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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람과 롯의 선택 (창 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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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 내려갔던 아브람 일행은 시련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중 에서 구원함을 받고 도리어 바로왕으로 부터 많은 재물을 얻어 나올 수 있 게 되었습니다.

이 많아진 재물로 인하여 아브람은 동행하던 조카 롯과 더이상 동거 할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가축문제로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싸운 일이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아브람은 가족회의를 열었고 분가를 제의 하게됩니다.

이때에 아브람은 롯과의 화평을 위해 선택의 우선권을 롯에게 양보합니다 (8-9절) 이것은 단지 어른으로서의 제면치레만의 관용이 아니었습니다. 그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우거하기를 원하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히11:9-10) 그러나, 롯의 선택은 아브람의 선택기준과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아브람과 롯은 두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롯도 의로운 사람이었으나,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브 람은 하나님의 약속 위에 믿음을 두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실 수 할수있는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롯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롯과같이 헌신되지 않은 사람들은 예배가 없이도 세상을 잘 살아갑니다. 그래서 롯 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에 대한 순종보다도 세상물질을 더 추구하여 죄악의 도성인 소돔성으로 향해 불행의 길로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성도로서 올바른 선택과 잘못된 선택 이 무었인지를 살펴봄으로 귀중한 교훈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1.분쟁<분쟁의 원인>(5-7절)

어떠한 공동체도 전혀 분쟁이 없이 오랫동안 존속할 수는 거의 없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감정이 종교적으로 교회되어 있는 상태에서 조차 인간의 본 성은 조악하여 기어코 분쟁을 야기 시키기도 합니다. 아브람과 롯으로 구 성된 이작은 종교 집단에서도 다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같은 신앙에 있으면서도 인간의 결점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인간의 추함을 마침내 드러내 놓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통의 이해관계와 사업을 위해서 골육으로 살았어야 만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평화라는 명목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가슴아픈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같은 일은 비단 아브람과 롯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지나간 교회 역사 가운데는 이같은 전철을 수없이 많이 밟아 왔었음을 의 미심장하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분쟁의 원이이 무었이었는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세속적 번영이 분쟁의 원인이었습니다.(5절) 아브람이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급의 바로를 통하여 주 어진 것이었으며, 롯은 삼촌 아브람과 동행한 덕분에 부자가 되었던 것입 니다.(5-6절) 부자가 되기 전에는 이들이 함께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재물이 적었을 때에는 허식이나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 잡히지도 않았습니 다. 또한, 서로 빼았고 먼저 차지 하려는 아귀다툼의 대상물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하인들은 같은 집안의 종들로서 함께 화합 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재물이 많아지고 나니까 서로 자기주장만 하게 되었고 서 로 반목하며 불만스러운 불편한 관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면 본래 타고난 본성중 하나인 검은 탐욕 심으로 온통 마음이 물들어 버리는 경향이 종종 있습니다. 이 탐욕심은 재 산이 불어 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사람이 재물이 많 아지게 되면 어찌하여 고상하고 찬절한 마음으로 풍성해 지지 못하고 보기 흉한 무성한 가시 엉컹퀴만 돋아 납니까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닙니까 재 물로 인해 오만하게 되고, 가혹하게 되고, 뻐기게 되고, 이기적이 되고,나 보다 더 잘 되는 친구를 시기하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거칠고 메마른 흉물 로 전락되고 맙니다. 그러니 세속적으로 번영하는 것이 오히려 불화의 원 인이 종종 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2)양보의 결핍이 분쟁의 원인이었습니다.(7절) 분쟁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권리로 여기는 것은 좀처럼 양보 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권 리만 주장하기 때문에 분쟁이 그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만 완벽하게 지키면 나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며, 그외에는 나의 권리 를 챙기는 것 뿐이라는 사고방식은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왜냐면 여기 에 가장 중요한 생명력과 같은 사랑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한치 의 양보도 기대 할수 없을 정도로 각박한 세계가 아닙니다. 사랑은 이해와 아량과 양보가 함께 따르는 세계입니다.

