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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하는 교회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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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목사도 목회에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성공한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커다란 예배당을 건축하고 교인들의 숫자가 많아야 성공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사모하는 성공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것은 참된 성공이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합니다. 부흥은 외적인 부흥과 내적인 부흥이 있는데 우리들은 부흥을 생각하면 외적인 교회 성장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외적으로 커다란 성장을 가져 왔다고 하여서 “그것이 곧 성공이다” 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참된 성공 참된 승리는 무엇이겠습니까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이란 영적인 싸움이라 할 수 있는데. 오늘도 우리들은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있는 군사들이고 이 세상은 싸움터이며 교회는 군사를 훈련시키는 훈련소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에서 영적으로 훈련을 받고 영적인 힘을 충전 받아서 싸움터인 세상에 나가서 사탄의 권세와 힘 차게 싸워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서 한달 이상을 걸어 도착하여 장막을 친 곳이 오늘 우리들이 봉독한 말씀대로 르비딤이라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백성들은 물이 없으므로 모세를 돌로 쳐서 죽이려하며 원망을 하였고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반석을 치니 물이 나와서 백성들이 먹게 되므로 그 이름을 맛사 또는 무리바라고 한 것입니다.

이 때 아말렉 족속이 나타나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여호수아를 대장으로 삼아서 아말렉과 전쟁을 벌이게 하고 모세는 산에 올라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모세의 손이 들려 있으면 승리하였고 손이 내려오면 반대로 이스라엘 군대가 패하게 되므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 옆에서 손을 잡고 기도하므로 모세의 손이 해가 질 때가지 내려오지 않으므로 여호수아가 아말렉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모세는 이 일을 책에 기록하라 하였고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드리며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승리요, 여호와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이란 영적인 싸움이고 우리가 싸워야할 영적인 싸움의 상대는 아말렉입니다. 이 아말렉과 싸움에서 이기는 교회와 성도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며 지는 자는 패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아말렉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이 아말렉이 누구입니까 창36:12을 보면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이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서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이란 누구입니까 에서의 손자이며 손자 가운데 정실의 자식이 아니라 첩의 자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에서는 누구입니까 육신의 정욕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판 사람이며 아버지 이삭의 말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은 불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이란 육신의 정욕과 불순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의 후손입니다. 야곱은 영적인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이지만 그 반대로 에서의 후손인 아말렉은 육적인 사람이며 불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싸움의 상대는 명백해 졌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은 나 자신의 정욕과 싸움이요 불순종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곧 승리하는 자요 성공한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16절을 보십시요 “여호와께서 맹서 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신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욕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아말렉은 하나님과 원수이고 아말렉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과 교회에 원수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원수인 아말렉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은 아말렉인 나 자신의 정욕과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향하려는 탕자의 정욕이 내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이 물질을 땅에 쌓으려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쉴사이 없이 뛰어다니는 탐욕의 정욕도 내 안에 있습니다.
음란의 정욕도 우리 내 마음에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려는 불순종의 요나와 같은 정욕도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나만 알고 내 가족만 사랑하는 이기심의 정욕도 내 마음에 가득합니다.
자기 자신만 알고 자신만 내세우며 자랑하며 사는 교만의 정욕도 내 안에 가득합니다.
남을 이유없이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는 무서운 정욕도 가득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도다 내 안에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악을 행하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저내랴” 라고 탄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인 아말렉은 내 안에 도사리고 있어서 지금도 우리를 쓰러트리려고 공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싸움은 나의 정욕과 싸움입니다. 우리의 적인 아말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인 아멀렉은 바로 내 마음안에 있는 것이고 내 마음에 있는 정욕과 불순종인 아말렉과 싸워서 이긴 성도가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입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과 싸움에서 실패하므로 넘어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2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아말렉을 쳐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아말렉에게 당한 고난의 원수를 사울을 통하여 갚게 하신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아말렉과 전쟁을 이르켜서 승리는 했지만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고 살찌고 좋은 짐승들을 살려 가지고 왔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말하기를 “왕께서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왕을 버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사울 왕은 아말렉의 모든 생명을 죽이지 않고 왕을 살려두고 양과 소와 중에 살찌고 좋은 것을 남겨 두었겠습니까
이는 첫째로 사울 왕의 탐욕 때문입니다. 그는 삶의 만족과 좋은 것을 세상의 물질에서 찾은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하지 않는 불순종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우리들에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아말렉이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정욕과 불순종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정욕과 불순종을 몰아내고 진멸해야 우리들이 영적인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승리자요 성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그리고 아말렉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과도 원수입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의 정체를 모르고 살려 두었다가 나중에 아말렉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게 된 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삼하1장을 보면 사울 왕이 불레셋과 싸움을 하다가 화살에 맞아서 부상을 입게 되고 이제 살 길을 없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내가 부상을 당하여 포로로 잡혀가서 수치를 당하고 비참하게 죽는 것보다는 자결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사울 왕의 옆에는 사울의 병기를 들고 따라다니던 아말렉 소년이 있었는데 사울 왕은 아말렉 소년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하였고 아말렉 소년은 사울을 죽이고 왕의 면류관과 팔의 고리를 빼내어 다윗에게 가져 왔다고 하였습니다. 