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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육신을 따라 죽은 자여, 성령을 따라 다시 살자 (겔 37:1-14, 롬 08:6-11, 요 11:1-45)

첨부 1


생활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예수를 믿던 사람이 주를 떠나는 경우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들게 살던 사람이 살기가 괜찮아지게 될 때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어쩌다 있습니다.
죄를 짓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살기가 힘들다고 해서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경우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살만 한 사람이 더 잘 살려는 욕심 때문에, 남을 속이고 도둑질까지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호주머니가 넉넉해지면, 죄를 지을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돈뿐만이 아니라, 지식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비리 사건도, 그와 같은 예에 속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김영삼 씨를 모시면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 어렵던 시절에는, 그런 부정을 저지를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모시던 분이 대통령이 되고 자신도 상당한 지위에 오르게 되자, 그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 8절에서 말하기를 「육신의 욕망대로 따라가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중심으로 살면서 육신을 따라가게 될 때에는, 틀림없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님은 로마서 8장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생명과 평안을 누리고,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에 이르지 아니하고 생명과 평안을 누리고자 한다면, 생활이 여유롭게 되기를 간구하기 전에, 영적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죽은 자를 일으키고 그들에게 다시 생명을 주는 자(요11:2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주신다고 하신 그 생명이 바로 ‘영적으로 거듭 난 삶’

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우리 인간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삶의 목표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그리고 분명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죄에 빠지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새 생명을 얻게 되면, 곧 삶의 목표가 땅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게 되면, 세상 재물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져도, 쉽사리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생활이 여유롭다고 해서, 주를 부인하거나 교회를 떠날 염려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 생명을 얻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삶의 목표가 하늘에 있지 아니하고 땅에 있게 될 경우, 조금만 형편이 좋아지고 지위가 높아져도 금방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등지고 멀리 떠나거나, 주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짓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풍요롭고 넉넉한 삶 속에서 빈곤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고 아쉬울 것이 없어서, 남부럽지 않게 즐거운 인생을 사노라 하지만, 실상은 마른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물질적으로는 옛날보다 훨씬 풍요롭게 되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영적으로는 빈곤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이 여유로와 지면서 하나님을 멀리한 까닭입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거듭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과연

1.사람 노릇을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요
오늘의 본문 말씀인 구약 에스겔서를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는 대로 어떤 골짜기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죽은 사람의 뼈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른 뼈들에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겔37:4)」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마른 뼈들 속에 생명의 기운(숨)을 불어넣어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여호와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마른 뼈들이란,
ㄱ.교만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떠난 인간들로서
ㄴ.그 속에 생명의 기운이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우리에게는 생명력이 다 말라 버리고 희망도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미래가 없다(겔37:11)”고 말한 것을 보아, 알 수가 있습니다. 생명력이 없고 희망이 없으며 미래가 없는 삶이, 곧 마른 뼈만 남아 있는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①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ㄱ.진리가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진실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지 않고, 잠깐 동안 이 세상에서 즐기게 되는, 자기 만족과 쾌락을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미래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들에게 미래를 위한 준비가 있다면, 자기들의 노후를 위한 준비, 자기 자식들을 위한 준비가 있을 뿐입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준비는 전혀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실된 삶’이 그들에게는 정말 마른 뼈들만도 못한 형편입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교만으로 가득차 있어서, 자기들의 말로(末路), 곧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으며, 미래가 있겠습니까
ㄴ.하나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서 그 속에 하나님의 영(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여러분 각자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누리게 하고,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여 주십니다. 그 성령이 우리에게서 떠나면, 우리는 다시금 죄와 죽음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있어야, 사람이 진정 살 수 있는 길을 택하고, 또한 그 길로 부지런히 나아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길을 택하고 죽을 짓만 골라서 하게 됩니다.
청와대 제1 부속실장이었던 장학로 씨는, 자신의 행위가 죽을 짓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정(司正) 태풍이 불고 있을 때에 그런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6절에서「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이고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떠나감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없는 사람은
②죽은 송장과 같아서, 지독한 냄새만 풍기게 됩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다니에 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에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째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 나사로의 누이 동생인 마르다가 불평 섞인 말투로 예수님께 말합니다. “지금은 냄새가 지독할 것입니다. 죽은 지가 벌써 나흘이나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냄새가 지독하게 납니다. 그러나 육신이 썩는 냄새는 사람에게 그다지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죽어 썩게 되면, 그 냄새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ㄱ.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했습니다(롬8:7). 육신의 욕망을 따르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롬8:8).
ㄴ.본인과 타인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 영혼이 썩어 죽게 되면, 곧 참된 생명이 떠나게 될 경우에는, 그 사람 자신이 소망을 잃어버리고 살맛을 찾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세상 재미로 한껏 즐거운 듯하나, 실상 그 속마음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어 괴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타인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인생의 목적을 하늘에 두고 사는 사람은,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유익을 안겨 줍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을 땅에 두고 사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타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은 생각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이 입는 피해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손해가 된다 싶으면, 마구 화를 내며 다투자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 곧 육신의 욕망 따라 사는 사람들은
③소망도 없고, 기쁨과 평화도 없는 삶을 계속하게 됩니다.
무엇을 잠깐 얻는 기쁨은 있지만, 그 속에 영원한 기쁨이 없기 때문에,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는 좀 열심을 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에 어찌 평안이 깃들 수가 있겠습니까 늘 불만이고, 짜증과 불평이 그 입에서 떠날 날이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있어야 괴로움도 참아 낼 수 있는 일인데, 그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이것이 본능적인 죄의식입니다)만이 그 마음에 가득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문제도 시험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소망이 없고 기쁨도 없이 사는, 마른 뼈다귀와 같은 우리 인생들을, 하나님께서는

