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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과 좋은 사귐을 갖고 살면? (사 64:1-9, 고전 01:3-9, 막 13: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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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장 짜리 달력에서, 이제 마지막 장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11월 달력을 떼어 냈습니다. 그리고,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니, 웬지 썰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한 달 동안, 주의 은총과 평화가 성도들 가정에 늘 충만하기를 축원 드립니다.
저에게 있어서 올 한 해는, 기억될 만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주의 은혜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이, 참으로 복된 일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사귐을 갖는다는 것이, 다른 무엇을 소유하는 것보다, 정말 값진 일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친구와 만나, 서로 생각을 나누면서 마음에 있는 따뜻한 정(情)을 주고받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래서 옛날에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해서, ‘사람의 만남’을 아주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하기가 어쩐지 꺼려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나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기분이 안 좋은 일들이 더 많은, 그런 만남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생각할 때에 자꾸만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인생은 만남입니다. 좋은 만남이 있으면 좋은 인생이 되고, 잘못된 만남은 인생을 망칩니다. 그런고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유익한 사귐을 자주 갖게 된다는 것은, 진정 행복한 삶을 이루는 지름길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참 좋으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과 함께 늘 가까이 지내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분과 함께 늘 진리의 말씀을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진실로 좋은 만남과 사귐을 갖게 되었노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서 얻게 된 유익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니, 유익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아무 소망도 없이, 찰나적인 기쁨으로만 만족하며 살던 우리가,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맛보며 하늘의 소망을 갖고 살게 되었으니, 이 어찌 놀라운 변화라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ㄱ.우선, 세계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큰 기쁨입니다.
ㄴ.따라서, 우리가 그의 자녀가 되고 백성이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가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까
ㄷ.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 와 진리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다가, 머지 않은 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과 함께, 새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주님을 만남으로 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이 만남이, 진실로 아름다운 열매로 결실되기 위해서는, 계속 주님과 좋은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좋으신 아버지의 자녀라 할지라도, 그 아버지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못된 친구를 더 가까이 한다면, 훌륭한 아버지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고전 1장 9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와 사귈 수 있도록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좋은 사귐을 갖게 된 것은, 그 어떤 말로 그 감격을 다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깊이 사귀게 되면
ㄱ.예수님은 우리의 생활을 풍부하게 해 주십니다(고전1:5).
ㄴ.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진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고전1:6).
ㄷ.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가까이 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은총과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고전1:7).
이와 같이, 주님을 가까이 하면서 깊은 사귐을 갖게 되면, 삶이 풍부해 지고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 수 있게 됩니다. 그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책 64장 9절에서『우리는 주님의 백성입니다』라고 고백했는데, 과연 우리는〈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가 있겠는지요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져다주신 그 예수님을,

1.정말 기쁨으로 맞이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요

주님과의 만남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진실로 주님을 만나 뵙는 체험을 했다면, 그 감격이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새, 그 감격과 감동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태양처럼 밝게 빛나던 예수님이, 이제는 내 주장과 내 고집으로 말미암아 그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내 마음에는 어둠만이 가득합니다. 불만과 불평, 불신과 원망이 내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매년마다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밝은 빛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의 어둔 마음을 밝게 비추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매년 새롭게 오실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와 함께 늘 현존(現存)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종말적인 주의 재림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종말적인 주의 재림입니다. 종말적인 주의 재림이란, 이 세상에서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종말적인 주님의 재림을 바로 맞이하려면, 늘 함께 하시는 주님과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요, 매년마다 맞이하는 주님의 재림을 의미있게 맞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오신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서 인생을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저런 사유로 해서 그 마음의 빛이 사라지고 어두워져서
①잠을 자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막13:33에서 예수님은,『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주께서 갑자기 왔을 때, 너희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지 않게 하라(막13:37)』고 경고하셨습니다. ‘잠은 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ㄱ.믿음을 가진 성도가 그 본분을 다하지 않고 있음을 말합니다. 주의 뜻을 행치 않거나, 소홀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다 있습니다. 피곤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로 피곤하게 되었습니까 누구 때문에 피곤하게 되었습니까 그러나 그 이유가 아무리 충분해도, 갑자기 오신 주님을 영접치 못하면, 변명 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ㄴ.‘잠은 잔다’는 것은, 주님 앞에서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로 설 수 있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타인이 잠자는 것을 탓하느라, 자신이 졸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잠자는 것에 대한 책임은 그 당사자가 져야 하고, 자신이 졸다가 주님을 영접치 못하면, 그 책임은 자기 자신이 져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타인의 잘못이나 허물에 대해서는, 그를 위해서 기도는 할지언정, 심판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마음속으로라도 정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있는 사이, 타인이 나를 보고 실망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이유로 주님과의 사귐을 계속 갖지 않게 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과 손을 잡고 불의를 행하게 됩니다.
