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염려를 극복하라 (마 06:25-34)

첨부 1


무더운 여름철이 오면 더위에 시 달리게 됩니다. 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산으로, 바다로 시원한 곳을 찾아갑니다. 사람은 쉼을 얻고자 자 연을 찾아갑니다.
마음과 육체가 쉼을 원하는 것은 삶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쉬지 못하면 육체가 아무리 쉬어도 쉼이 되지 못합니다. 마음이 쉬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걱정, 근심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을 가도 마음에 걱정이 있는 한 쉼이 되지 못합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 연의 세계에서 쉼을 배우게 하십니 다.
옛말에 하나님은 아버지요, 자연 은 우리 어머니와 같다는 말이 있습 니다. 어머니의 품속에 있으면 쉼이 있듯이 자연과 함께 있으면 쉼이 있 습니다.
노벨 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카 렐 박사는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업가는 일찍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 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 들에 피어있는 꽃 한송이를 가 지고 우리에게 삶의 큰 진리를 가르 치면서 평안하게 살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 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 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 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요 14:27)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모든 염려와 걱정에서 쉬게 하십니다. 우 리의 수고와 무거운 짐은 마음에 눌 리는 압박감입니다.
당시는 가난한 시대였습니다. 먹 고, 마시고, 입고 사는 것은 민중들 에게는 큰 염려거리였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 는 문제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 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되 근심을 겸하여 주시지 않는다고 약 속하셨습니다.
저는 매주일 강단에 설 때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인들의 스트레 스를 풀어줄까 피로와 긴장에 쌓인 가슴을 풀어줄까' 생각하고 있습니 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마음에 파도 처럼 엄습하여 오는 염려가 사라지 기를 바랍니다. 근심은 목을 조르고 동물이 목을 눌린다는 뜻입니다. 예 수님께서 근심에 대하여 가르치신 말씀을 생각하십시다.

근심은 비합리적인 것입니다 (시시한 것이다).
인생은 먹고 입는 것, 소유하려 는 어떤 것보다 소중합니다.
목숨 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 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 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 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이 말은 '천하보다 소중한 목숨 과 몸을 가진 사람이 시시한 것으로 마음을 빼앗기느냐'는 것입니다.

근심은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 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 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 니하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 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 6:26-28)
'자연 만물도 잘 살아 있는데 하 물며 인간으로 걱정하느냐'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새들 이 일을 안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 은 염려를 안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참새처럼 먹고 살려고 일하는 사람 은 없습니다. 새들은 미래를 염려해 서 저장하고 그것으로 안전을 찾지 는 않습니다.
자연의 만물이 걱정을 않고 살고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하는 것은 자 연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근심은 쓸모없는 일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 근심으로 해결된 일이 없고 나아지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무려 500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염려는 무익한 것이라는 것 입니다.
누가 염려하므로 과거를 해결할 수 있으며 미래를 해결할 수 있습니 까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염려는 인 간을 병들게 하는 두 가지 무서운 악입니다. 영혼을 병들게 하고 생명 을 해롭게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인간의 모든 염려는 거의가 다 이 문제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건강 문제, 생활문제, 명예 등 모두가 내 삶의 문제입니다.
어떤 분이 말한대로 염려는 기한 전에 무는 장래의 가상적 곤란에 대 한 이자라고, 장차 곤란이 오리라는 가상에 대하여 미리 이자부터 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염려는 강에 미치기 전에 어떻게 강을 건널 까 하는 도강의 수고를 하는 것입니 다.
양식이 떨어지기 전에 밥 굶는 수고입니다. 병이 나기도 전에 입원 하는 수고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죽기 전에 장사하는 수고 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근심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 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 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마 6:30)

근심은 영적이지 못합니다(염 려는 비신앙적이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 라(마 6:31-32)
이 세상에 불신자들은 근심할 권 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은 자기를 보살펴 주는 아버지 하나 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근심할 자 격도 없고 근심할 이유도 없는 것입 니다.
근심은 하나님께서 짐을 져 주시 지 않으리라는 불신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 에 사람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므 로 근심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 니다.
근심은 사탄이 우리 마음속에 심 어주는 정신적 살인입니다.
하나님 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

근심은 죄인의 본성입니다.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 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 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57:20-21)
사람의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 가 는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 하는 반항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싸움을 선포할 때 당신은 결코 평화 가 없습니다.
근심은 인간을 악하게 만들고 실 패자로 만들어 인간을 불행하게 울 도록 만드는 무서운 악이요, 신앙을 죽은 신앙으로 만드는 원수 마귀의 무서운 무기입니다.
'염려'는 헬라어로 '매림노'라는 말인데 이것은 '마음을 나눈다'는 말 입니다. 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산 산조각으로 갈라버린다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요, 실패와, 좌절과, 열등 인생으로 만드는 병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나 누이고 영적으로 우리를 병들게 합 니다. 염려와 근심은 살인마입니다.

