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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슴이 뜨거운 신앙인 (눅 24: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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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음생활을 하면서 자주 가책과 도전을 받는 말씀은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교회의 책망입니다. 계 3:15,16에 기록된 말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지금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적인 행위를 다 아시는데 그 분이 우리를 향하신 요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의 행위가 뜨겁게 타올라 힘있게 주를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과 만나고 싶다. 무슨 광고에 나오는 문구같지만 사실 하나님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롬 12:11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 열심이라는 의미는 물이 펄펄 끓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우리의 가슴이 주를 향한 사랑과 감사로 그리고 사명으로 펄펄 끓는 뜨거움으로 주께 헌신하며 주를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열심으로 주를 섬기는가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심각한 문제이며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고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지근할 때 세균이 가장 많이 서식하게되며 음식물의 부패가 가장 심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이 미지근 할때 마귀의 역사는 가장 강하여 이러한 미지근한 신앙의 사람들은 가장 많이 시험에 걸리게 되고 유혹에 넘어져서 죄를 지며 그래도 신앙의 양심은 있어서 괴로워하며 삽니다. 그러니 미지근한 신앙은 형식에 빠지게 되고 진정한 신앙의 축복된 삶을 누리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엣날 초대교인들 처럼 성령의 불로 뜨거워져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열심있는 믿음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때 신앙의 에너지가 나오며, 신앙의 힘이 넘쳐서 믿음으로 인한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렘 20:9에보면 예레미야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다시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 전함으로 인하여 많은 핍박과 환란을 당하므로 더 이상 그 사역을 하지않으려고 마음을 먹지만 그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이 뜨거워서 견디지 못하고 또 그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일기장에 씌어 있는 내용입니다. 1738년5월24일 아침
그는 로마서주석을 죽 읽어나가다가 9시 15분경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였고,내 죄를 다 사하시며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 일생에 처음으로 경험한 뜨거움이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내 마음 속의 모든 정욕과 죄악이 물러가면서 주님만을 모시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웨슬레는 이 뜨거움으로 밖으로 나가 간증하고 예수님을 전하므로서 부패하고 타락하여 멸망하던 영국을 건져내었고 지금의 감리교를 창설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의 두 제자의 모습을 봅니다. 글로바라는 사람과 또 한사람이엠마오라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슬픔과 절망에 가득차서 가고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로서 그 예수님을 통하여 무엇인가 기대했고 자신들의 모든 삶을 내어버리고 3년을 추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원수들에 의하여 너무나 무기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들의 모든 꿈이 산산조각이 났고,후회와 답답함과 앞으로의 삶의 막막함 속에서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우리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의 모든 복음의 역사를 풀어서 설명하시고는 떠나십니다. 그러할 때 그 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32절에 그들이 고백하기를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실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합니다.
절망과 낙심, 그리고 슬픔과 미래의 두려움으로 냉냉하고 얼음같이 차갑던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 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질 때 그들은 다시 새 힘을 얻고 기쁨 속에서 예루살렘으로 뛰어 올라가 주님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이 미지근한 사람들의 이유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영적인 눈이 가려져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6절에 보면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인은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31절에 보면 이 말을 계속 강조합니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더니-눈이 이제 열려졌다는 말씀이지요.
챨스 알렌(Chares.L.Alen)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신치료>라는 저서에서 세가지의 시력을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체적 시력, 정신적인 시력, 즉,이성의 눈으로서 비판하고 추리하고 사고하는 능력입니다. 즉 진리를 보는 눈입니다. 그 다음으로 영적인 시력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보는 눈이며 영원한 삶을 보는 눈입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에드윈 올드린(Edwin Aldlin) 대령이 헝가리의 한 대학을 방문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달나라에 첫 발을 디디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할렐루야 를 외쳤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이 느껴져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느 대학생이 그에게 질문하기를 소련의 가가린은 우주에 가서도 하나님을 못보았다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십니까 그때 올드린대령은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영의 시각으로야 하나님을 볼수가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보잘것 없는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믿고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이야기를 하나더 해봅시다.
런던 대학의 물리학자인 보이드 박사 는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약 10만개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신 전자망원경으로 볼 수있는 것은 한 은하수 안에서 2,000억개정도이고 전체 우주속에 별은 2,000억 곱하기 1,000억개정도되는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별은 더욱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의 눈을 열고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있을 때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바로 그 영적인 삶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힘있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눅 24장에보면 연다 는 단어가 세 번 등장합니다. 희랍어로 디아노이고 라는 단어인데 31절에 눈이 밝아져-눈이 열렸다는 것이고, 32절에 성경을 풀어-성경을 열었다는 뜻이며, 45절에 마음을 열어 입니다. 이 말은 인간의 힘으로 연것이 아니고 다른 힘에 의하여 곧 하나님의 힘으로 열려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성경을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열어주시지 아니하시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열려짐을 위하여서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며 간구하여야 합니다.

