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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는 삶 (사 43:21, 삼하 06: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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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영국정부는 그리스도인들이 존경하던 윌리암 템플감독에게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는 영국 국민을 위한 라디오 메시지를 부탁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시기에 하나님의 사람 윌리암 템플 감독은 전 영국 국민들에게 띄우는 메시지를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다른 어떤 때보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용기를 내라거나, 참고 기다리라거나, 기도하라거나 하지 않고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때라고 했던 것입니다.

신자의 삶에서 최우선적인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에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무엇이냐
예배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고 그를 영화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요소는 “찬양과 경배”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의 예배에서 “말씀과 기도”는 어느정도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찬양과 경배”가 약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찬송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찬송”에는 예배의 네가지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곧 찬송하는 삶은 예배자의 삶인 것입니다.

(사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하나님께 찬송을 많이 불러 드려야 합니다.

(시69:30-31)“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히13:15)“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찬송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얼마나 강하신지 모릅니다.
(사42:8)“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 찬송을 부를 때에 하나님께는 영광이 돌려지며, 찬송하는 우리 자신에게는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되며 나아가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성령이 역사하여 마음에 평화가 임하고, 어두움이 떠나가고 마음이 밝아지며, 영육의 질병이 치료되어지고,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악한 영이 떠나갑니다.

예)다윗의 찬송에 사울의 치료.
예)세상노래로도 치료요법을 사용하는 시기이다. 하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의 찬송에 어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예)(대하20:21)“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대하20: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시71:23)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구속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렘17:14)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찬송은 올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암6:5)“비파에 맞추어 헛된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암5:23)“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예배가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신이듯이 찬송도 방법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흔히 찬송가만 불러야 한다. 악기는 이러 것으로만 하여야 한다는 등으로 찬송을 제한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열어서 생각을 넓히면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예)찬송가만 고집하는 사람들-
찬송가에 복음성가도 많다.
또한 “하늘가는 밝은 길”-아일랜드의 민요곡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미국의 민요곡이다.
39장 “주 은혜를 받으려 모여 온 우리”-화란의 민속곡.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스웨덴의 민속곡.
454장 “주 사랑안에 살면”-핀란드 전래 민요곡에 화성만 붙인 것.
467장 “내게로 와서 쉬어라”-영국의 민요곡.

이러한 찬송들은 당시는 복음성가로서 당시 교회에서 천대받고 욕먹던 곡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만 찬송이라고 고집하면서 있습니다.

모짜르트의 교회를 위한 곡은 음표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교회지도자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바하의 교회음악도 너무 기악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악기도 그렇습니다.
피아노는 18세기말 세속음악을 위하여 만들어진 악기입니다. 그러기에 당시는 피아노는 교회에서 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르간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거리낌 없이 피아노를 사용합니다.
오르간도 맨 처음에는 원형경기장에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하여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이 원형경기장에서 동물에 의하여 죽어갈 때에 울려퍼진 악기의 소리가 오르간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최고의 종교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드럼이나. 기타, 전자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를 높이는 일이라며 모든 것을 다하여서 사용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찬송할까요
(대상16:42) 또 저희와 함께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나팔과 제금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소리를 크게 내게 하였고 또 여두둔의 아들로 문을 지키게 하였더라
(대하20: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대상13: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
(대상15: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대상15: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각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즐겁게, 힘있게, 크게” 이것이 대체로 표현된 음악적인 모습입니다.

예)찬송의 어원인 “할랄”이라는 말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큰 소리로 떠든다” “기뻐서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예)다윗을 보십시오.
(삼하6:14)“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이 모습을 본 미갈의 태도는 정반대입니다.
미갈의 말을 들은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삼하6: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삼하6: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다윗과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앞에서 한 것이니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나의 모든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서 그 분을 높이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때로는 손들고, 기뻐 뛰면서, 침묵으로, 우러러보며, 고개숙여, 무릎끓고, 손뼉치면서, 춤추면서, 감사에 넘쳐 눈물흘리면서 찬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찬송을 부르는 성도들이 되어야지 창문에 걸터앉아 찬송하는 사람 구경이나 하면서 흉보고 비판하던 미갈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서부교회는 올바른 예배로 예배가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서 올바른 찬송으로 다윗처럼 찬송하는 성도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성령이 임하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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