 일곱명이 집사로 선택된 이후에 과연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까 성경에는 그 결과를 6:7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이들이 열심으로 자신이 맡은 사명을 감당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3.천사의 얼굴을 가진 사람
스데반 집사는 이들 일곱명의 집사중에서 가장 열심으로 봉사한 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그는 교회안에서 맡은 일을 할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였습니다.스데반이 이렇게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못마땅하였습니다.그래서 거짓증인(6:13)들을 세워서 스데반을 재판 하였습니다.스데반의 이 재판은 불공정하였습니다.이런 불공정한 재판석에서 스데반의 모습을 성경이 기록하기는 ‘천사의 얼굴’(6:15)과 같았다고 합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다는 것은 많은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천사의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생각할 때에 온화하고,부드럽고,기쁨이 넘치는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두려움과 원망과 불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입니다.지금 스데반이 처한 위치가 불공정한 재판 자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얼굴을 한다는 것이 신앙인으로써 가지는 모습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 재판을 생각한다면 스데반 주위에 모여든 많은 사람의 얼굴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거짓증인을 세우고,7:54에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이라고 기록되어 있고,결국에는 살인을 행한 것을 본다면 이들은 악마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다시 말해서 악마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가득한 재판 자리에 한사람의 천사의 얼굴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이 스데반의 얼굴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얼굴과 확연히 대조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스데반의 이 얼굴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스데반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6:3에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 6:5에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6:8에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7:55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얼굴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속에는 악마의 마음을 가지고,얼굴만 천사의 얼굴을 할 수는가 없습니다.스데반은 그 마음에 믿음과 성령과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였습니다.그 충만한 마음에서 이런 천사의 얼굴이 나온 것입니다.우리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마음에 쌓여 있는 것이 얼굴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부산서교회에도 이런 귀중한 신앙인이 배출되고,모든 성도님들의 신앙이 이렇게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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