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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 (시 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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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40편은 다윗왕의 시이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다윗은 훌륭한 시인이요 음악가요 군인이요 정치가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다윗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고난과 시련이 앞을 가로 막을 때마다 하나님께 진실로 기도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기도 했다.
[시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불러 아뢰고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소월의 시처럼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가 아니다.
[시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시 66:19]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

만일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소식이 없다면 그건 하나님이 없기때문이 아니라 내 쪽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문제를 주목하신다는 것이 다윗의 신앙이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가
기도하면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왜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가 입술로는 믿는다고 하는데 마음에 믿어지지 않으니 기도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것은 안 믿어져도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기를 축원한다.
사람을 믿어서 손해보는 사람은 있어도 오늘까지 주님을 믿어서 손해본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믿음의 고백이 기도라는 행동을 통해 나타나므로 응답을 체험하고 “본문처럼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신앙고백과 간증이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증거되길 축원한다.

본문에 다윗은 어떻게 응답받은 것을 간증하고 있는가

1.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구원
[시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기가 막힐 웅덩이는 무엇인가 말못할 절망. 좌절을 의미한다. 수렁은 발 붙힐 곳이 없는 인생의 실패와 막다른 골목을 의미한다.
험하고 힘든 세상에서 과연 누가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줄 수 있는가
오히려 우리를 웅덩이 속으로 몰아넣고 수렁에서 허우적 거리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손뼉치며 즐기는 것이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 단 한분! 조건없이 이유없이 나를 건져주시는 분이 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믿는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주님은 건져주시는 분이시다. 구원이란 말을 쉽게 말하면 “죄에서 끌어냈다. 건져냈다”는 뜻이다.
나를 건져내시는 분, 절망과 좌절과 실패의 쓰라린 심연으로부터 끌어내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흉칙한 얼굴을 가진 어머니를 늘 부끄럽게 여기던 학생이 있었다.
그렇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지옥의 불속에서 끌어내시는 구원자이심을 믿는다.

2.나의 걸음을 견고케 하신다.
[시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생각해 보라 웅덩이와 수렁에서 헤어나면 두 다리가 긴장과 흥분으로 후들거리고 떨리게 된다. 더욱이 자기 힘으로 헤어나 보겠다고 발버둥치고 몸부림 쳤다면 걷기는커녕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버릴 것이다.
바로 그때 건져주시고 끌어내주신 주님께서 두 발을 견고케하사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이다.
구원해 주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사 42: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꺽지않고 끄지 않으시며 싸매어주사 다시 불처럼 일어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소리높여 찬양하자!

결론-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
[시 40: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날이면 날마다 주님은 나를 생각하신다는 말씀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며 잊지 않는것처럼 주님은 나를 그리워하면 생각하신다는 것이다.
[아 5:8]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흔한 말로 상사병이 날 만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생각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받고사는 나는 과연 얼만큼 주님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잠 23: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을 준다는 것은 생각을 준다는 것이다. 세상만 바라보고 세상생각만 하지말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생각합시다.

괴로울 때 주님을 생각하고 답답할 때 주님을 생각하자.
억울한 일을 만나고 실패했을 때도 주님을 생각하자.
앞길이 막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십자가 위에서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일어서자.
세상사람 아무도 나를 알아주거나 믿어주는 사람없어도 주님은 나를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사랑해 주심을 믿는다.
그렇다면 다시한번 해 볼 수 있지 않는가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실망하지 말라.
용기와 소망을 갖고 다시 일어나라.
그리고 믿음으로 싸워 주님께 승리의 영광을 드리자.
나를 사랑하시고 날마다 나를 생각하시는 주님이 함께하셔서 반드시 승리케 하실 줄 믿는다.

