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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만난 예수 (눅 09: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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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 백성들은 정치, 경 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 로마의 압 제 속에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러한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많 은 권능을 행하시고 수많은 백성들 에게 은혜를 베풀 때 저들의 마음속 에 '기다리던 우리의 메시아 그리스 도가 나타났다'고 환호성을 올렸습 니다. 그리고 낙담 속에 있던 저들 이 주 안에서 위로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들이 따르 는 것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따르 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많은 사람 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극히 적은 소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다가 잘된 사람도 있고, 예수님을 따르다 가 망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만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안만났더라면 좋았 을 것을 예수님을 만나서 결국 예수 님을 반역하고 목 메달아 죽었습니 다. 돈 많은 부자 청년은 예수님에 게 안갔으면 좋았을 것을 가서
선 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예수님께 질문했다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할 때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 습니다. 예수님을 안만났으면 돈 가 지고 그냥 잘 살았을 것을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근심을 태산처럼 짊 어지고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다가 고민만 얻은 사람도 있고, 겨우 떡이나 조금 얻 어먹고 끝난 사람도 있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병 나은 사람도 있습니다. 죽었다가 산 사람도 있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살아났습니다. 베다니 나사로는 죽 은지 나흘만에 무덤 속에서 살아났 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당시에 예수님 을 만나서 인격적으로 변화된 삭개 오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에 올 라갔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삭개오를 보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많은 돈 을 모았던 사람인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재산의 반절을 가난한 자들 에게 나누어 준다고 했으며 남의 것 을 토색한 것은 4배나 갚겠다고 했 습니다.
그때 당시 안믿는 사람들은 예 수님에게 재산을 다 빼앗겼다고 생 각했습니다. 삭개오는 재산을 다 빼 앗겼습니다. 그렇지만 삭개오는 자 기의 부정한 과거를 청산했습니다. 이것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얻은 복이었습니다.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는 세상 사람들이 미친 여자라고 했는 데 예수 믿고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 있던 여인은 예수 님을 만난 이후에 부정한 과거를 청 산하고 성결된 여인으로 복음을 전 하며 살았습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 가에 달려 죽으실 때 한쪽에 있던 강도는 예수님을 보면서 '저는 분명 히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자기를 십 자가에 못박는 원수에게까지 자비를 베푸는 저 분이야말로 참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이것을 깨닫고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그때 예 수님께서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가 있으리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 다. 분명히 그 강도는 천국에 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예수 만나서 운명을 바 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을 따르다가 운명을 바꾼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르다가 떡이나 좀 얻어먹고, 특별 한 것 없이 끝나버렸지만 소수의 사 람들은 큰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 까 그것은 분명히 제자들일 것입니 다. 제자들만이 예수님을 만나서 팔 자를 고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집에 살았나요, 부자가 되었나요, 출 세했나요, 교권을 잡았나요. 예수를 만났던 제자들은 그런 면에서는 얻 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것을 그들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입 니다. 제자들에게 만나주고 싶어 한 예수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예수님 은 여러 측면에서 자신을 나타내 주 십니다. 병든 자에게는 의사 선생, 배고픈 자에게는 빵 먹이는 자선 사 업가로, 죄지은 자에게는 용서의 주 님으로, 낙심된 자에게는 위로해주 는 자비로운 분으로, 바리새인들에 게는 선생으로, 죽은 자에게는 권능 의 주님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데 제자들에게 만나주고 싶은 예수 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묻 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 냐
그때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 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는 '기름부음 받은자'라는 말인데 기 름부음 받은 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분명히 이 백성에게 보내신 선지자요, 이 백성들을 다스 릴 위대한 왕이시요, 우리의 제사장 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라 고 고백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 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 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후에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그들에게 공개합니 다.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 고(22절)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그리스도, 분명히 그는 이 백성들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정치적인 메시 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굶주린 백성 들에게 빵을 먹이는 경제적인 메시 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은 '나는 죽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 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 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23절)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께서 무 엇 때문에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 까 나를 만나려면 따라오라는 것입 니다. 따라가는 것은 만나기 위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나를 만날 때 어떻게 만나야 하느냐 지금까지 내 가 너희를 만나주는 과정이 여러 가 지가 있었다. 기적을 통해서 병든 자를 고침으로 만나주었고, 죄지은 자는 용서해 줌으로, 굶주린 자에게 는 빵을 먹이므로, 낙심된 자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주므로 만나주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만나려면 십자 가로 가야 한다. 나는 십자가를 지 고 죽을 것이다. 나를 따라와서 만 나야 할 자리는 거기다.'
