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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길, 사망의 길 (신 30:15-20; 요 03:31-36)

첨부 1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진리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말에 대한 대답은 그들의 삶을 통하여 알수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들은 그것이 그만큼 그들에게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무엇에 열심을 내는가
돈을 버는 일, 가정을 돌보는 일, 성공하는 것
대학에 들어가는 일, 일등하는 일,
우리는 진리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진리보다는 당장 현실을 더 중요시 여기고 거기에 메달려 있다. 결국 사람들이 메달려 있는 것은 삶의 문제이다. 어떻게 더 잘살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젊은 석가는 집을 뛰쳐 나와 당장의 삶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를 찾기 위하여 나섰다. 그가 메달린 문제는 결국 무엇인가 인간의 “생노병사”라는 삶의 문제다.
우리의 전래종교는 장독을 보고 빌고, 나무를 보고 빌고, 진신을 밟고, 부림을 깨기도 하였다. 이 모든 일은 장수부귀, 즉 삶을 위한 조상들의 신앙이었다.
세상의 어느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던 진시왕이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애썼고, 현대에도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발버둥을 친다.
즉 인간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존재이고, 이것을 가지고 고민하며,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성경에도 분명히 인간의 삶의 두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신30:15)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30:19)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생과 사, 복과 화의 문제이며, 하나님이 인간 앞에 두셨다고 말하고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두셨다. 하나님은 그 동산을 모두 지으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동산은 생명과 복만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화와 저주와 죽음을 이 땅에 주셨다.
아담에게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며 두루 도는 화엄검으로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를 내었다. 즉 인간의 범죄 후에 화와 죽음이 들어온 것이다.
그 이후에 인간은 생사화복(삶과 죽음, 축복과 저주) 아래 살게 되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생사화복을 기록한 책이다. 아브라함의 복, 롯의 저주, 야곱의 복, 요셉의 복, 아간의 저주, 불순종한 이스라엘의 저주,....
이와같이 인간에게는 “생명과 복의 길” “사망과 저주의 길” 단 두길 밖에 없다.
예수님은 이 두길을 좁은 길과 넓은 길로 표현하시면서, 좁은 길은 생명의 길로, 넓은 길은 패망의 길이라고 하셨다.

1. 생명과 복의 길은
① 여호와를 사랑하고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신10:12)
말씀에 순종하라는 명령보다 이같은 권고가 먼저 나온 것에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마22:36-38에서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크고 첫째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십계명의 전반부를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다윗은 복을 받은 왕이다. 그런데 시편의 고백을 보면 그가 복받은 이유가 있다. 그는 진실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42:1)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갈급함이 그안에 있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73:25)

아브라함을 하나님을 사랑하되 자기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기 까지 사랑하였다. 요11:6에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말하기를 “우리도 주와 함게 죽으러 가자”고 하였다. 자기를 주님을 위해 드리려는 모습이다. 바로 이런 자세로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며, 내 자신까지 드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야 한다. 바로 이것이 사랑이다.

생명과 복의 길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② 그 모든 길로 행하며-그의 길로 걸으라
그와 함께 동행하며 살라는 말이다. 주와 함께 걷는 길을 말한다. 에녹과 같이 사는 길이 생명의 길이다.
찬송 456장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기록하고 있다.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 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걸음 한걸음 주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마16:24에서-예수가 말하는 주와 걷는 길.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주님이 가신 길, 주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 십자가를 지는 길,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는 그 길을 십자가를 거구로 지고 따랐고, 스데반은 돌에 맞으며 그 길을 걸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 길로 행하라고 말하고 있다.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로 걸으라고 하신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하며 찾는 이가 적다. 그러나 우리는 찾는 이 없고, 가는 이 없어도 그길로 가야한다. 왜냐하면 그 길이 바로 생명과 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③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음성을 주셨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설교의 시간과 성경공부의 시간을 통하여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음성에는 “하라”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음성이 있는가 하면, “하지 말라”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음성이 있다. “하라”는 음성이 들릴 때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성도,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릴 때 “아멘”하고 우리의 걸음을 금하는 성도가 되야 한다.
생명이시고 진리이신 하나님의 음성은 곧 우리를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복받는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그 자녀를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생명과 복의 길로 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④ 부종하라-‘다바크’로 ‘굳게 연합하다’ ‘착 달라붙다’‘밀접히 결합하다’
이것은 각별한 사이로 애정이나 우정을 나누는 사이를 말한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율법에서 찾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보다는 율법에 더 친밀해 있었다.
그러나 참 신앙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큰 교회에 가보면 친척때문에, 이웃때문에, 교역자 때문에, 사업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부종’하는 것이다. 하나님만 꼭 붙들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연애하는 사람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꼭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있는 곳은 생명의 길, 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를 붙드는 자는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연히 그길로 들어서게 된다.

⑤ 아들을 믿는 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로 행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만 붙잡고 나아가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생존과 번영(생명)과 어디가든지 주시는 복(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2. 사망과 저주의 길은
①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순종치 않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죽음(흙에서 왔으니 흙으로)과 저주(땅이 엉겅퀴와 가시덩쿨을 내고 땀흘려도 제대로 거두지 못함)과 오게 되었다.
레위기 10:1-2에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제사한 나답과 아비후가 죽었다.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삼상13:13-14에 사울이 폐위된 이유가 바로 불순종임을 기록하고 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의 길은 저주와 죽음이다.

② 다른 신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며(우상숭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그에게는 질투의 모습까지 담겨있다.(질투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은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만을 사랑하고 따라야 할 백성이 다른 헛된 것(우상)을 섬기는 것을 용납치 아니하신다. 그래서 10계명의 1번과 2번이 바로 그 내용이다.
첫째,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말라
둘째, 우상을 섬기지 말라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은 바로 우상숭배이다. 그들이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게 심판을 받은 것은 우상숭배 때문이다. 특히 솔로몬은 가장 축복을 받은 왕이었다. 이스라엘이 최대로 큰 나라를 이루었었다. 그러나 솔로몬의 시대에 이스라엘이 망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우상을 이스라엘에 들여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상숭배는 내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저주와 죽음의 길로 인도한다.

③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사망과 저주의 길-멸망의 길은 바로 불순종, 우상숭배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두길을 두셨다. 그것은 생명과 복의 길, 저주와 죽음의 길이다. 뿐만 아니라 그 길로 나아가는 방법도 알려 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예수를 믿음므로 생명과 복의 길로만 나아가는 주곡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3:31-36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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