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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금기둥이 된 사람 (창 19: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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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상징적의미의 기둥이야기가 네번 나옵니다. 첫번째는 야곱이 벧엘에서 기도할 때 세운 돌 기둥 이야기가 나오고, 두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하늘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나서 인도한 일이며, 세번째는 딤전3:15에 교회를 가르켜 하나님의 집,또는 진리의 기둥이라고 말씀하시고 게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금기둥 이야기입니다.

이 소금기둥이야기는 어리석은 한 인간의 이야기이며, 한 가정의 불행한 이야기이며,참으로 슬픈 사건의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이 소금기둥은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경각심과 도전을 던져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그의 고향을 나올 때에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함께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았지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큰 복을 받아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부요로 인하여 다툼이 발생했고 갈라서기로 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부여했고 롯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눈으로 기름진 땅 소돔과 고모라의 땅을 선택했습니다.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황량한 땅 가나안을 선택했습니다.

롯이 거한 소돔과 고모라는 풍요로왔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는 환락에 빠졌고 점점 타락하여 죄악이 만연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형편에 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그 성을 유황과 불로써 심판하시기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그의 조카 롯을 구출하시기로 작정하셨으며 그들의 가족을 손잡아 이끌어 냄으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함께 나오던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를 두고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교훈으로 남아있습니다. 롯이 살다간 2,000년 후대에 예수님은 눅 17장에서 롯의 처를 생각하라 고 말씀하실 정도 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며 다시한번 우리의 신앙을 다질 부분을 주님의 은혜안에서 생각해 보십시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은 왜 소금기둥이 되었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앞을 향하여 달려나가야 하는데 두고온 재물의 미련과 과거에 이끌려서 뒤를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롯의 가족은 그 소돔과 고모라성에 많은 재물을 모아둔 부유한 자였습니다.그러나 지금 빈털털이로 나옵니다. 그 재물에 마음이 쏠려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번 것인데 하는 안타까움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부지중에 뒤를 돌아보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재물에 관심을 두고 세상적인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 물질의 문제를 잘 해결하여야 합니다. 이 물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거저 물질에 마음을 두고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계속적으로 욕심을 내면 그 분은 믿음의 성숙과 은혜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계속적으로 세상에 머무르는 생활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향하여 마음을 돌이킵니다.

사실 물질이라는 것은 때로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을 몽땅 사로잡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오늘 날처럼 황금만능주의 세태 속에서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 한 생각을 하고 있을 수록 더 합니다.

영국교회를 부흥 시켰던 요한 웨슬레목사가 하루는 돈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곳에는 돈 많은 부자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첫째,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버십시오 하니까 교인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둘째, 절약해서 저축하십시오. 하니까 참 좋은 말이라고 긍정합니다. 세째, 모은 돈은 선한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니까 좋은 설교 다 버렸군 하더랍니다.
때로는 믿음이 좋은 사람도 돈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물질에 대해서 철저히 청지기적 삶을 견지하셔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서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을 선히 사용하면 하나님이 더욱 주실 것이고, 또한 내가 필요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주신다는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하나,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성을 거절하지 않고 거기에 묻혀 살다가 쾌락과 향락의 옛모습을 돌아본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발굴작업에서 재미있는 것이발견되었는데 여자의 굽이 높은 신발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타락한 문화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도태하면 육적으로의 즐거움을 찾아나섭니다.
특히 사람은 40대에 들어서면 밖으로 향하던 열정이 안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다시말하면 사람이 40줄에 들어서면서 영적인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영적인 일을 위해 힘을 쏟게 됩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어서 영적으로,내면적인 삶으로의 전환이 없으면 그 사람은 자연히 향락과 육체의 즐거움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40대에 그의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가 바로 이러한 현상의 단면을 보게 합니다. 그러기에 40줄이 들어서면 자신을 살피면서 서로가 내면적인 삶으로, 서로가 신앙의 삶으로 전환하여 믿음생활에 충실할 때 그 가정과 부부사이가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때 부터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전국에 향락업소가 40만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40만개 하면 국민 100명당 한곳입니다.(우리나라 인구가 4000만이니까) 15세에서 29세까지의 근로여성이 우리나라에 620만인데 그중에 1/5인 130만이 이들 유홍업체에 고용되어 있다는 YMCA통계입니다.
관악구 신람5동에 1개동에 여관이 190개나 된다고 합니다.이들은 저녁손님보다 낮에 잠깐들르는 손님으로 돈을 번다고 합니다.
이들의 대부분이 청소년의 타락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청소년의 타락을 염려하는데 사실은 40대 이상의 남여들이요 영적으로 향하는 욕구를 쾌락으로 채우는 인간의 타락의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들로 인하여 타락된 사회의 구조 속에서 청소년들이 물들고 배우고 타락해 가는 현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회 속에서 우리를 지켜야 하며, 나아가서 이 타락을 막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부흥사였던 무디는 교회가 사회의 타락을 막지 못하면 그 사회가 교회를 타락 시킨다. 고 했으며,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인간 이라는 책에서 아무리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하더리도 비 도덕적인 사회의 구조 속에 살게되면 개인의 도덕성은 약해지고 그 사람도 함께 비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 사회를 향하여 올바른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도전해야 하겠습니다. 정치보다도, 경제보다도, 그 어떤 사회의 문제 보다도 우리는 이 사회의 향락과 쾌락으로 소돔과 고모라같이 타락한 현상을 보며 복음을 외치며, 우리는 복음으로 굳게 서야 하겠습니다.
소돔과 고보라는 엄밀히 말해 타락과 죄로 인하여 망한 것이 아니라 의인 열명이 없어서 망한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의인을 하나님이 찾으신다면 우리는 그의 반열에 설수가 있을까요
지금 오히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롯의 처같이 소금기둥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요!