왕하 6:17에보면 엘리사의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데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군대의 침공시)

창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갈이 내 쫓김을 당한 후에)

눅 10:23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하였으되 보지못하였으며-(70인전도단사건후)

우리는 이 영적인 눈을 여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야 하며, 또한 그 영적인 눈을 열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신앙이 불확실 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19절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사실이 그릇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또한 24,25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그 사실을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저 의심하고 회의하며 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이 분명하여야 하고 확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고 그럴때 믿음의 역사를 따르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 랜드 라는 회사의 사장인 박성수씨 현재 40대초반의 젊은 실업가로 가장 크게 성공한 케이스 중에 하나이지요. 그는 청년시절 5년동안 근육무력증이라는 병에 걸려서 손가락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고통의 세월을 병상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때 그는 그 병상에서 성경을 보면서 믿음의 힘을 가지고 말씀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그후 하나님의 기적같은 은혜로 병을 치료받고 이제 무엇인가 먹고 살길을 찾았는데 대학시절에 옷잘입는다고 말을 많이 들어왔기에 이대앞에서 잉글랜드라는 상호를 붙이고 자그마한 가게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7년만에 당시 연간 250억의 매출을 올리는 의류업계에서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의 성공의 비결은 철저한 주일성수와 십일조인데 절대로 뇌물을 안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세무서에서 인사하라고 해서 2달동안 돈안쓰고 가서 인사만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일의 매상이 전체 매상의 30-40%인데도 대리점까지 문을 닫게 했고 그래야만 대리점을 허가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믿음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돈 벌기위하여 신앙을 이용한 사람이 아니라 확실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의 삶을 살며 행하니 하나님이 복을 소낙비 붓듯이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의 가슴은 뜨거운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좀더 확실해야 합니다.불분명한 신앙으로 인하여 자주 혼돈되고 흔들리고 좌우로 치우치면 그 신앙에는 열매가 맺지못하고 쭉정이가 됩니다.
그러기에 그 확실한 신앙을 위하여,그 뜨거운 신앙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새사람으로 태어나고 축복의 사람으로 바뀝니다.
시편 1:2,3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옛날에 정몽주의 어머니는 아들 옷을 입힐 때에 안은 빨간 천으로, 겉은 파란천으로 해 입혔다고 합니다. 그것은 밖으로는 평화와 온유와 겸손이 나타나야 하고, 안에는 불붙는 정열을 소유하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현대인에게는 4 가지가 없다고 합니다. 무감각, 무관심, 무책임, 무목적입니다. 돈에 미치고 발광하는 열정은 있어도 마음깊은 곳에는 영적인 뜨거움,감격있는 신앙의 뜨거운 열정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가슴이 너무나 차고 냉혹합니다. 너무나 이웃과 진리에 대해서 냉담합니다.
여러분의 가슴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 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 그 분의 말씀으로 가슴이 뜨거워져 새롭고 힘있는 사명과 축복된 길 예루살렘을 향하여 달려갔던 엠마오의 두 제자들 같이 우리의 가슴도 뜨거워집시다.
성령으로 뜨거워지고, 말씀으로 뜨거워지고, 기도로 뜨거워진 성도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세계로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역사하시는 세계로 눈이 열려져 참으로 복되고 힘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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