성장하는 신앙생활
예전과 달리 요즘아이들은 성숙도나 지능도가 높기 때문에 모든 것을 빨리 알고 이해한다. 나 자랄때만 해도 국교 1학년에 입학을 하고 나서야 글씨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름과 숫자를 배웠다. 4, 5학년이 되어도 영어의 알파벳을 한글자도 몰랐는데 요즘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전 벌써 읽고쓰는 것은 기본이고 유치원 다니는 원아들이 알파벳은 물론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보통이다.
지금도 머리에 기억나는 것은 3학년때 99단을 외우게 되었는데 아무리 외워도 7단과 9단에서 문제가 생겼다. 다 외워야 옥수수 빵도주고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수학적 두뇌가 덜 발달된 나는 같은 처지의 동지 20여명과 교실에 쭈구려 앉아 열심히 7단과 9단을 외웠던 기억이 새롭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교회에 나오면 모든 것이 생소하다. 사용하는 말도 할렐루야!를 비롯 구원, 충만, 은총, 찬양등 일반사회에서는 듣도 쓰지도 않는 말이 교회안에서 자연스럽게 오고가고 분위기 또한 생소하다. 찬송가도 잘 모르고 성경책은 어디가 어딘지 하루종일 뒤적여도 그날 읽은 곳을 쉽게 찾아내기가 없렵다.
또한 예배시간에 함께 암송하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도 그렇고 일어섯다 앉았다 온통 정신이 없다.
성경말씀을 들을 때도 이해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그러지라도 염려하지 말라. 당연하다. 학교로 말하면 이제 입학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회적인 명성이나 학문에 있어서 훌륭하다고 해도 교회에 처음나온 사람은 신앙에 있어서 이제 신입생에 불과하다.
그래서 99단을 외우듯 한걸음 한걸음 배워가노라면 언젠가 신앙에 있어서도 멋있는 상급생이 되어 다른사람을 믿음으로 이끌게 될 줄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생활을 통하여 믿음이 자라길 원하는 모든 분들께 방법을 알려드릴 때 순종하여 풍성한 믿음, 승리하는 믿음이 되길 축원한다.

1.겸손하라.
우리나라 교육현실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협과 도전을 받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스승은 제자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예화)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예화)
스승과 제자사이에 사랑과 존경이라는 관계를 상실한 교육현실은 소망이 없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예수를 믿기위해 교회문을 들어선 사람은 스승되시는 주님을 높이고 존경해야 한다. 이 말은 다시말해 자신은 낮아지고 겸손하게 배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대학총장도 거대한 기업의 사장이라도 일단 주님과 말씀앞에선 높으신 주님! 위대하신 주님!이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순종해야한다.
겸손하게 마음문을 열어야 주님이 은총이 그 심령에 임하고 주의 은총이 임할 때 영혼이 자라고 평화를 누릴 수가 있다. 신앙이 자라려면 절대적으로 겸손해야한다.

2.교회 출석을 잘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요즈음 우스개소리로 “식당개 3년이면 라면끓인다”고 한다.
뭐가뭔지 잘 몰라도 열심히 참석하면 자라게 되어있다.(콩나물 예화)
그러므로 우선 교회출석을 잘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출석이 게으르면 절대로 신앙이 자랄 수 없다. “대충 믿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육체가 자라지 못하면 난쟁이가 되고 어딘가 이상이 있는 것 처럼 신앙이 자라지 못하면 영적앉은뱅이가 되고 영혼의 불구가 되는 것이다.
육체의 불구는 세상에서 일시적이지만 영혼의 불구는 천국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이거야 말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 대개 모범생보다 문제 학생들이 이유가 많고 불만이 많다.
기왕에 신앙생활에 들어섯으면 조건따지지 말고 이유를 붙이지 말고 열심히 출석하길 바란다.
지금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으로 제때 먹어야 할 양식을 먹지못해 영양실조로 빼빼말라가고 굶어죽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사람들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들을 때 함께하지 않으면 영적인 굶주림으로 심령이 죽게 된다.
한번 생각해 보라. 내가 신앙생활을 한지 얼마나 되었나 그리고 열심히 출석했나 열심히 결석했나 살펴보자. 그리고 결석을 많이 했다면 왜 결석했나 꼭 빠졌어야 했던가를 겸손하게 생각해 보자. 나의 신앙은 바르게 자라고 있나 아니면 정체되었나
내일부터 4일까지 은사부흥성회가 매일밤 7:30에 열린다. 이번 성회를 통해 바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정체된 믿음들이 성령의 역사와 체험을 통해 다시금 싹을내어 무럭무럭자라는 풍성한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참석해야한다.

3.성경을 읽는 생활을 해야한다.
처음 읽을때 이해 안 되는 곳 때문에 시간낭비하거나 씨름하지 말고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차근차근 읽어나가실 바란다. 색연필을 준비하여 은혜되는 말씀에 줄을 치며 읽어라. 성경을 깨끗하게 보관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더럽다. 그러나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하여 너털거리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깨끗하고 능력있다.
처음읽을땐 이해가 안되고 지루해도 다음에 읽을 때 이해가 되고 은혜가 되는 것이 성경이다. 특히 말씀을 공부하는 구역예배나 기관예배에 열심을 내라.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신앙은 자라지 못한다. 성경공부를 통해 진리를 바르게 알게되고 “아는 것이 힘이다”
6월 중순부터 크로스웨이 생활편(새생활 새기쁨) 성경공부반을 모집한다. 많이 참여하여 신앙도 자라고 능력있고 승리하는 생활이 될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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