 2.화해<분쟁의 해결>(8-9절)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이익보다 형제와 이웃간의 화목을 더 중요시 합 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자신의 권리를 양보 해서라도 화목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아브람이 바로 그와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아브람이 어떻게 처신했는 지를 살펴 보므로 오늘날 성도들의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 지지 않도록 하기위해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아브람과 롯의 하인들이 다투는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거기에 같이 거주하였습니다.(7절) 그러므로 이들의 분쟁은 이방 사람들에 게 조롱거리가 되기 쉽상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조롱을 받게 된다면 그 것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께 대한 조롱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 나님의 사람인 아브라함은 이 사실을 간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 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아브라함이 롯보 다 훌륭한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지 아니하는 이 세상에 불신자들과 더불어 살면서 매사에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 받거나, 더럽혀 지거나, 훼방받는 일이 없도 록 조심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칫, 우리가 생활에 너무 집착한 나 머지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 지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 먼저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광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2)자신이 희생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지켰습니다.(9절)

당연히 아브람에게 선택의 우선권이 있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원만한 화해를 위해 스스로 희생적인 양 보를 결단했습니다.(9절) 실로, 이러한 양보는 하나님의 사람인 아브람의 겸허하고 관대한 인격의 표현이요,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수 없습니 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며 드러내는 방법이 무었이겠 습니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화평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롬12:1에 할수 있거든 너희는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고 하였으며, 마5:9에는 화평 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 이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화평을 이루는 길은 아브람처럼 주님처럼 자 신이 양보하고 희생하는 길이 바로 그 길임을 마음 깊히 새겨야 할 것입니 다.

 3)인간적인 판단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믿었기에 인간적 선택권을 양보 할 수 있었습니다.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면 자신에게는 불리하게 될줄을 알았습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인간의 처세법에 따르지 않고 상상을 초월한 영 적인 처세를 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약속을 믿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약속받은 땅이 비옥하지 못한 황무지 같은 땅이었으나, 그곳 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었기에 소돔과 같은 비옥한 땅이 아닐찌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아브람은 그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를 보게 됩 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같이 생존경쟁의 극을 달리고 있는 와중속에 우리 가 그 어떠한 시련에 봉착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 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관한 영롱한 꿈이 우리를 기다리 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이 세상으로 부터 어떠한 고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인 내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선택(9-18절)

롯의 선택과 아브라함의 선택을 살펴보겠습니다.

1)롯의 선택-육신의 눈으로 선택

(1)롯의 선택은 가시적인 선택이었습니다.(10절) 롯의 선택의 근거는 육신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에 근거한 선택 이었습니다. 이 선택이 우선 보기에는 좋았으나, 곧 멸망하게 될 도성이라 는 영적인 안목이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이 롯의 선택은 영적인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육신적인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속적인 성도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2)롯의 선택은 이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롯은 탐욕에 사로 잡혀서 윤리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와 가족을 돌보아 주고 인도해 주었던 보호자와 같은 숙부 아브람에 대한 존경심이나, 고마움 같은 것을 표시 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인륜양심이 그의 안목의 정욕 앞에서 힘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가졌건만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최소한의 윤리적인 관계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파렴치함을 드러내는 자는 바로 롯과 같이 육신적인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3)롯의 선택은 기도가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롯의 선택이 가시적이고 이기적으로 될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선택에 앞서 중요한 기도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아브람(4 )과는 대조적으로 롯은 중대한 결정을 앞에 놓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 해 보거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시25:4, 12잠3:6)

2)아브람의 선택-영적인 눈으로 선택

(1)아브람은 영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육신의 눈에 보기 좋은 선택 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영적인 선 택을 하였습니다. 그의 소망을 땅에 두기보다 하늘의 소망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당장 보기에 아름답고 좋은것이 결코 절대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실로, 인생에 있어서 무었이 더 중요한 지를 잘 알 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돔성이 하나님의 동산 같고 기름진 땅 같았으나, 이로인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 한 사실을 더 멀리 보는 영의 눈을 통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조카에게 모든것을 양보한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14-15절)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아브람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심령이 가난한 그에게 바로 천국을 주신 것입니다.(마5:3,5) (2)아브람은 이타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조카의 입장과 하나님의 영광을 더 생각하는 선택을 하였던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람처럼 양보의 사람, 온유한 사람, 심령이 가 난한 사람이 되십시다. 그리고 롯과 같은 어리석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 에 집착하여 실패하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영안으로 바라 보십시다. 그렇 게 할때에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하늘의 가나안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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