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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심당의 시몬 (막 03: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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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심당

-. 열심당은 성경에 셀롯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혁명당이라고도 한다.

-. 열심당은 로마 통치에 반항하던 매우 과격하고 호전적인 유대인 반항자 들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되던 용어이다.

-.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에는 여러 당파가 있었는데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센파, 열심당 등으로 가장 늦게 출현한 당파이다.

-. 셀롯이란 용어는 로마의 통치에 대항하여 싸웠던 저항자들이 그들 자신 을 지칭했던 용어로, 이 용어는 갈릴리 사람 유다로부터 시작하여 마사 다 요새 방어자들의 자결로 종결된 주후 1세기의 저항운동에 가담했던 전집단의 명칭이다.

-. 로마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 가운데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요, 하 나님만이 세금을 받을 수 있다고 반항하였다. 그러므로 이들의 반란은 정치적 폭동이 아니라 성전(거룩한 전쟁)이었다.

-. 나중에 열심당은 광신적 국수주의자가 되어 신앙의 순결을 위하여 투쟁 하며 암살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하나님의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우 상숭배와 배교와 그 밖의 율법 위반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분노와 심판의 대행자로서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생각하였다.

-. 열심당원으로 일하던 시몬은 열광적인 민족주의자이며 율법을 엄수하였 던 사람으로 로마당국과 타협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대단히 미워했다.

 (2) 제자로서의 시몬

-. 시몬은 혁명을 위한 모든 잠재력을 가진 혁명자가 예수님이라고 생각했 을 수도 있다. 메시야가 이 땅에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오셨다고 생각 하였기 때문에 사도들은 정치적인 왕국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 시몬은 열성적으로 헌신했다. 열광적으로 정열을 쏟는 속에 위험도 있 었으나 복음을 위한 열정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시몬의 증오는 사랑 으로 변했다. 시몬은 십자가를 위하여 칼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나섰다. 십자가 처형이 있던 전날밤 다락방에 있었고, 부활하신 주께서 열명의 제자 앞에 나타나실 때도 있었다.

-. 시몬은 예수님으로 인해 반대자와 조화할 수 있었다. 마태는 로마 세관 의 세리로 매수된 사람이요, 시몬은 로마를 증오하는 사람이었다. 시몬 은 애국자였으나 마태는 배신자였다. 그러나 이 두 사람 사이는 예수님 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극복되었다. 이들의 조화는 복음의 화해 능력을 증명해 주고 있다 .

-. 예수의 교훈을 받은 셀롯 시몬의 정치적 야심은 온화한 소망으로 바뀌 어 부드러워졌다. 호전적인 성격인 전도 활동의 동기로 변했다. 왕국에 대한 정열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정열로 바뀌었다.

증오로 출발했던 시몬이었으나 사랑으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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