여기 '자기 십자가'라는 말은 당 시에 로마의 반란을 일으켰던 유다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반란자 유 다를 따랐던 4백명의 유대인들을 죽 일 때 전부 십자가형으로 죽였습니 다. 십자가형은 자기가 직접 지고 간 십자가 위에서 자기가 달려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만나려거든 너희 자신이 죽어야 한다.' 이렇게 말합니 다. 아마 제자들에게 초창기에 이 말을 했더라면 예수님을 따르지 않 았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에 갈릴리 바닷가에 가서 고기 잡는 어부들을 만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할 때 기적의 주님이시요, 이 민족의 정치 적인 메시아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따랐습니다. 따라가면 먹을 것도 있고, 주님의 권능 앞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 데 '너희가 나를 따르면 내 십자가 의 죽음으로 나를 만날 것이다.' 이 말을 했더라면 안따랐을 지도 모릅 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면서 친히 십자가를 보고 가는데 야 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 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우리 두 아들을 좌 우편에 앉게 하소서.
그때 베드로 와 다른 사도들이 분을 냈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두 아들은 좌우편에 앉고 우리들은 들러리로 따라 다니 라는 말이오.
이들은 마음속에 인 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따랐던 것입 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나를 만 나려거든 분명한 것을 알아야 한다. 십자가에 죽는 나를 만나야 한다.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는 원리를 제 자들에게 비로소 공개했던 것입니 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받아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 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 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 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 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 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난 이후 일생동안 제자들에게 친히 하신 그 말씀을 자기 몸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으로 만났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 이 내 안에 사시므로 예수님을 만난 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 는 굶고, 헐벗고, 고생하고, 매 맞고, 감옥에 가고, 결국은 순교자가 되었 습니다.
사도 바울이 만난 예수는 십자 가의 예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 기에서 자기의 가장 큰 축복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사도 바울이고, 또 가 장 위대한 생애를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살아간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 습니다.
예수님이 복 받으신 분으로 믿 으십니까 예수님이 복을 못받았다 면 무엇 때문에 믿습니까 복 받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복 없는 예수라고 생각한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 에서 가장 복을 많이 받으신 분입니 다. 예수님께서 복을 어디에서 받았 습니까 십자가에서 받았습니다. 만 약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예 수님의 복되심을 보지 못한다면 복 받은 예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 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 자가의 예수는 복되신 예수요, 우리 는 그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십자 가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 에 그 복을 내가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자 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만나라 그리 고 내 복을 거기에서 받으라'고 말 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죽음으로 예수를 만나고 있습니다. 함께 죽는 사람으로 만나는 것은 최고의 사건 입니다. 누구와 함께 죽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함께 죽을 사람이 없습 니다. 함께 죽어야 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함께 죽으면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모라비아 교단의 창시자인 진젠 돌프 백작이 젊었을 때 어느 미술관 에 그림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런 데 그가 많은 그림 중 한 그림 앞에 서 있었는데 그 그림이 바로 십자가 에 달려 피흘리시는 예수님의 그림 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스틴버그가 그린 그림이었는데 주님께서 피 흘 리시는 모습 속에서
내가 너를 위 해서 죽는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통곡했 습니다. 미술관 관리원이 문을 잠그 고 나가야 할텐데 한 청년이 그 앞 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울고 있으니 까 달래서 보냈습니다. 그날로 그는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오로지 성경 한권을 들 고 선교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결 국 그는 모라비아 교도의 창시자가 되었고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 니다.