염려는 건강을 해칩니 다.

마음의 염려는 오직 우리 마음의 상태이기에 마음의 생각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한 의과대학 교수의 발표에 의하 면 의사에게 오는 환자의 20%가 그 들의 근심과 두려움을 면할 수만 있 다면 자기들 스스로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음식 때문에 위궤양에 걸 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좀먹는 근 심과 염려 때문에 위궤양에 걸린다 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 게 하느니라(잠 15:13). 근심은 여 자를 늙게 만들고 아름다움을 빼앗 아 갑니다.
현대인의 두 가지 전형적인 병은 위궤양, 관상동맥혈전증인데 이것은 염려의 결과로 온 것입니다. 가장 많이 웃는 사람이 장수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 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 라(잠 17:22)
지금 우리들 마음속에 바라는 것 은 염려없이 일생을 살고자 하는 것 일 것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 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 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염려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어 야 합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 냐
어린 자녀들은 염려하지 않습니 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있다면 자신을 귀한 존재로 여 기게 될 것입니다.
사실 염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 한 의심입니다. 의심뿐 아니라 하나 님의 섭리에 대한 침범입니다. 하나 님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우리 는 자녀 노릇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 아버지 노릇까지 하겠다는 뜻입니 다.
하나님은 주인이요, 우리는 종입 니다. 모든 염려는 주인의 것이요, 종은 할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러므 로 염려는 내가 할 것이 아니요 하 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영역을 침 범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 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 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 고 만일 하나님의 가장 귀한 생명을 주셨다면 그 목숨을 유지할 음식을 주시리라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 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주셨다면 입을 옷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책 망은 믿음이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의심하므로 염려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 서에 보면
너희 모든 염려를 주님 께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 라
우리는 장래의 모든 문제를 하 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살고 죽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 니다.

둘째, 염려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33절)
언제나 생각이 나에게 집착되어 있는 한 염려나 근심이 물러나지 않 습니다. 이상한 정체여서 관심을 가 지면 가질수록 더 강하게 달려드는 것이 이 염려라는 것입니다.
아예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무 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생각하는 사람은 염려가 그의 생에서 결코 떠날 수가 없습니 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위하는 심정으 로 봉사할 것을 찾는 자에게는 결코 세상 염려가 있을 리 없습니다.
꿀벌은 근심할 틈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관심을 가지고 열 심히 봉사하는 자는 자기 문제로 고 민하거나 염려할 시간이 없다는 것 입니다.
시애틀의 프랭크 루프 박사는 23 년간이나 관절염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는 불구자이면서 인생을 풍족히 살 수가 있었으니 그 비결은 그는 남에게 봉사하는 방법을 택하였습니 다. 그는 병상에 누운 다른 불구자 들의 이름과 주소를 모아 가지고 그 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불구자들끼리의 단체를 만들어 서로 편지로 격려하려 하였고 마침 내 전국적인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매년 1만 4천여 통의 편지를 쓰고 방송과 집필로서 수천명의 병자들을 위로하였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차이점이 있 다면 그것은 내면에서 타오르는 목 적 의식, 즉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세계가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 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자기 중심적 으로 괴로워하는 대신 자기보다 더 의미있고 고귀한 이상을 위해 자기 를 바친다는 기쁨을 그는 가졌던 것 입니다.
주는 자는 받는 자보다 복 이 있다는 말은 언제 어느 곳에서 든지 진리입니다.
항상 주기를 좋아하는 샘물은 계 속 줄 것이 있고 생생하지만 고여 있는 도랑물은 썩어 악취를 내고 유 익이 없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남에게 봉사하며 자기 의 생을 나누어 주려고 하는 자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지만 받으려 고 하는 자는 불만이 가득합니다.
남에게 좋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자신에게 좋은 것입니다. 남에게 장 미를 주는 사람의 손에는 항상 약간 의 향기가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욕설을 주기 위하여서는 내 입에 독을 품어야 하고 그 독은 자 기 심장을 뛰게 하고 온 몸에 독기 가 스며드는 것입니다.
염려를 없애고 마음의 평화를 얻 기 위해서는 남에게 흥미를 가짐으 로서 자기를 잊을 수 있고 남의 얼 굴에 웃음이 떠오를 일을 매일 하나 씩 하자는 것입니다.
링컨은
모든 사람은 그들이 행 복하려거든 그만큼 남에게 행복스럽 게 할 만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을 제거하 는 일이나 행복을 창조하는 일은 오 직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의 일을 하려는 데에서만 이루어지 는 것입니다.
뉴욕 어느 고아원에서는 하루에 세 가지씩을 의무적으로 실천토록 했습니다.
첫째, 매일 아름다운 것을 하나 씩 찾아 볼 것이요,
둘째는 매일 감사한 일을 하나씩 생각하는 것이요,
셋째는 매일 선한 일을 하나씩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일로 행복클 럽이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오늘 일은 오늘로 족하 게
내일 일은 내일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은 오늘뿐입니 다. 한 날의 문제는 그날의 문제로 족합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오늘로 당겨서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내 내일을 생각하고 계 획을 세워야 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 스스로가 염려 할 것이요, 내일 일은 내일 자신이 처리한다는 뜻입니다.
'저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피어있는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 십니다.
인간은 백년을 못다 살면서도 다 른 사람의 근심까지 모아 살고 있으 며 살지 않은 미래의 것까지 가불하 여 근심하며 살고 있습니다. 염려없 이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 마음을 비 우고 자족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동물의 세례는 인간처럼 염려가 없습니다. 어떤 새도 이웃의 새보다 더 많은 둥지를 틀지 않습니다. 어 떤 여우도 자기가 잠자고 있는 굴은 하나뿐입니다. 어떤 다람쥐도 도토 리 창고를 짓는 일은 없습니다. 어 떤 제비도 자기 집을 흙이 아닌 금 강석으로 짓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은 알 수 없습니 다. 그러므로 내일의 불행할 것을 미리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내일 살아있지 못하면 네 것이 아닌 남의 세상을 위한 염려의 결과가 됩 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내일 염려는 내일로 미루라는 것 이 아니고 내일 염려는 내일을 주관 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입니 다.
랍비 시므온은
평생에 나는 한 번도 사슴이 무화과를 말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사자가 물건을 운반하 고 여우가 장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염려없이 먹고 산다. 만일 나를 섬기기 위해 창조 된 그들이 걱정없이 먹고 산다면 나 의 창조주를 섬기기 위해 창조된 나 는 얼마나 더 걱정없이 먹이시겠는 가 그러나 나는 염려하므로 있는 것 까지 부패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타울러의 일 화가 있습니다. 타울러가 하루는 거 지를 만나서
친구여, 오늘도 안녕 하십시오.
하고 말하니
나는 하루 도 안녕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 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행 복하기를...
하자 거지의 대답이
난 불행하여 본 적이 없어 하나님 께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타울러는 놀라서
그것이 무슨 뜻이오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거 지는
날이 좋으면 하나님께 감사하 고 비가 와도 감사하고 먹을 것이 넉넉하면 감사하고 배고파도 감사합 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 이나 나를 기쁘게 하는데 무엇 때문 에 내가 불행하지 않을 때 불행하다 고 말해야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또 타울러는 놀라서
당신은 누 구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왕 이오
하고 그 거지는 대답했습니 다.
그러면 당신 나라는 어디 있 소
하고 타울러가 물었습니다. 거 지는
내 마음속에 있소라고 대답 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있습니다.

