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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성호와 우리의 신앙(14) (요 1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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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속에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의식을 뚜렷이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식솔들이기에 하나님의 보호와 베푸시는 은혜를 받아서 살아가야 하고, 하나님의 자식다운 품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차 유업으로 받게 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의 우리 성도들에게 또 한 가지 하나님에 대해서 현저하게 알려진 내용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여러 곳에서 암시되어 왔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는 아주 현저하게 알려진 내용이 있습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고 경배하는 하나님은 본질상 한 분이시지만, 이 한 분 안에 성부, 성자, 성령(성령)이라 불리우는 삼위(三位)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삼위이시면서도 일체(一體)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첫째,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에 대한 점진적 계시

1. 구약 시대에 암시적으로 계시되기 시작한 삼위일체 하나님
구약에는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계시는 없지만, 여러 곳에서 암시적인 계시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여러 암시적인 계시 가운데서도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실 때에 “우리가”라고 복수로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천지창조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1:2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고 있는 이들을 보시고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11:7)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6:8)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라는 복수로 표시하시고 의논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성령) 하나님께서 일체가 되심을 암시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삼위이시면서 일체로 계심을 암시적으로 계시해 주셔서 여기서 다 말씀드리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삼위이시면서 일체로 계시는 분이심을 온전하게 계시하는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계시의 일정한 진전의 과정에서 시작의 단계이기에 암시적으로만 계시되었습니다.

2. 신약 시대에 현저하게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특성에 의해서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삼위이시면서 일체로 존재하심을 더욱 현저하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됨에 대한 계시
먼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의 장면에서 삼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님은 하늘로부터 비들기의 형체를 하고 예수님의 머리 위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예수님을 향하여 들려 오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셨습니다(눅3:21-22). 그런데 예수님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한 논쟁이 있었을 때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이유로 죽이려 하였습니다(요5:17-18).
또 예수님께서 수전절이 가까오는 즈음에 예루살렘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 다니실 때에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인지 밝히라”고 다구쳤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지만 너희가 믿지 않고, 또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인데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에 믿지 않는다”(요10:25-26)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30절)고 하셨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하셨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사람인 주제에 자칭 하나님이라 한다”(33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할진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38절)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고, 하나님과 일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의 수세(受洗)시 그점을 인정하셨고,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일체이심을 계시하심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성부 하나님과 동등된 성자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일체 되심에 대해서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면서 전하신 고별 메시지에서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이 일체이심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요한복음 14장에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3년 반 동안 직장도 다 버리고 따라 다녔던 제자들에게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있을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그곳으로 데려 가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너희가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 중에 의심 많은 도마가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그 길을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자신이 성부 하나님과 일체이시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일체이시기에 성자 예수님을 안다면 성부 하나님도 아는 것이라는 말씀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에 이번에는 빌립이 묻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의 의미를 속히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한심스럽게 여기시면서 설명해 주십니다.
(요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역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이 성부 하나님과 하나(일치)이시라는 귀중한 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3) 성령님도 성부와 성자와 일체이심을 계시하심
그리고 바로 이어서 성령님도 보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에 가시면 아버지께 구해서 다른 보혜사이시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4:6). 그런데 그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14:26). 성령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되, 자의(自意)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16:13) 성령님께서 오셔서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알리시는데, 그 예수님의 것은 곧 아버지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6:15).
성령님께서 오셔서 가르치는 내용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이 성부의 것이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각각의 위를 가지고 계시지만, 일체를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부의 생각과 성자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을 보면, 삼위로 계시면서도 일체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성령님까지 포함하여 삼위가 일체이심을 가르치셨습니다.

4) 삼위의 동등되심에 대한 계시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으로 주신 말슴 가운데 삼위 하나님을 동등된 위치에 나란히 언급하면서 세례를 주라고 하신 말씀에서 삼위가 동등되심에 대한 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이시면서 일체되신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계시의 극치를 보게 됩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고 하셨습니다.

5) 사도들에게 계승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
이러한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에 대한 구약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도들과 초대교회에 그대로 계승되어 신앙과 경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하나님께서 삼위이시면서도 일체로 계시는 분이라고 믿었고,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창조와 보존과 구속과 같은 모든 일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다고 믿었고, 그분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경배하였습니다(엡1:3-4). 그래서 신약 성경에는 삼위일체론적인 설명이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고전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고전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둘째,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의 신앙