2.무덤에서 데려다가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뼈들을 향하여 소리를 쳤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마른 뼈들이 본래의 모습대로 연결되면서, 힘줄과 살이 돋고 그 위에 피부가 생겼습니다. 이에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생명의 영(靈)을 불러다가, 그 기운을 그 속에 불어넣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숨을 쉬기 시작하여 제 발로 일어섰고 엄청난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하고 예수님이 명령하시자, 죽었던 나사 로가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고, 요한복음서

기자는 적고 있습니다.
그에 앞서서 예수님은 「나는 죽은 자를 일으키고 그들에게 다시 생명을 주는 자(요11:25)」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는다 하여도 다시 살 것(요11:25)」이라고 하셨습니다.
①우리가 예수를 믿고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 속에 생명의 영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생명의 영이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곧 진리와 기쁨이 되시는 성령을 말합니다. 그 이전에, 예수님이 진리와 기쁨의 주로 오셔서, 어떻게 살아야 참된 삶인지를 말씀하시고 그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십자가만이 하늘로 들어가는 열쇠(구원하는 능력)가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ㄱ.이 십자가의 정신이 우리로 하여금 인간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해 주고
ㄴ.이 십자가의 희생과 용서와 사랑의 정신이, 우리로 하여금 사람 구실을 하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②이렇게 우리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다시 말하면 새 생명을 얻어 성령을 따라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한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재산을 다 탕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말하기를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았노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 중심으로 육신적인 생각에 따라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래서 땅이 아닌 하늘에다가 목적을 두고 살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무슨 착한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올바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ㄱ.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ㄴ.우리의 영혼을 용서해 주십니다(10).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온 사실만을 중요하게 여기시지, 과거의 일은 전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ㄷ.그래서, 그 영혼이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해 주십니다.

ㄹ.물론 우리가 육신적으로 죽은 후에도 다시 살려 주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전히 육신을 따름으로써 죽음의 길을 계속 가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다시 사는 생명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까
제가 간절히 바라기는

3.하나님의 영을 가득히 받아 새롭게 거듭나는 체험을 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시 사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나라 제조 회사들은 광고 선전비가 연구 개발비의 6.5배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연구 개발비가 선전비의 4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광고보다 품질을 중요시하는 반면, 우리 나라는 품질보다는 광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메이커 제품(대기업 제품)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광고 선전 때문입니다. 일반 제품이 품질 면에서 대기업 제품보다 별 차이가 없고, 그 값은 대기업 제품이 몇 갑절 더 비싸도, 사람들은 대기업 제품을 더 선호합니다. 이제는 또, 값이 싼 국산 제품보다는 비싼 외제를 더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오늘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지 않나 싶습니다. 삶의 질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주느냐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생활의 편리성을 따지기보다는,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비싼 것을 구입합니다. 생활의 속내용은 마른 뼈들로 가득하건만, 외부 치장을 그럴싸하게 눈속임을 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①이제는 주를 믿고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ㄱ.예수님에 대해서 좀더 잘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헛된 것을 멀리하고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선전에만 힘쓸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도록 해야 합니다.
썩어질 것, 곧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물질에

대해서 그토록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사람들이 존중해 주기를 바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해 주실 때까지, 우리는 더욱 열심히 주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ㄴ.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②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거듭난 삶’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마치 어느 제조 회사가 광고 선전비로 들어가던 돈을 품질 향상에 힘쓰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뽐내며 살아 봤자,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땀 흘리고 정성을 드려 산 결과가 한 줌 흙밖에 남는 것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지금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일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영원히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혹시, 나와 내 가족, 내 자식만을 위하여 사느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옵기는,
ㄱ.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세상 핑계를 댑니다만, 하나님께 빚진 것은 죽도록 갚아도 다 갚지 못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꼭 교회 일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말합니다.
ㄴ.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살아야 합니다.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잘 지켜야 하겠지만,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튼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 됩니다.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너라!」 오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주의 음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더욱 충실하게 지켜 삶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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