우리는 주님을 여러 측면에서 만나야 합니다. 병든 사람이 있습니 까 치료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낙 심된 사람이 있습니까 용기의 주님 을 만나십시오. 이 세상에서 소외당 할 때 나를 격려해 주시는 살아계시 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수고하고 무 거운 짐을 지고 여기 왔습니다. 가 슴속에 맺혀있는 모든 슬픔과 괴로 움이 있습니다. 이때 나를 위로해주 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러한 주님도 만나야 하지만 우리가 만나야 할 예수님은 십자가 에서 나의 죽음으로 만나야 할 그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주님을 만나게 될 때 나의 질병도, 고통도, 문제도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어리석은 종이었습니다. 제가 세 번이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7년마다 병원에 들어가서 수술을 하 고 나왔습니다. 그래도 몰랐습니다. 세 번째 수술을 하기 위해서 서울 대학병원에 들어갔을 때 의사가 마 취를 시키면서 그래요.
아프면 아 프다고 말하세요.
마취 주사를 놓 고 마취가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 뽀족한 것으로 찔러요. 그래서 제가
아야!
했더니
마취가 아직 안되었구나
하고는 조금 있다가 또 찔러요. 그래서 제가 또
아야!
하 니까
아직도 안죽었네.
그래요. 죽 어야 수술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죽으니까 수술을 못해요. 그때 제 머리속에 '아, 안죽어서 병원에 왔구 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어 야 수술을 하고, 죽어야 병을 고치 죠. 안죽으면 병을 못고칩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려면 마취를 해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 를 십자가로 인도하는 것은 내가 너 와 함께 죽어야 고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수십년동안 예수님을 따르 기만 하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 리지 않는 신앙은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것 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잠깐 만나고 돌아갈 뿐입니다.
나사로는 무덤에서 살아났지만 그 후에 한 일이 없습니다. 떡 얻어 먹은 사람도 다음날 또 배가 고팠습 니다. 자신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죽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만이 생명되신 주님을 모실 수가 있습니다.
저와 성철 스님이 가는 길은 다 르지만 그 분에게서 교훈을 삼습니 다. 성철 스님은 수도하기 위해서 전 생애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그랬습니다.
목사는 수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지 않고 세상적인 것을 가지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가 10년동안 장좌불와를 하 고, 생식을 해서 이가 빠지고, 불교 계에서 위인으로 등장이 되니까 그 를 만나려고 사람들이 암자에 몰려 들었습니다. 그때 성철 스님이 이런 규율을 정했습니다.
나를 만나려거 든 불당에 가서 삼천배를 해라
삼 천번 절을 하고 오라고 하니까 천번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못하고 포기 하고 돌아갑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스님 만나서 뭐 얻을 것이 있습니까 수도하는 진리를 만 나야죠. '나는 수도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내 길인데 너도 삼천배를 해서 스스로 부처가 되면 나 만날 것도 없지' 그래서 삼천배를 하라는 것입 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진구 목사가 '별세 신학' 논문을 쓰는데 제가 논문을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원래 그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이 아 닙니다. 그 사람은 체계있게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논문을 쓸 정도로 글 재주가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 데 이 사람이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저는 잠깐 쉴겸 해서 조금 있다가 금방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 말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훌러 신학교에서 Ph.D라는 것은 굉장한 학위인데 이 분이 Ph.D를 하고 있 습니다. 이 분이 제
별세 신학을 논문으로 쓰기 위해서 그동안 준비 해 왔는데 박진구 목사가 앞에 나가 서 '별세 신학'에 관한 발제를 하면 얼마나 잘 했는지 모든 교수들이 박 진구 목사를 만나면 '별세 별세' 그 런답니다. 그리고 같은 클레스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박진구 목사가 보고를 하면 감동을 받는다고 합니 다. 이 분이 저에게
목사님, 저는 이 논문을 쓰면서 너무 너무 은혜를 받습니다.
성서의 광맥이 이것이라 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 면서
목사님, 이것은 성서의 광맥 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을 버리고 땅 에 오신 것부터가 별세 아닙니까
그러면서 이 논문을 1년 더 쓰면 마 친다고 그래요. 제가 그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논 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쓰는 작품이다.'
