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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세상의 빛 (마 05:14-16)

첨부 1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하나님이 가라사 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 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창조하 실 때 빛을 먼저 창조하셨습니까 그것은 빛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으므로 생명이 있습니다. 만약에 빛이 없어 지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태양이 빛이 있으므 로 말미암아 그 빛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태양의 빛이 사라지면 순 간 전 지구는 냉동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공중에 나는 새나, 땅 위에 있는 모든 동물이나, 물속에 있는 모든 해물에 이르기까지 한 존재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빛 은 곧 생명입니다.
두 번째로 빛이 있으므로 말미암 아 우리는 날마다 세상의 아름다움 을 보면서 모든 것을 구별하면서 우 리 눈으로 보고 살고 있는 것입니 다.
우리는 캄캄한 밤이 오면 일할 수가 없습니다. 활동할 수도 없습니 다. 걸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빛 이 있으므로 우리는 일하고 이 자연 의 아름다움도, 우리의 얼굴도 보며 삽니다.
창세기 1장 마지막절에 하나님께 서 보시기에 좋았다 하신 것은 빛을 만드신 이후의 얘기입니다.
빛은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 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하나님께서 빛을 통해서 우리에 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을 통해 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데 이 빛을 성경은 곧 예수님을 가 리켜서 '나는 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대 의 찬사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렇게 말씀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복 가운데 최고의 복은 주님으로부터 받는 찬사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없 어서는 안될 소금같은 존재, 그리고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빛과 같은 존 재,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축복 입니다.
우리는 흔히 복 하면 내가 이 땅 에서 받고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지 만 참 복은 자기 존재에 영광스러움 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내 존재가 세상 어느 곳에 가든지 소금같은 존재가 되고 내가 어느 곳에 가든지 어두움에 있 는 자들을 빛으로 비추어준다는 사 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대의 영광이며, 축복이 됩니다.
그런데 소금과 빛은 서로 대조적 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 은 땅에 있습니다. 그러나 빛은 하 늘에 있습니다. 소금은 감추어져야 하고 빛은 드러나야 합니다. 소금은 낮아져야 하고 빛은 높아져야 합니 다. 소금은 세상과 더불어 타협하면 서 들어가는 것이며 빛은 어느 것과 도 타협함이 없이 구별하고 정죄하 고, 심판하면서 나아갑니다.
왜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했습니까 우 리는 세상에 어떤 때는 내가 낮아지 고 겸손하게 살아서 세상 사람들 속 에서 전혀 흔적없이 그 속에 들어가 서 그 역사를 바꾸는 존재로서의 삶 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빛이 된다는 것은 구별되어 신성한 자존심을 가 지고 그리스도인 됨을 만방에 공개 하면서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살아가 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입니다.

빛의 역할

첫째,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것 입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은 사라집 니다. 빛이 들어오면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고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 다. 빛은 사실대로 알려줍니다. 흰 것은 희게, 검은 것은 검게 보여줍 니다. 더럽고 깨끗한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좋고 나쁜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 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
빛이 오면 어두움속에 있는 모든 정체를 밝힙니다. 어두움을 폭로합 니다. 모든 것이 탄로나기 시작합니 다. 그러므로 어두움은 빛을 싫어하 고 악한 자는 선한 자를 싫어합니 다. 불의하고 악한 어두운 세상에 참 진리의 빛이 비췰 때 빛이 싫어 서 도망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빛 을 향해서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 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 니라(요 3:21)
이제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두움에 있는 자들이 빛으로 나아 오게 해야 합니다.
둘째, 빛은 인도하는 역할을 합 니다.
항구에 가면 등대가 있기 때문에 어두움을 항해하는 배들이 등대를 보고 항구로 귀항을 합니다. 가로등 이 있어 빛을 보고 차가 달립니다. 믿는 자는 양심의 안내를 해주어야 됩니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서 세 상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해 주어야 됩니다. 이 세상은 선을 위해서 용 기있게 인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 다.