기도로 극복할 수 있습니 다

이 모든 염려를 기도함으로 없이 할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 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 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 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짐을 덜어주며 나 홀로 있지 않다는 의식을 갖게 만들 어 줍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나 홀로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날 구해줄 이 주 예수시니 오직 예수
이제 우리는 한숨을 쉬거나 걱정 하거나 근심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 에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 되 감사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 요 그 비결은 당신의 축복을 헤아 려보라는 것입니다.
헤롤드에보트는 식품상을 하다가 파산당하고 7년간 갚아야 할 빚을 지고 켄사스로 취직하러 힘없이 가 는 길이었습니다. 앞에서 두 다리가 없는 앉은뱅이가 롤러스케이트를 타 고 손에 쥔 나무토막을 밀면서 오다 가 헤롤드에보트를 보더니
안녕하 십니까 참 좋은 날씨군요
하고 말 했습니다. 이때 에보트씨는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 다. '나는 두 다리가 있고, 걸을 수 가 있다.' 그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 었습니다. '저 사람이 다리가 없어도 즐겁고 행복하고 신념을 가질 수 있 다면 나는 두 다리가 있으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때 자신감이 생겨 가슴이 뛰었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조건을 찾아야 합 니다. 우리가 지금 돈 없다고 부자 를 부러워하지만 두 눈을 10억불에 팔겠습니까 두 다리를 무엇과 바꾸 겠습니까 손과 귀, 자녀 중 어느 것을 팔겠습니까 당신이 가진 것을 계산해 보십시오. 삼성 그룹을 다 준다해도 팔지 않을텐데 우리는 고 마움을 모르고 삽니다. 가진 것에 관하여는 거의 생각지 않고 우리는 늘 갖지 못한 것을 생각합니다.

회사소개 I 설교방송 참여안내
Copyright (c)1997-2001 C3TV All rights reserved. Contact church하나님c3tv.com
서울시 양천구 목 1동 923-5 방송회관 11층 기독교인터넷방송
기독교인터넷방송 ☎ 02-3219-5601 / 기독교위성방송 ☎ 02-3219-6400 FAX 02-3219-5609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