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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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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첫 부분입니다.
이 산상보훈이란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셔 가르치신 보배와 같은 가르침이라 하여 “산상보훈, 또는 산상수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산상보훈의 3절부터 12절까지는 “팔복”이라고 합니다.
“팔복”이라하는 이유는 “...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통해 8가지의 복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팔복을 몇 주에 걸쳐 계속하여 듣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말씀인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를 듣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은 먼저 “복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토록 합니다.
그것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하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원합니다.
불행을 원하거나 행복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행복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 진정한 길을 모릅니다.

과연 참된 행복이 무엇일까요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무엇이 성경이 말씀하는 복이요 행복입니까
성경은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옳다 인정함을 받는 것”이 “행복”이라 말씀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행복”이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가지는 것도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우리가 값없이, 거저 하나님께 인정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 자체가 행복이란 말씀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義) 속에 있는 그것이 행복”이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롬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4: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4:9)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바울 사도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서게 된 사람을 행복자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
그 죄를 용서받은 사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행복자임을 천명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를 얻고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행복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사람, 그 존재 자체가 행복한 사람이라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죄사함을 얻고 의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죄를 인정하지 않으시며 자기 자녀들로 맞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불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하나님의 자녀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까

구약의 선지자 모세도 이 “행복한 사람들”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적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거센 모래 바람도 날렸습니다.
낮의 뜨거운 햇빛과 밤의 추위가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더구나 풍성한 식탁이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광야 40년의 길은 참으로 험하고 고달픈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건지시고 도우신 길이었습니다.
여기에 그들의 행복이 있습니다.
비록 환경은 나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란 존재 자체가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그 분의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실이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그 분의 날개 아래, 그분과 사는 사람이 행복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도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명백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복이 있나니”란 말씀은 “행복하여라” “행복하도다”라는 감탄사와 같습니다.
그래서 “오 행복하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이란 뜻입니다.

주님도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있음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냐”에 따라 행복자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소유나 무소유가 행복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외적 환경이 우리의 행, 불행을 좌우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행복은 물질의 소유와 다른 것입니다.
물질의 무소유와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 행복하려면 모든 소유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뒤로 두고 산으로 오릅니다.
그러나 행복은 물질의 가짐과 못가짐 밖에 있습니다.
행복은 물질과 무관합니다.
우리의 환경과도 무관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의 심령입니다.
우리의 인격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될 때 행복하다”고 말씀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심령”은 “인격의 좌소”를 뜻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인격의 중심이며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존재가 새롭게 될 때 우리는 행복자가 됩니다.
우리 마음, 우리 자신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며 긍휼히 여기는 사람일 때 행복한 사람이라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영적인데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이며 내적인 품성에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이냐에 행복은 달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의를 얻은 관계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
이때 물질의 있음과 없음이 그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이 행복을 아무도, 아무 것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행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이 말씀합니다.
“행복하여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 받은 것이 행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그 분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살고 있음이 행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사는 존재 자체가 행복임을 분명히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두번째로 오늘 주님께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의 영적 궁핍과 무지를아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이 가난은 물질적 가난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가난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가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가난이란 말씀입니다.

여기 “가난”이란 말씀은 “거지”를 뜻합니다.
철저하게 궁핍한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소유가 전혀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철저한 거지요 아무 것도 없는 자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질의 소유가 행복인양 생각합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재정이 넉넉하고 모자람이 없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이 풍부하여 부족함이 없으면 하나님께 부요한 자인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자기 도취에 빠져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일과 같습니다.
주님은 물질적 풍요 속에 자신의 부요함을 자랑하던 교회에 말씀하셨습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 풍요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무 부족함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 이들은 참으로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는 부자다 재정이 넉넉하고 부족함이 없다.
우리의 생활도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가난함과 벌거벗음과 소경됨을 몰랐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소경이요 둔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영적 실상에 눈멀고 귀먹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벌거벗음과 하나님 앞에 아무가치도 없는 자임을 알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질적 부가 행복의 척도가 아닙니다.
물질적 부요가 영적 부요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우리는 우리의 영적 가난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지요 아무 것도 없는 자임을 스스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그래서 복된 사람들이 됩니다.

둘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란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일의 해결을 하나님의 손 안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자기 스스로는 어찌 할 수 없음을 자각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자기를 “가난하고 궁핍한 자”라고 자주 말했습니다.
(시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69: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시70: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그는 왕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거나 궁핍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궁에 거하였습니다.
수많은 신하들과 장수들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풍부한 먹을 양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주 자기가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말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자신의 영적 가난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심령의 가난함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적 무능력과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없는 자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의지하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시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69: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시70: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부요한 자는 스스로 뽑냅니다.
자기를 과신합니다.
자기 실력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 분만을 기대합니다. 그 분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그 분의 도우심을 받고 그분이 주시는 행복을 얻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가난함을 알 때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행복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까 그래서 행복한 사람입니까

천국과 행복은 자신의 영적 무지와 무능력을 깨닫는 사람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도우심을 바라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진리”를 깨달아 가난한 심령의 소유자가 되어 천국을 소유한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 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영원하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 위로 충만케 하시는 역사가, 자신의 영적 무지와 무능력 그리고 가난하고 궁핍함을 깊이 깨달아, 우리를 영적으로 부요케하시며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여 참된 행복의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모든 교회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심령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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