한편,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옛날 생활로 돌아서서는 안됩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아직 까지 그 생활을 벗어버리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됩니다.과거에 붙잡혀 살면 안됩니다.
롯의 아내는 그 성을 나왔으면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살려주는 감사를 가지고 앞만 보고 달려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밭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내게 합당치 않다 고 했습니다.
적어도 한번 예수 믿었으면 더 큰 믿음의 성장과 더 큰 축복의 삶을 위하여서 힘을 써서 앞으로 달려가며 노력해야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머뭇거리고 옛생활을 벗어버리지 못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것이고, 사탄은 이런자들을 계속 공격 할 것입니다.
한번 믿었으면 뿌리 뽑겠다는 결단으로 도전해야지 나오다 안나오다 하면서 뒷걸음질치면 그의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안좋아질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적어도 결혼했으면 두 사람이 힘을 모아서 더욱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서 노력하고 애쓰며 땀흘려야 하는데, 한 쪽에서 예날 애인을 자꾸 잊지못해서 그리워하고 가끔 그 사람과 만나서 부정을 행한다면 그 가정이 행복할리가 없고 오히려 결혼하지 아니함만 못한 것입니다.
이제 한번 믿게된 믿음의 길을 뒤돌아 보지 맙시다. 오직 앞만 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축복을 소망하면서 앞을 향해 전진하십시다. 그럴때 믿음은 쑥쑥자라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 복된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지금 뒤를 돌아보고 있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보다는 삶의 소금기둥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리고 우리가 뒤돌아 보는 것이 무엇이며, 왜 돌아보는 지를 발견하십시다.
앞만 향하여 달려갑시다. 더 큰 믿음과 더 큰 축복의 자리를 향하여 앞만 보고 주님을 따라갑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은헤와 복을 주시며, 우리는 구원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박목월씨는 이 부분으로 돌아보지 말자 라는 시를 썼습니다.
하루에도 나는 몇번이나 소금기둥이 된다.
롯의 아내여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다짐하면서
믿음이 약한자여 세상의 유혹에 이끌려서
나는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 보았자 유황과 불이 퍼붓는 타오르는 소돔과 고모라
나의 어리석은 미련이여.
나는 하루에도 하루에도 몇차례나 뒤를 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된다.
신문지로 만든 관에 마음이 유혹되고 잿더미로 화하는 오늘의 불앞에 마음이 흔들리
리고 뱀의 혀의 꾀임에 빠져 뒤를 돌아본다.
거듭 믿음이 약한자여 오로지 주를 향한 생명의 길을 앞만 보고 걸어가자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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