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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죄의 결과 (창 0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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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우리는 원죄란 시간적인 의미에서 인류 최초의 죄가 아니라, 실존적인 의미에서 근원적인 죄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또, 원죄란 전통적인 견해인 ‘교만’이나 ‘태만’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에 의한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종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이 곧 지배해야 할 존재에 대한 복종이 된다는 점에서, 원죄란 ‘교만 동시에 자기 비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원죄는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는 행동의 죄와 남에게 먹게 하는 유혹의 죄로 발전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들에게 엄청난 비극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2. 수치와 두려움

뱀을 통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여자와 아담이, 막상 선악과를 따먹고 나니까 유혹의 소리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지기는 했지만,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쪽으로 밝아졌습니다. 선악을 밝히 알아보는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인인 자기들의 비참한 모습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즉, 죄로 인한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고, 그 부끄러움을 감춰 보려는 가련한 시도를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죄이지만, 일단 저질러진 죄를 해결하는 데에 그들 자신이 더없이 무력함을 절감할 뿐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비극은, 그들 자신의 죄된 비참한 모습을 정확하게 볼 정도로 눈이 밝아지는 바람에, 하나님과 말씀에 대해서는 눈이 어두워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그들은 영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에,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자애롭게 들리던 하나님의 음성이, 타락한 이제는 벼락치는 소리로 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 어린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가 두려워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한 두려움을 해결하려는 이 행동 역시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귀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들립니까 여러분의 눈에는 하나님의 얼굴이 어떻게 보입니까
죄의 결과인 부끄러움과 두려움의 포로가 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진리를 좇아 사는 자유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8:34에서 말씀하신 대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인 것입니다. 일단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되어 죄가 이끄는 대로 죄악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3. 하나님의 문책과 인간의 책임 전가

하나님은 숨어 있는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아담이 숨어 있는 장소가 아니라, 아담의 심령 상태를 물은 것입니다.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아담과 그 아내는 회개할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본격적인 문책에 대해, 증오가 담긴 책임 전가라는 또 다른 죄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인을 종으로 부리는 죄의 가공할 위력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문책에 대해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하여,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아내와 그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전가합니다. 즉,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하나님이 저런 여자를 아내로 주신 것이 잘못이라는 겁니다. 참, 인간이란 간사합니다. 처음에 아담이 여자를 보았을 때, 뭐라고 환성을 질렀는지 압니까 창세기 2:23에 보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런 아내가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막았어야 했고, 또 지금이라도 남편으로서 죄에 동참한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죽을죄를 졌습니다. 다 제 탓이니 저를 벌주시고, 제 아내는 좀 봐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랬으면, 아마 하나님도 기특하게 여기셔서 처리를 달리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감히 하나님과 아내를 싸잡아 원망하고 증오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일단 사람이 죄의 종이 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온갖 죄악에 눈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문책에 대해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여자 역시 “유혹된 게 저이고, 또 남편을 유혹한 게 저이니, 저를 처벌하시고 남편은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도 있듯이, 핑계 또는 책임 전가란 인간 사회에서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할 일, 혹은 죄나 잘못에 대한 책임 전가란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그 자신에게도 대단히 큰 손해를 초래하게 마련입니다.
죄의 결과란 수치와 두려움, 증오와 책임 전가 그리고 분열입니다. 이것은 영적 죽음의 상태입니다. 에베소서 2:1에 보면, 주님의 구원 행위를 가리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합니다. 또한, 성경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켜, 죄로 인한 하나님과 인간의 분열, 인간과 인간의 분열, 인간과 자연의 분열을 연합시키는 화목 제물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죄는 분열시키고, 사랑은 연합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태도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당장 징벌하시거나 죽이지 않으시고, 왜 번거럽게 문책을 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회개 아닙니까 회개의 기회!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죄의 기회로 삼고 말았습니다.

4. 하나님의 징벌

하나님의 징벌은 뱀에게 먼저 떨어졌습니다. 첫째는,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기어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할텐데,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말씀을 가리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시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여자에게 다음과 같은 징벌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잉태의 고통을 크게 더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남편을 사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남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은 아담에게 다음과 같은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첫째는, 아담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고, 따라서 아담은 종신토록 땀 흘려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부여된 노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며 만물을 다스리고,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고, 열린 원죄의 결과
열매를 마음대로 따먹으면 되는바 정말 영광스럽고 복된 노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그 기쁘고 즐거운 일이 그만 고역이 되고 만 것입니다.

5. 맺음말

아담과 그 아내의 죄의 결과는 수치와 두려움, 증오가 담긴 책임 전가와 분열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벌이 따랐습니다. 이와 같이 비참한 죄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죄인을 종으로 부리는 죄의 가공할 위력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죄의 가공할 위력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바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만 분쇄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죄와 죽음과 멸망에서 자유로운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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