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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드온 (삿 0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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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하면 우리들은 ‘3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미디안 군사를 물리친 하나님의 용사’로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기드온은 결코 영웅도 위인도 아니다. 12절 말씀에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큰 용사여’라고 부른다. 그러나 11절을 보자.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 나
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
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틀에서 타작하더니(삿 6:11)”
미디안 사람들은 농사지을 때는 내버려 두었다가 추수 때만 되면 쳐들어 왔다. 이럼으로 이스라엘은 언제나 굶주려야 했다. 타작이란 광활한 들판에서 하는 법이다. 포도주는 밀폐된 장소에서 즙을 짜게 된다. 이 물질이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드온은 지금 밀 타작을 가장 반대되는 곳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라고 불렀다. 망신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때 기드온은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
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
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삿 6:13)”
이 말씀은 기드온이 울부짖음이다. ‘나를 놀리십니까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모든 것을 빼앗겼고 이러지 않으면 그나마 살 수 없는 우리 입장을 당신은 아십니까’ 항변을 하는 것이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
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
다(삿 6:15)”
그럼에도 하나님의 답변은 한 가지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치듯 하리라”
하나님은 그를 용사로 부른 것이지 놀리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다. 12절에 다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은 스스로 타고난 용사도, 위인도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제 용사가 되는 것이다. 기드온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제안했다. ‘나에게 말씀하신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저로 하여금 확인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방법은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물을 바쳐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것의 여부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
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
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삿 6:20-21)”
우리의 상식이라면 지팡이 끝에서 불이 나와야 한다. 반석에서 불이 나올 것이라면 지팡이는 필요치 않다. 성경에 쓰이는 어떤 위인도 그로부터 불이 나오는 존재는 없다. 지팡이로 쓰일 뿐이다. 기드온이야말로 이 사건을 위하여 준비된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지팡이 노릇을 하기 위해 선택받은 사람이다.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찌니라(삿6:25-26)”
하나님은 우상을 찍으라 하시고 그 나무로 수소를 불살라 번제로 드리라 명령하셨다. 그에게 나타나시고 증거를 보여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런데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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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였는가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
하니라(삿 6:27)”
기드온은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큰 용사여’란 별명을 붙여주시는 것이다.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가로
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
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삿 6:28-29)”
알리바이를 조사해보니 기드온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 기드온을 벌하고자 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너희가 왜 바알을 위하여 화를 내는가 그가 신이라면 그 행위를 한 자에게 스스로 화를 내릴 것이다.” 이를 옳게 여겨 마을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여룹바알(바알의 원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떠나갔다. 이 일을 통해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라엘 골자기에 진을 친지라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
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삿 6:33-35)”
기드온은 하나님의 약속과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이만한 용기를 낼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또 마음이 흔들렸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삿 6:36-37)”
양털을 가지고 이슬이 내리는 것으로 두번에 걸쳐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요구를 다 들어주셨다. 나팔을 불어 전국에서 병사를 모았다. 32,000명이 그에게 나왔다.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삿 7:1)”
이제 비장한 각오로 싸우려 하는 즈음에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32,000명의 병사 중 두려워 떠는 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이 말이 떨어지자 22,000명이 돌아가 버렸다. 10,000명 밖에 남지 않자 기드온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또 한번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
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
지말 것이니라 하신지라(삿 7:4)”
물가로 내려가 모두에게 물을 마시게 하였다. 손으로 물을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가 300이었다. 하나님은 그들만 남게 하였다. 기드온은 기절할 지경이었다. 두려워 떠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또 확신을 주신다.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쳐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
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
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삿 7:9-11)”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
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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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뜨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그 동무가 대답하
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
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삿
7:12-14)”
이 말을 듣고서야 기드은은 과연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내손에 주셨고, 이 적들을 붙이시겠구나’ 하는 담대함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기드온은 싸움에 나선다. 싸우는 모습을 보면 셋으로 무리를 나누는데 이 산에 백명, 저 산에 백명, 또 이쪽에 백명을 배치하였다. 항아리 속에 횃불을 감추고 한손에 나팔을 들고 항아리를 깨면서 일제히 횃불을 들고 나가면서 나팔을 불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그러자 적군들은 자기들끼리 치고 싸워 죽이고는 일부만이 살아 도망을 쳤다.
성경이 지금 이 전투를 묘사하는 이유는 이 싸움이 승리를 하기에 조금이라도 ‘승리할 요소가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지팡이로 제물을 가리키자 반석에서 불이 나왔다. 이처럼 항아리, 나팔소리, 횃불들은 다 지팡이에 불과한 것이다. 반석에서 불이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지팡이로 지적하게 하심으로 이 일이 무슨 사건인가를 형태화시키는 일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전에 ‘하나님이 누구인가’하는 싸움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잘난 인물을 쓰시기보다는 가장 못난 자를 쓰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쓰고 300명을 불러 낼 때에는 이 사람들을 쓰므로서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이 누구신가’가 명명백백하게 들어날 그런 사람들을 쓰시는 것이다.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기드온
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
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2-23)”
우리는 기드온과 300명으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보기보다는 지팡이를 먼저 본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를 추적해 들어가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꺼내어 놓은 모든 메세지는 무엇을 지적하기 위하여 자꾸 사건을 어떻게 상징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싸움이다. 이 사건이 무슨 사건인지 본인은 가장 잘 안다. 본인이 누구인지를 안다. ‘내가 아닌,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다스려야 한다’ 이 사실을 기드온은 알고 있다. 그래서 기드온은 이 문제를 사람들이 혼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패물을 달라고 해서 에봇을 하나 만든다. ‘하나님을 섬겨라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주장하시는 유일한 주인이시다.’ 이상의 고백으로 에봇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끝내 에봇을 우상화시켰다. 이것이 기드온 사건에서 결단코 만나지 않는 팽팽한 평행선이다. 하나님의 지적과 인간의 무지는 지식의 차원에서의 무지가 아니라 신앙의 무지이다. 사사기는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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