②그 결과, 불의와 죄악으로 온 몸이 더럽혀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백성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이사야 선지자지만, 그 앞서서 밝히기를『우리는 불의와 죄악으로 더러워졌노라(사64:6)』고 말합니다. 그래서 백성은, 그 죄로 인하여 자신들이 불행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ㄱ.자기 죄에 깔려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수 없습니다. 공명정대하게 심판하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내가 먼저 심판하려다가 좋으신 주님을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참 좋은 친구이신 예수님과 사귐을 소홀히 하다가 죄에 빠지고, 결과적으로는 자기 죄로 인하여 불행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ㄴ.이처럼 한 번 주님을 멀리하게 되면, 좀처럼 자기 죄를 뉘우칠 줄 모르는 게, 고집스러운 인간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간절한 기도보다는, 입으로 죄 짓는 일을 더 부지런히 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따뜻한 손길을 우리에게 내밀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언제든지 우리가 손을 내밀면,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책 64장 8절에서, 기막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여, 주님은 여전히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도’라는 말은, ‘죄를 짓고서 그 죄로 인하여 죽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엉뚱한 길로 가다가 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2.하나님은 세계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롬11:36에서 바울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능력에 의해서 살고, 모든 것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모든 영광을 영원토록 하나님께 바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①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ㄱ.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3-4절에서 『하나님은 인자하셔서, 환난을 당할 때에 위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환난이 비록 우리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것일지라도, 그 죄를 깨닫고 뉘우치면, 그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ㄴ.우리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꼭 지켜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고전1:9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과 친하게 지내기만 하면, 지난날 지은 모든 잘못을 다 용서하시고, 주의 뜻을 이루기에 필요한 모든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거니와,
②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ㄱ.그는 그의 손으로 우리를 빚으셨습니다. 낳은 자식도 소중하겠지만, 직접 만든 인간은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아주 귀중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인생을 헛되이 살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우리가, 어찌 주님의 뜻을 저버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ㄴ.우리가 주님을 멀리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분명히, 그 진리의 길을 방해하는 자가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이 방해자로 나타날 수도 있고, 나 자신의 교만함과 헛된 지식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모든 방해자들을 믿음으로 물리치고, 진리 안에서 우리의 모습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3.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조심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사람에게 장래의 소망을 물으니,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겠다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지난번의 한총련 사태가 말해 주듯이, 요즘의 학생 사회가 삭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건만 이 학생은,믿음을 가지고 학생회장에 도전하여 당선되었습니다.
엊그제 장사씨름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올해 들어 두 번씩이나 천하장사가 된 이는 김경수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의 실력이 상대방보다 뒤지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기도했더니, 승리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씨름판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밝혔습니다.
두 젊은이가 정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사파가 판치는 학생 사회와 우악스러운 씨름 판 세계에서, 믿음을 지켜 승리하고 있는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도 세상 탓만 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릇되었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닙니다.
①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심을 고백하면서, 우리가 먼저 바르고 떳떳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ㄱ.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28편 9절에서 말합니다.『주의 백성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의 소유인 이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영원토록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우리가 주의 백성임을 잊지 않는 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크신 복을 내려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ㄴ.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돌아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구원해 주실 것을 호소해야 합니다. 그냥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기도가 있어야,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②그러면서,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가까이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ㄱ.그 어떤 환난을 당할지라도,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사람은 말뿐이지만, 진정 위로가 되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면,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이 없는 자가 되어 바로 설 수 있도록, 진정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ㄴ.그러면 주님과 좋은 사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좋은 사귐을 갖게 될 때에 얻게 되는 유익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고, 그 진리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③이러한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김삼환 목사님이 시무하는 명성교회에, 어느 큰 재벌 회장이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예배드리는 태도가 심히 불경건했습니다. 언제든지, 몸은 반쯤 돌려 다리를 꼬고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눈은 목사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강대상 아래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그분의 그런 태도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기도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공이 시작되면서 붙잡혀 들어갔습니다. 정치자금을 헌납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허다한 사람들이 거의 초죽음이 되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신도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히시기야왕이 죽게 되었을 때에, 벽을 향하고 통곡하며 기도했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배드리는 태도는 불경건했으나, 그 말씀만은 어떻게 기억되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그도 벽을 향하고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취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취조하는 사람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취조하는 수사관이 염려하지 말라고 그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 재벌 회장의 예배드리는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통성기도 시간에는 기도도 않던 그가, 이제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배드리는 자세도 경건해졌습니다. 설교 말씀도 진실한 자세로 경청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날에는 재벌 회장으로서 주님을 만났으나, 이제는 주님의 종이 되어, 겸손한 자세로 주님과 사귐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따르면, 우리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늘 깨어 있어서, 항상 조심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언제 오시든지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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