별세의 신앙과 신학을 세계화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공부도 잘 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밖에 모르는 사람을 들어서 별세 신학을 쓰게 하셨습니다. 별세신학 논문은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으로 써야 하 는 논문이지 지식으로 쓰는 논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라 든지, 갈라디아서는 성령의 감동으 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얘 기를 들으면서 '야,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자기를 부정하고 써야 하는 논문입니다. 하 나님의 은혜로만 써야 하는 논문입 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 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 으므로 만나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 는 것은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문제가 해결 됩니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를 만나게 되면 모든 인간관계가 다 잘 만난 것이 됩니다. 어떤 자녀들은 좋은 아버지 만나서 어렸을 때부터 좋은 집에 살고, 좋은 것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학교 다니고 죽었을 때 는 유산을 받고 그 아버지의 영광스 러운 명예도 얻고 그래서 부모를 잘 만났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두들겨 맞고 가난하게 살다가 아버지에게서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이 자란 자식들은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그럽니다. 그 런데 과연 우리가 아버지로부터 유 산을 많이 받았다고 좋은 부모를 만 난 것이고 아버지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고아처럼 버림받은 자 식들은 잘못 만난 것인가 한가지 사 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만났다면 어떤 부모도 좋은 부모라는 사실입 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와 함께 죽지 않고 만나는 부모는 육신적인 관계일 뿐입니다. 무엇을 얻어서 좋 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죽음 을 선언하고 만난다면 거기에서 하 나님의 은혜를 입기 때문에 자기에 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아버지일지 라도 무릎을 꿇고, '오, 나의 생명의 대리자이신 아버지여' 그렇게 고백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버지를 잘 만난 자식은 아버지에 게 효도하는 자식입니다. 그 자식은 최고로 부모를 잘 만난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잘해주어도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자식은 잘못 만난 것 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십자가에 예 수와 함께 처형한 만남을 이룬 사람 은 어떤 부모도 '오 하나님이시여, 이 부모를 나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 니다.' 그렇게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가난하게 자랐 는데 우리 친구는 부모를 잘 만나서 부유하게 자랐습니다. 저는 어린 마 음에 그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그래 서 밤이면 눈을 감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집 아들로 태어났으면 밥도 배불리 먹고, 맛있는 것도 많 이 먹고, 좋은 옷도 입었을텐데 내 가 어쩌다가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 났나' 그런데 그러다가도 '내가 이 집 아들이 아니면 저 집 아들이 될 텐데 만약에 내가 저 집 아들이 되 면 내 이름은 없어질 것 아닌가 에 이 그냥 이대로 살자'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또 태어날 기 회가 올 때 어떤 부모를 만나야할 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부 모를 또 만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효자가 되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효자 되라고 우리 아 버지가 말해서가 아니고 그 아버지 에게서 내가 효자가 되어야 되겠다 는 감동을 받았고 하나님의 효자가 되는 비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십자가에 죽는 이 만남을 이루기 전에는 어떤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에게 좋은 아 버지와 어머니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는 강팍한 남 편으로부터 두들겨 맞고 살았습니 다. '어떤 여자는 좋은 남편 만나서 일생동안 사랑받고 편안하게 영화를 누리며 사는데 어쩌다가 이런 남편 을 만나서 좋은 청춘을 한맺혀 살아 야 하나' 그런 슬픔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믿은 이후에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후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마다 자신을 위해서 죽으신 주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한맺힌 과거의 생에 대해 서 십자가의 사건으로 극복하고 집 에 돌아가서 남편이 때릴 때마다 무 릎을 꿇고
여보, 나를 때려도 괜찮 아요. 나를 죽여도 괜찮아요. 당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남편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전 아내가 아니 었습니다. 눈동자를 보니까 꼭 미친 여자 같았습니다. 미치지 않고는 어 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남 편이 그때 제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나한테 맞으면서도 나와 살아주었 는데 집을 나가면 어떻게 하나' 하 고는 한마디를 했습니다.
미치지는 말아라

얼마전에 그 부인을 만났습니 다.
어떻게 사십니까

잘 삽니 다.

남편이 달라졌나요

아닙 니다.

그때 안달라졌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삽니 까

제가 달라졌습니다. 나는 죽 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는 것은 제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가정이 달라졌습니다.
드디어 예수 와 함께 미친 여자, 그 모습을 보고 서야 남편이 제 정신이 돌아온 것입 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원망과, 불행과, 탄식을 극복하는 위대한 만 남, 위대한 복은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 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다. 나는 참으로 소중한 몸이다.' 이 신 앙 위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사람은 감옥에 가도 좋고, 어떤 경 우에도 좋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 신 주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이제 자기 존재가 새로운 존재인 것을 고 백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과 함께 죽음 으로 만나서 내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 전체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 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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