지금 이 세상은 용기있는 그리스 도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이 잘못되고 도덕이 타락하고 윤리 가 무너지고 모든 세상이 악해질 때 그리스도인들은 정의와 양심으로, 빛으로 저들을 이끌어 인도해야 된 다는 것입니다.
셋째, 빛은 경고하는 의미를 가 지고 있습니다.
빛은 종종 앞에 있는 위험을 알 려주는 신호를 합니다. 바다에 가면 위험한 암초 위에 신호등을 세워서 배가 피해가도록 만들어줍니다. 마 치 위험한 곳에 빛을 보여서 위험을 피하도록 만들어주는 것과 같이 우 리가 빛을 비췸으로 말미암아 악한 자들의 멸망을 보여주고 불의한 자 들의 양심을 비춰주면서 이것은 곧 멸망이라고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장님이 캄캄한 밤에 등불을 들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반대편에서 나그네가 걸어오고 있 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까 등불을 들고 오는 사람이 소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당신 은 소경인데 무엇 때문에 등불을 들 고 다닙니까
그때 소경이 대답하 기를
내가 걷고 있는 것을 알려주 므로 다른 사람이 나와 부딪히지 않 게 하기 위해서 등불을 들고 다닙니 다.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등불 을 들고 세상 사람들을 비취면서 그 들이 경고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빛은 드러나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 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 라(14-15절)
유대인의 집은 작은 창문 하나만 있어서 집안이 비교적 어두운 편입 니다. 그때 당시에는 전기불이 없었 기 때문에 깊은 접시 모양의 그릇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담아서 불을 켰 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에는 성냥이 없었기 때문에 불이 한 번 꺼지면 다시 켜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저들이 외출할 때는 화재가 나거나 불이 꺼질 염려가 있기 그것 을 내려서 흙으로 만든 말이라고 하 는 그릇 위에 얹어놓고 나갑니다.
불을 켜서 말 아래 감추지 아니 하고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곧 빛 은 드러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으면 '예수님의 제자'라고 만방 에 공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숨은 제자 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에게 알려 지지 아니하면 제자의 자격을 잃어 버리고 제자면 숨을 수가 없다.
우 리들의 신앙생활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회사에서 10년 동안 신자인지 아무도 몰랐다면 이 사람은 참 신자가 아닙니다. 신앙이 좀 약해서 바르게 살지 못하더라도 세상에 공개하십시오. 옛날에 어떤 사람은 성경 들고 교회에 가는 것이 창피하다고 성경을 신문지에 싸가지 고 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 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 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 리라(마 10:32-33). 세상에 가서 떳 떳하게 예수 믿는 사람임을 증거하 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면에서 행 동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물건 값을 깎는다든 지, 음식 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들을 하대한다든지 하면 안됩니다. 또 직장에서 일할 때도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 다워야 합니다. 믿는 사 람은 모든 면에서 신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곳에 교통 경찰이 있었는데 미국에 관광을 간 교인이
이 근처에 어느 곳에 교회가 있습 니까
하니까 교통 경찰이
저 어 느 골목에 가면 교회가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보니 까 교통 경찰이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가까운 교회를 두고 먼 곳으로 가라고 했느냐라고 물으니까 교통 순경이 하는 말이
나는 잘 모르지 만 그 교회 교인들이 얼굴이 밝고 나에게 친절히 인사하는 것을 보니 그곳 교회가 좋은 것 같이 보였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사에 모든 사 람들에게 칭찬받아야 합니다. 착한 행실로 칭찬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 이 바로 예수 믿는 맛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축복은 세상 사람과 구 별되게 사는데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하고,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런 빛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 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 광을 돌리게 하라
그리스도의 빛은 결국 참 빛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고 하늘 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 하십 니다. 그리스도인의 영광은 착한 행 실로 칭찬을 듣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맛입니다.