☆ 신앙과 경배의 대상
그리고 그런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경배는 오늘날의 교회에도 그대로 계승되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과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삼위일체’되신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혁교회에서 예배시에 사용한 찬송에는 ‘성삼위송’이라는 찬송의 장르가 있어서,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는지 그 대상을 분명히 표명하였던 것입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이 ‘삼위이시면서 일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표명하였습니다. 예배의 대상이 모호해지면 안되겠기에 예배시간마다 ‘성삼위송’을 통해서 분명히 표명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사에서 보면, 하나님이 삼위일체 되신 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많은 이단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중에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여호와 증인’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증인들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 ‘여호와’ 밖에 없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 중에서 탁월한 피조물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인격자로서 하나님이신 것이 아니라, ‘신적 영향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동등한 하나님이시요, 일체가 되신다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그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계승하여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신앙과 경배의 대상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는 입장에 있는 우리 교회도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신앙과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시에 드리는 찬송이나 신앙고백에서 그점을 명확하게 표명하고 있는 [예배찬송] 가운데 우선 성삼위송에서 가장 명확히 표명하고 있으며, 송영이나 경배송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송을 올리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신경 가운데도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순서적으로 고백합니다.
여러분 예배시간마다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는지 그 대상을 분명히 정하고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대상이 모호하거나, 잘못되면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그분께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엄위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생각하면서 그분께 경배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 삼위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의 구원에 대한 찬미와 감사
삼위 하나님께 베푸신 은덕을 하나 하나 생각하며 감사하고 기려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1:3-4에서 하나님께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의 풍성함을 설명하면서, ‘삼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자기의 아들들이 되도록 선택하셨고(3-6절), 성자께서 피흘려 주셔서 죄사함을 얻게 하셨고(7-12절), 성령께서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심으로 인치셨다(13-14절)고 합니다. 그러면서 후렴구처럼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 자신이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그렇게 은혜를 베푸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배시간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찬미하고 감사하려면,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하나 하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생각하면서 그 내용을 가사로 담아서 찬미해야 합니다.

☆ 삼위가 일체를 이루심 속에서 하나됨을 배움
그리고 우리는 삼위가 일체를 이루시는 신비한 연합과 사귐을 통해서 부부의 한몸됨과 거룩한 사귐을 배워야 하고, 교회의 한몸됨과 거룩한 사귐을 배워야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독특한 각각의 위(位), 즉 신격(神格)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개체가 아니라 하나로 존재합니다. 참으로 신비한 연합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 거룩하고 친밀한 교제 가운데 계십니다. 뗄레야 뗄수 없는 아주 친밀한 연합 가운데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하나되심은 어떠한 것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하고 신비한 연합과 사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독특하고 신비한 연합과 거룩한 사귐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더욱 넓게 반영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하여 한몸을 이루게 하심으로, 삼위 가운데서 이뤄지고 있던 거룩한 사귐과 한몸됨이 온 인류에게 반사되고 확대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는 한몸됨과 거룩한 사귐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거룩한 사귐과 한몸됨을 반사해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류 전체에서 삼위 하나님의 거룩한 사귐과 한몸됨과 같은 거룩한 사귐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목적을 기어이 이루시기 위해서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창조의 목적이 삼위 하나님의 하나됨과 거룩한 사귐을 반사하시고 확대하여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구원의 목적도 같습니다. 다시 삼위 하나님의 거룩한 사귐과 한몸됨을 넓게 반영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자녀들을 택하여 구원해 내시고 당신의 형상을 회복시키시고 교회로 불러 모으신 것입니다(요일1:3).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그래서 이제 교회로 부름을 받은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의 하나됨과 거룩한 사귐을 중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한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다른 성도들과의 거룩한 사귐과 한몸됨을 통해서 삼위 하나님의 한몸됨과 거룩한 사귐을 반사하고 높이 드러내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거룩한 사귐과 한몸됨을 반사하여 구현해 내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존재 목적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교회라는 사회속에서 삼위 하나님의 한몸됨과 거룩한 사귐을 반사하여 구현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구속받은 성도들은 부부 사이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사귐과 한몸됨을 중시해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 사이의 거룩한 사귐과 한몸됨이 부부 사이에서 잘 반영되어 나타나야 합니다.
(엡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물론 삼위 하나님의 한몸됨이나 거룩한 사귐은 부부 사이의 그것이나, 교회에서의 그것과 다른 독특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나 교회는 삼위 하나님의 한몸됨과 거룩한 사귐을 원형(原形)과 전범(典範)으로 해서 한몸됨과 거룩한 사귐을 드러내야 합니다.

맺 는 말

오늘은 ‘삼위이시면서 일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경배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예배시간마다 삼위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의식이 뚜렷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삼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덕을 헤아리면서 찬미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 사이에 있는 거룩한 사귐과 연합을 교회 생활속에서 잘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부 사이에서도 삼위 하나님 사이에 있는 거룩한 사귐과 하나됨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 사이에 있던 거룩한 사귐과 하나됨을 더욱 확대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형상을 갊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구속하여 교회를 이루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그리고 창조와 구속의 목적인 삼위 하나님 사이에 있는 거룩한 사귐과 하나됨을 부부 사이에서, 교회속에서 반사하고 증시하기 위해서 서로가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신 부부의 존재 목적이요,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담임교역자 라황용
전북 김제 송상교회 /☏(0658) 542-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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