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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성소와 피 (출 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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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왕이 겨우 50을 살았습니다. 성경은 인생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우리 인생은 일회적입니다. 더구나 짧은 인생이기에 더욱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재미로 살지않고 의미로 살아야 합니다. 이 시대 가운데, 이 환경 가운데, 어떤 의미로, 어떤 가치로 남을 것인가를 날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성막은 동문에서 서쪽 법궤있는 곳까지 50M의 거리입니다. 50M 길이에 378평의 면적에 불과하지만 감히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동문에서 법궤까지 이르는 하나하나의 기구들은 성도들의 신앙의 단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동쪽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구원받은 성도를 말씀합니다. 번제단은 예수님의 피가 나의 죄를 씻었다 고백하는 신앙의 단계를 가리킵니다. 물두멍은 구원받은 성도의 성결한 삶을 말씀합니다. 이 과정을 마치면 성소의 믿음에 들어갑니다. 성소 왼쪽에는 등대가 있는데 있는 빛된 생활을 감당하는 성도를 말씀합니다. 오른쪽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읽는 생활입니다. 이어서 지성소 앞에는 분향단에 이르게 됩니다. 분향단은 기도의 생활을 잘 감당하는 성도의 신앙을 말씀합니다. 성소의 생활을 넘으면 지성소에 이르게 됩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지성소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모세는 어디에서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 사람입니다. 산 위에 있었으나 지성소에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도 주님과 동행하는 지성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성소의 삶을 살아가기 위헤서는 지성소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지성소의 간다는 것은 어떤 삶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1.지성소의 삶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생활 중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광야는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곳입니다. 밤에는 싸늘한 추위가 엄습합니다. 일교차가 제일 심한 곳이 사막입니다. 이 사막과 같은 광야에서 살기 위해 이스라엘은 늘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갔습니다. 성막을 설치하려면 60만명이 운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주위에 200만명이 대구만한 도시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거대한 면적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보호합니다. 지성소의 법궤 위로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치솟아 따뜻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보호막이 되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삶을 보호합니다.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이와 같은 보호와 채워주심의 역사는 성령님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길 때에 가능합니다. 그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내가 그를 인정하고 그의 도움을 요청할 때 그의 역사가 나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성막은 8,580명이 설치하고 또 뜯어서 이동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번이나 성막을 설치했다가 뜯어서 이동했지만 단 한번도 어디로 갈까, 언제갈까 회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수결을 택하지도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머물면 머문 장소에 법궤를 놓고 동쪽으로 나머지 부분들을 지어 나갔습니다. 성막의 생활은 철저하게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하루를 살면서 몇번이나 ‘하나님, 내가 어떻게 살까요’ 성령님께 물으면서, 기도하면서 살아가십니까 성령께서는 기도하면 응답을 주십니다. 의지하면 붙들어 주십니다. 기도하면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인도를 받으며 살아갈 때 그 삶을 하나님이 보증하십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아버지 죠지 뮬러는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2.지성소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기 위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 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고장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이 그를 찾아갈 수 없고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갈 수 있습니다. 동편문을 통과하여 번제단까지 가까스로 이른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의 전 과정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을 흘리는 것은 가울에 열매를 거두기 위함입니다. 열매가 없다면 땀흘린 수고는 모두 허사가 되고 맙니다. 우리 인간은 무력합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2차대전 당시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의 정예부대 30만명이 던커크 해안에서 독일군에게 완전포위되었습니다. 만일 이 30만명이 다 죽는다면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독일군에 의하여 짓밟힐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영국 수상 처어칠은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웨스트민스트 교회에 아침에 찾아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우리 영국을 구원하옵소서. 유럽을 건져 주옵소서!” 그의 기도는 저녁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저녁에 그는 교회를 나와 방송국으로 갔습니다.
“모든 교회들이여,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절대절명의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모든 성도여, 교회로 가십시오.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처어칠의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린이로 시작하여 노인까지 심지어 안믿는 사람들도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밤새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는 다음날 아침 맑던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는 폭풍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영국군이 고립되어 있는 던커크 해안만은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영국군이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합니다. 이 의도를 알아차린 독일군이 유보트 대포를 쏘는데 쏟아지는 비로 인하여 쏘는 즉시 불발탄이 됩니다. 당시 독일군이 최고로 자랑하던 무기는 유보트 전차였는데 도망하는 영국군을 추격하는데 진흙에 빠져 전차는 꼼짝하지를 않습니다. 독일군들이 아우성을 치는 사이에 영국군은 아프리카로 피신하여 전열을 정비하였습니다. 다시 전쟁에 임하여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구하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날마다 지성소로 들어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지성소 안에 사는 삶은 예수 안에 사는 믿음을 말씀합니다.
법궤는 밖에서 보면 볼품없는 대형천막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은 200억원이 넘는 온갖 보화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막은 동문에서 지성소까지 동서남북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 촌사람이었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나셨고, 그 자신 목수의 직업을 가지셨습니다. 길거리에서 태어나 갈보리 언덕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황금으로 둘러싸인 보화가 법궤입니다. 남들은 알지 못하나 우리는 보화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이해하면 쉽습니다. 태아와 엄마는 하나입니다. 엄마가 먹으면 아이도 먹는 것입니다. 엄마가 자면 아이도 자는 것입니다. 걸어가면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지성소의 삶은 바로 주님과 함께 동거하고 동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지성소의 삶은 하나님 앞에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둘러싸여 사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법궤 밑은 흙바닥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유혹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암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유혹합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때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성령이 위에 하나님이 앞에 예수 그리스도에 둘러싸여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고장난 차는 수리를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인생, 고장난 인생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살리십니다. 성령이 고치십니다.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그가 인도하는대로 그가 이끄시는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지성소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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