예수 믿는 자의 축복은 세상 사 람과 구별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추석에 고향에 가면 친척 과 친구들을 만납니다. 그때 우리의 모습에서 풍겨지는 은은한 빛이 있 어야 합니다. 똑같은 아들이지만 믿 는 아들은 달라야 됩니다. 그래서 효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빛입니다. 빛은 앞 을 멀리 비춰줍니다. 예수 그리스도 는 언제나 세상의 소망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역사의 소망입니다. 때 로는 교회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여 비난도 받지만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세상의 빛이요, 소망입니다. 어두움 이 빛을 찾듯이 언제나 세상은 그리 스도인을 찾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기독교인 가운데는 착한 사람 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빛이겠습니까 어둡고 답답 한 마음을 밝게 해 주는 것이 빛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 만나면 마음 이 밝아지고 생각이 밝아지고 희망 을 갖게 되고 창조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빛을 본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 취게 하여'
예수님 빛이 있고 우리 빛이 있 습니다. 예수님 빛은 본질적인 빛입 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아 서 반사하는 빛입니다. 내 속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주 시면 받아서 비추는 빛입니다. 내가 빛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 상과의 관계에서 빛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비추어 주라는 빛이지 내 자 신이 빛은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은 본질적인 빛이 아니 라 세상을 비추어주는 빛이라는 말 입니다.
이 빛은 내 속에 스스로 있는 것 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양과 같고 우리는 달과 같습니다. 달은 빛은 있지만 태양빛과는 다릅 니다. 태양빛은 생명이 있고, 살리는 빛입니다. 그러나 달빛은 어둠을 비 추고 안내하는 역할을 하지만 달빛 은 생명이 없습니다. 달빛으로 농사 를 지을 수 없습니다. 달빛으로 과 일을 익히지 못합니다. 달은 빛은 비추지만 생명이 없습니다. 햇빛만 이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를 살려줍 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살리는 빛입니다. 생명입니다. 참 빛입니다. 우리는 그 빛을 받아서 세상을 비춰 줄 뿐이지 내가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달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초생달이 있 고, 반달이 있고, 보름달이 있습니 다. 초승달은 달의 한쪽 구석이 조 금 빛을 비추는데 초저녁에 반짝 비 추다가 사라져버립니다. 반달은 반 쪽이 빛을 비추는데 초저녁부터 밤 중쯤 비추다가 사라져버립니다. 그 런데 보름달은 달 전체가 초저녁부 터 새벽까지 훤하게 비췹니다. 달의 모습이 조금도 변함이 없이 지구를 다 비추어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조금 받 으면 초생달 신자가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반쯤 받으면 반달 신자가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온전히 받으면 보름달 신자가 됩니다.
초승달 신자는 교회에 와서 찬송 부를 때만 조금 빛이 있는 것 같다 가 나가면 다 꺼져버립니다. 믿는 사람인지 안믿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 들 때는 신자 같은 데 안들면 불신자 같습니다. 반달 신자는 반절쯤 은혜가 들어가서 어 떻게 보면 신자 같은데 어떻게 보면 신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은혜가 수시로 이동합니다. 보름달 신자는 언제나 은혜가 충만합니다. 태양으 로부터 받은 빛이 전혀 가리우지 않 고 그대로 비추기 때문입니다. 지구 가 가려서 그림자가 내리면 반달이 요, 다 가리고 한쪽 구석만 비추면 초승달이 됩니다. 우리의 심령속에 땅에 있는 것,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다 예수 안에 서 은혜로 사라져버릴 때 보름달 신 자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참 빛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빛 을 받아야겠습니다. 달이 지구의 그 림자를 떠나면 빛을 받듯이 우리는 이 세상의 정욕이나 욕심을 버리고 주께로 얼굴을 향하여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다른 사람 에게 비추일 수 있는 빛이 될 것입 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세상 어느 곳에 가든지 항상 어두움을 비춰주는 보름달같이 그 밝은 빛으로 모든 사람에게 희망 을 주며, 저들의 인생을 밝게 하며, 어두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 주며, 저들에게 언제나 꿈을 주고 만날 때마다 무엇인가 새로운 삶의 의욕을 일으켜주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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