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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인의 가치관 (약 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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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는 환란과 핍박으로 인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서 야고보 사도가 보면 편지라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먼저 시험에 대한 교훈을 기록했고 그 다음에는 지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기독교인의 가치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에만 나오면 모두 다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야 참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후에는 성령의 은혜로 말마암아 점점 더 믿음이 자라가게 됩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성화] 된다고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첫째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와 허물을 인하여 눈물로 회개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회개한 사람은 회개한 만큼 거룩한 성도가 되고 따라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창세전에 택해주신 은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속함을 받은 은혜, 성령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믿음으로 살게되는 은혜를 깨닫고 감사의 생활을 하게되고 기쁨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셋째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확실한 열매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락했던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달라집니다. 악하던 사람이 선량해지고 불의하던 사람이 의로워지고 거짓으로 가득차 있던 사람이 진실해집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속에 계신 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그 사람 속에 마귀가 들어앉아 있었고 악령이 주장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예수님을 모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안 변할래야 안 변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무엇 보다도 생각이 달라집니다. 세상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면 먼저 그 영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혼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육신의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나온 이후에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여러분은 가치관이 달라졌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십니까 교회에 나온다고 해도 돈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 보다 골프치러 가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일날에도 친구와 만날 약속이 있으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주일날에도 잔치집에 갈 일이 있으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별로 할일이 없고 한가해야 교회에 나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가치관에 변화가 오지 않은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우선순위가 달라집니다. 돈버는 것 보다 하나님앞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골프치는 것 보다, 친구를 만나는 것 보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을 더욱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게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풀]과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사야 40:6-8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하기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전서 1:24)라고 했습니다.
모든 육체가 풀과 같은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풀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잠시 후에는 마르게 되고 꽃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궁이의 땔감으로 쓰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풀의 꽃과 같다]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시시한 것이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요 별것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보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 중에는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돈도, 명예도, 지위도, 기술도, 재능도, 건강도 모두 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둬가시면 다 없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욥의 고백을 아시지요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기1:21)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시편 49:16-20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
그리고 전도서 5:13-16에 보면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그 재물이 재난을 인하여 패하나니 비록 아들을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 즉 그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모두 다 내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내가 먹은 것만 내 것입니다. 밥상에 차린 것도 내것이 아닙니다. 내가 먹기 전에는 내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으나 그 하나도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하나도 누리지를 못하고 죽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전도서 5:18-19에 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고 6:2-6에서는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이 없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훌륭한 신앙과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실패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자기의 남편이 돈을 얼마나 벌어 주느냐에 따라서 남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여인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예수 믿으면서도 돈이 없다고 실패자라고 생각하거나 축복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사업을 잘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있어서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을 것이나, 이와 반대로 부정한 방법으로 부정축재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많기 때문에 방탕하게 살고 타락의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더군다나 돈이 있다고 해서 마음이 교만하여진 비뚤어진 인격자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런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1)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하나님은 역사와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한나라의 흥망성쇠는 물론 우리의 생사화복까지도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받고 하나님이 살게 하셔야 삽니다. 하나님께서 거둬 가시면 재산도 지위도 명예도 생명도 모두 다 끝이 나고 맙니다.
우리가 이 시간까지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요, 우리의 남은 여생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속함을 받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셔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장차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최우선권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면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물질이나 이 세상 보다 신령한 것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만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나 지식이나 지위나 기술이나 건강보다도 더욱 소중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라도 마음 하나만 비뚤어지면 끝난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 버는 것 보다 은혜 받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박사학위를 받는 것 보다 성령 충만 받는 것을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 보다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3) 현재 보다 미래를 바라보고 순간적인 것 보다도 영원한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현세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내세를 내다보고 사는 사람은 삶의 태도가 전혀 다릅니다. 현세 보다 내세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잠시 누리는 이 세상의 낙 보다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복락을 바라보며 삽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24-26에 보면 모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왜 모든 부귀영화를 버렸습니까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가서 받을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영화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4) 기쁨으로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곧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 귀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들도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1) 물질을 나누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되고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게 됩니다.
누가복음 6:38에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고 했고, 잠언 11:25에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고 했습니다. 또한 19:17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2) 복음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이 보다 더 귀한 일이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해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 보다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가치있는 일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고 했습니다.
왜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했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형제는 믿음의 형제를 가르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형제들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는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으나 누구든지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똑 같은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 세상에서 높고 낮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고 부하고 가난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나 목욕탕에 들어가서 벌거벗고 있으면 똑 같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똑 같은 것입니다. 임금이라도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종이라도 똑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낮은 형제는 예수님 때문에 높아진 것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예수님 때문에 낮아진 것을 자랑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세계 최강의 미국 대통령으로서 세상적으로는 더 이상 높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교회에 나오면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끄러운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이와같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자랑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돈 많은 것을 자랑하고 지위 높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는 예수 믿어서 구워 받은 것을 자랑하고 은혜 받은 교인이 된 것을 자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수고한 일군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참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도, 소원도, 취미도, 자랑거리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신앙적인 가치관을 올바르게 가지셔서 이 험한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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