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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스로 가는 요나 (욘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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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는 대조의 책이다.
니느웨 성읍의 소명을 계기로 하나님과 요나 선지자 사이에 주고 받는 작용과 반작용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명령-요나는 불복종, 하나님은 니느웨를 지정-요나는 다시스로 가고, 하나님은 동쪽-요나는 서쪽, 하나님은 육지-요나는 바다, 요나는 도주-하나님은 추적, 요나는 화를 내고-하나님은 타이르고, 요나는 죽겠다고 으름장을-하나님은 살아야 한다고 타이르는 관계를 볼 수 있다.

하나님과 요나는 평행선을 그리며 경주하듯이 달려가고 있다. 하나님을 떠나서 도망하려는 요나와 그를 잡으려고 손을 뻗치는 하나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오늘 3절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반작용으로 떠나는 요나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러나'로 시작되어진다.

1. 도망가는 길
요나 선지자와 동시대에 활약한 남왕국 유다 출신의 선지자는 “아모스”선지자다.
아모스가 하나님으로 부터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소명을 받은 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다.(암7:10-17)
그 때 그의 고백을 보면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아모스 3:8]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요나는 그렇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록 사자 같은 목소리로 호령한다 할지라도 예언하지 않았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가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언급하지도 않은 다시스로 갔다.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의 이런 행동은 충격적인 것이다.
요나의 초기 사역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요나의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다.

우리는 이 요나의 모습을 통하여 나를 돌아보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도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스로 가는 신앙인이 아닌지요

말씀에 보니 하나님이 일어나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였는데 요나는 일어나 다시스로 갔다고 합니다. 일어나는 것까지는 요나의 순종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불순종하고 넘어지는 연약한 선지자 였습니다.

물론 믿음의 용사들도 넘어질 때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었고,
베드로 3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넘어졌습니까
오늘 본문은 넘어진 이유를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행동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없을 때는, 핍박 받을 때는, 어려울 때는 하나님만 바라보는데
있고, 편하고, 쉽자-다른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골프 채를 바라보고, 여가를 바라보고, 땅을 바라보고, 명예를 바라보고, 물질을 바라보고

요나의 도주를 바라보며 몇가지 생각.
① 요나의 분주한 도주는 요나의 내면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하나님을 일단 떠난 요나는 일사천리로 불순종의 길로 달려간다. 요나 안에는 육의 생각 만이 가득 채워졌다. 그러므로 그의 안에 하나님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② 영적생활은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한 때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는 자였고, 그의 사역은 훌륭한 성공과 열매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순종과 결실이 오늘의 부름과 헌신을 채워 주지는 못한다. 성도는 오직 오늘의 새 순종으로 새 결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도의 삶의 원리이다. 만일 우리가 여기에서 벗어난다면 요나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의 입에는 이런 말이 항상 되풀이 된다. 옛날에는 뜨거웠는데, 옛날에는 열심이 했는데, 옛날에는 성령충만 했는데, 옛날에는 물불 안 가리고 일했는데,
신앙은 바로 오늘의 열심과 오늘의 헌신과 오늘의 성령충만이 필요.

③ 신앙생활은 내 취향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고, 듣고, 전하는 자이다. 그러나 요나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국토의 회복의 메세지를 전하라 했을 때 아멘으로 순종한 반면, 니느웨의 심판과 회개의 메세지를 전하라 했을 때 노멘으로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취향대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 취향대로 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그를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했다면 이미 우리는 나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로마서 6:6]

2. 죄악의 길
다시스는 어디인가
스페인 서남쪽에 위치한 두루인들의 거주지. 광물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내가 그들 중에 징조를 세워서 그들 중 도피한 자를 열방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열방에 선파하리라” [이사야 66:19]
즉 다시스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지역입니다. 해상무역의 한 극점으로 그 당시 땅끝으로 생각되던 지역입니다. 그곳은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훌쩍 떠나 살기에는 알맞은 땅입니다. 즉 요나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싫었고, 자기가 이스라엘을 떠나 세상 끝으로 도망하면 하나님도 자기를 잊으리라(포기하리라) 생각히였습니다.

또 요나가 다시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다시스로 무역항으로 풍요로운 도시였다. 흥청대는 다시스의 경기와 또 별천지 같은 세상에 대한 소문이 요나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또 다시스에서 오는 배들이 이스라엘의 항구인 욥바에 내려오므로 다시스의 풍물이나, 기이한 것들을 직접 목격할 수도 있었다.
즉 이미 요나는 다시스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더불어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마음에 안 맞자 즉시 다시스를 선택한 것이다.

죄란 먼저 사람의 마음 속에 조그만 틈이 생기면 들어와 자리를 잡고 무르익어 가다가기회가 되면 튀어 나오는 것이다.
본문의 3절에 '다시스'가 3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니느웨가 싫어지자 나의 다시스가 3배나 더 큰 매력으로 클로즈업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한 마디 말씀하시자. 다시스를 3번이나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의 체면 때문에 가지 못했던 다시스. 그러나 이제 요나의 마음에는 다시스로 꽉 들어찼다.

예) 이스라엘-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갔다.
그러나 광야에서 금방 애굽의 고기가마를 생각.
롯의 처 처럼 구원의 자리에 가면서도 죄악의 도시를 바라보는 것.
오늘 우리는 구원을 얻은 성도-새 예루살렘,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으로 가는 백성. 그런데 종종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3. 예비된 것 같은 길
배를 만났다.-마침 다시스로 가려고 항구에 도착하니 거기에 배가 있었다.
그 때는 배를 구하기가 힘들던 시절. 배를 한번 타려면은 몇 달씩 기다리던 시절. 그런데 그레네 항구에 가지 마침 맞게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는 것이다. 요나의 생각에 “야 하나님의 뜻인가보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는구나”하는 생각.
요나는 자기에게 전개되는 유리한 상황 때문에 자기의 불순종을 합리화 시킨다. 비성경적인 활동을 정당화 시킨다. 아마 성경 말씀까지 갖다 붙이지 않았을까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명기 31:8] 을 생각하며
아! 다시스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나님은 어쩌면 내 마음을 잘 아시고 내 가는 길을 미리 예비 하시지 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열린 문이라고 다 들어가서는 안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하여 판단하고 생각하고 행동.
그 배의 정체는 출항 한 후에 알 수 있었다.

4.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내려가는 길
불순종의 길. 비싼 댓가를 치루는 길.
니느웨의 회생을 거절한 요나는 다시스의 희생을 치뤄야 했다.
배삯은 훨씬 비쌌을 것이다.

다시스로 가는 배-관광 배가 아니다. 상선. 요나를 싣고 가는 노예선.
그 배는 한 번 타면 돌아올 수 없는 길.
요나는 또 내려가는 길을 갔다.
올라가는 삶이 성도의 삶이다. 올라간다. 하늘, 교회성장, 믿음이 성장
그런데 요나는 다시스로 내려가고, 배 밑창으로 내려가고, 바다 속으로 내려가는 내려가는 길은 곧 지옥 길이다. 영적인 하강을 하고 있다. 신앙은 올라가는 것이다.(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오늘 우리는 요나와 같이 다시스로 가는 배에 몸을 싣고 있지 않는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의 길, 죄악을 향하는 길로, 스스로 자족하면서, 내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히브리서 2:1]
다시스로 가는 배에 몸을 싣고 떠내려 가는 성도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늘 나라로, 사명의 나라로 나아가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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