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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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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너무나 작은 움직임이라는 선입견으로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거나 무시해 버린 일이나 사건이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었던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아무도 짐작하지 않았지만, 더우기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원하지 않았지만 언땅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움직임과도 같은 역사의 흐름을 아무도 거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변혁의 기운을 잉태하는 “작은 죽음”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며칠 앞둔 예루살렘에서의 일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군중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그리이스 사람들도 몇이 있었는데 이들은 유대교를 애호하는 그리스 문화권의 이방인들로서, 해방절을 맞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뵙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들의 이러한 소망은 단지 허영된 호기심이 아니라 그분을 알고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알고자 하는 진정한 바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의 반응이 처음에는 우리를 좀 당황하게 합니다. 마치도 그들의 이러한 요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러나 잘보면 오히려 온전한 답을 해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열매를 맺기 위해 기꺼이 죽어가는 한 알의 밀알 같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으로써 예수는 자신 인격의 심오한 면과 자신의 과업이 지니는 의미를 드러내 주심과 동시에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 이 말씀은 예수께서 이미, 자신에게 다가올 일을 잘 알고 계셨음을 확인해 줍니다. 땅에 떨어져 흙의 성분에 의해 부패되고 결국에는 자신의 본 모습마저도 잃어버리는 밀알의 비유는, 곧 닥쳐올 처절한 십자가 처형을 통하여 온전히 무(無)가 되실 예수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토록 철저히 무의 존재가 되심은 매맞음이나 채찍질, 십자가에 못박힘과 같은 육신적 고통 뿐만 아니라 내적인 고통으로 말미암은 것이 었습니다. 친구의 배신과 변절, 버림받음의 고통....
그러나 예수의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더욱 감명을 주는 것은 예수의 사물을 보는 방식입니다. 그분에게는, 죽음이란 생명의 예고이며 잃어버림은 벌어들임에 대한 예고입니다. 예수는 자신에게 닥쳐 올 일을 명백히 알고 계시면서도 자신이 죽음으로써 맺어지게될 결실들을 내다 보시는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갈릴리 민중 속에, 서러운 역사 속에 생명의 움직임으로 부활 하시어 나타내셨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시련들을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 대면해 갈 수 있는 단단한 용기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들이 당하는 혹은 당하게 될 어려움과 고통들은 결코 그 자체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확신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의 고통과 땀, 그리고 우리의 몸짓이 정의롭고 더불어 살아가기 좋은 살맛나는 세상을 이루어가는 한알의 밀알이 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작은 죽음”이랄 수 있는 우리의 희생적 움직임들이 정말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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