면류관은 왕이라는 증표인데. 결국 사울은 자신의 왕관을 자신이 살려둔 아말렉에게 벗기는 수치를 당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재림 하셔서 이 땅을 심판하실 때 우리들은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 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충성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자들입니다. 계3:11-12을 보면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하셨는데. 아렉인 우리의 정욕과 불순종은 하나님께서 주신 면류관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싸움에서 우리의 정욕과 싸워서 이기므로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과 반대로 다윗은 아말렉을 쳐서 이긴 자였습니다. 삼하1:1을 보면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왔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울을 죽이고 면류관과 팔찌를 가지고 상을 얻으려고 다윗에게로 달려온 아말렉 사람도 다윗은 쳐서 죽여버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다윗은 아말렉이 하나님과 원수요 자신과도 원수이기 때문에 그냥 두면 영적인 싸움에서 자신들이 질 것을 알아서 그들의 정체를 분명하게 알고 죽여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아말렉과 싸워서 이겨야 하겠습니까

1. 기도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겼고 손이 내려오면 졌습니다. 여호수아가 용감하고 군대가 훈련이 잘되고 무기가 좋아서 이긴 것이 아니라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였으므로 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욕인 아말렉을 이기는 힘은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신일교회가 창립된지 3년입니다. 이 교회가 승리하고 여러분이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기도가 없어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삼손도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능력만 의지하다가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솔로몬이 타락하게 된 것도 말년에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에는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에 가셔서 40일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겠습니까 그 것은 자기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 입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아말렉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 40일 금식하시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갯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는데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했다고 하였습니다. 갯세마네란 “기름을 짠다” 라는 뜻을 가진 곳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기름을 짜듯이 기도를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내일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였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라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 마음에 왜 고민이 가득하겠습니까 십자가를 지실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겨 십자가를 지여 할 것입니다. 그런데 또다른 마음에는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벗어버리라고 유혹을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공격하는 아말렉인데 예수님은 기도함으로 아말렉을 이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신앙에 승리합니다.
앞으로 점점 기도하기가 힘들어 짐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 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사는 날이 점점 많아 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 졌습니다. 기도는 목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매달려야 우리를 공격하는 우리의 정욕인 아말렉을 이길 수 있는 것이지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아말렉에게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므로 우리를 공격하는 육신의 정욕을 이겨야 합니다. 기도하므로 이 교회가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말씀으로 우리의 정욕인 아말렉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후에 사탄의 시험을 당할 때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말씀을 깊이 아는 성도가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게 됩니다. 말씀으로 무장한 성도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십자가를 져야 승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땅의 죄와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로마의 군대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구세주가 되여 자신들도 예수님과 함께 권력을 잡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없이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요 우리들의 육신의 정욕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들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너희가 나처럼 십자가를 져야 승리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1983년 7월 충청북도 영동의 깊은 산골 물한리라는 곳에서 목회를 시작했는데 이제 10년이 지나면서 목회가 무엇인지 감을 잡게 됩니다. 목회란 다른 것이 아니였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자신의 지식이나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목회요 나 자신을 버리고 성도들을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이것을 가슴 깊이 깨닫는데 10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즈음은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아버지! 바울과 같이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한 믿음을 주옵소서! 베드로와 같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저 양들의 생명을 사랑하게 하시고 저들을 위하여 희생하게 하소서!”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며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고 평생 수 많은 역경을 헤치며 복음을 전하고도 말년에 가서는 그 차가운 감옥에 갇혀서 고통을 당했던 바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수 많은 고통중에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까지 십자가에거 거구로 죽어야 했던 베드로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목회입니다. 이 길을 제가 가고 있는 것입니다. 감격의 눈물이며 감사의 눈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십자가를 지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여호와의 승리의 깃발입니다. 십자가는 아말렉을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을 받아야 아말렉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군대가 아말렉과 싸워서 이긴 힘은 여호수아의 능력도 아니요 군대의 힘도 아니며 무기의 힘도 아니였습니다. 오직 성령의 비결은 하나님의 힘 곧 성령의 힘이 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나 자신의 정욕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은 성령통하여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외치십시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성령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동행하소서”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내 마음에 감사가 넘치고 사랑이 충만하고 눈물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성령게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실 때 나의 정욕을 이기고 승리하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성령이여 나를 인도하시고 동행하소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동행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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