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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에 희망을 주는 믿음 (잠 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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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은 물론, 우리 믿는 성도들도 실패하여 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과 분명히 다른 것은 '삶에 희망을 주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이 올 때 낙심부터 할 것이 아니라, 낙심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슬기를 배웁시다. 성경은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흔쾌히 답을 주셨습니다.

Ⅰ. 환난 날에 미약함을 보이지 말라

환난이란 '궁핍, 재난, 고통'에서 유래했고 「생명의 위협을 받음」을 의미합니다. '미약'은 '용기를 잃음'에서 유래하여 「기울다, 떨어뜨리다, 낙심하다」의 의미를 갖습니다. 위 둘은 사람이 겪는 환난이라고 지적했고 다양성을 갖습니다. 가령 가난과 궁핍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 중병을 앓거나 시험을 받을 때, 무고히 핍박을 받을 때, 그리고 IMF는 6.25사변 이후 가장 큰 환난이라고 합니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잠 24:10) 고통과 슬픔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불신하는 것이 되며, 난관 극복을 위해 인위적 수단 방법을 쓰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에 희망을 주는 믿음'이란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서 신앙의 가능성인 믿음을 발휘하여 기도를 통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막 9:23,29). 또한 하나님의 연단 후 주시는 은혜와 은사를 기대해야 합니다(히 12:8). 가령 바울의 경우 다메섹 사건 후 아라비아의 3 년간 연단으로 그로 하여금 위대한 선교사로 거듭나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행9:3,15, 갈 1:17, 행 13:2). 또한 다윗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하더니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삼하 2:4).

우리의 주변과 이웃, 그리고 집안의 현주소를 살펴봅시다. 환난과 시험을 한번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무지와 미련의 한계 때문에 속 시원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주위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엄습하는 시련도 있고, 성장과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환난으로 연단을 주시는 경우도 있으며(롬 5:4), 자신이 뿌린 씨앗일 수 있습니다(갈 6:7).

이때 우리는 증인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잠 24:11).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에겐 회개와 믿음을 촉구하고, 살육 당하게 된 자에겐 다윗의 열쇠로 멸망을 분쇄해야 합니다(계 3:7,8). 말하자면 환난 때문에 가분수처럼 문제가 커지지 말고 그 문제를 해결하실 예수님께 갖고 와서 간구하면 모두 다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마 11:28,29, 7:7,8)

Ⅱ. 중심을 통찰하시는 하나님께 보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십니다(잠 24:12). 저울질이란'숙고하다, 평가하다'에서 유래했고 「하나님의 표준치에 의해 비교 측정함」을 의미합니다. 갈대아 왕 벨사살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단 5:25), 즉「저울질하여 부족하므로 끝나다」라는 의미인데,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단 5:30). 언행심사간 일치 여부와 행위 자체를 저울질하시고 통찰하셔서 반드시 행위대로 보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떨며 범죄치 말며,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하고,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하여(시 4:4,5)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성도가 다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행 13:22)

하나님은 삼권을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인 동시에 아버지와 목자가 되시며(시 100:3), 사랑이 많으셔서 믿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원죄를 제거해 주셨고(요 3:16, 엡 2;8,9), 선민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거나 주무시지 않고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보호해 주십니다(시 121편). 그러니 우리는 눈을 돌려서 약한 자와 구원받을 자들에 대하여 도와야 하겠습니다. 이웃을 돕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이 의무를 게을리하면 저울에 달린 바 되어 벨사살처럼 치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행악자는 장래가 없으나(잠 24:20) 지혜자는 말씀을 지켜야 상이 큽니다(시 19:11).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중심을 쏟아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을 발휘하여 이웃을 주께로 가까이 하도록 합시다. 그리하면 정녕히 장래가 있겠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잠 24:14).

Ⅲ. 삶에 희망을 주는 믿음을 활용하라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24:16)라는 의미는 믿음으로 의인된 우리로서는(롬5:1) 영생은 물론이거니와 금생적 삶에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믿음을 활용해야 함을 교훈한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의인은 믿음적 삶을 계속 견지하기 때문에 정녕 장래가 있으리니, 즉 「훗날, 미래」를 보장받고 끊이지 않는 소망인 「영속적인 생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를 섬김(경외)으로써 입니다(잠 1:7).

의인이란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물리치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욥의 인내가 돋보이고(약 5:11) 베드로의 승리가 귀감이 되며(마 26:75, 벧전 1:9, 5:4) 다윗의 위대함이 하나님께 인정되었습니다(행 13:22). 미국의 죠지 워싱턴은 독립 혁명군 총사령관으로 실패를 거듭했지만(1775-1782년) 마침내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을 뿐 아니라(1789-1797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 것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국가 기본 확립에 노력한 결과이었습니다.

삶에 희망을 주는 믿음을 활용하려면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재기의 힘을 얻으며(마 10:16),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을 의뢰하면 우리의 큰 도움이 되십니다(시 46:1,7, 렘 16:19), 또한 질병, 가난, 고통에 묻혀 있어도 세리처럼 주님께 무릎을 꿇고 애통하며 회개하면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눅 18:13,14) 주님께 쓰여지기 위해 준비하면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세우셔서 크게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마 21:3).

성도 여러분! 승리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확신과 미래 지향적인 소망을 갖고 사랑으로 다시 일어나서 뛰면(롬 13:10) 주님이 세상과 죄악을 이기신 것같이 우리도 '삶에 희망을 주는 믿음'을 따라 그 역사에 동참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요 16:33).

결 론

현대사를 보면 지도자의 잘못이나 우리의 실수 때문에 IMF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사업이 실패하고 육체가 병들고 신앙에 의욕이 없고 장래가 막연합니다. 문제는 단순한 잘못이나 실수라기 보다 까닭 없는 저주는 이르지 않느니라(잠 26:2)고 했으니 회개하고 강단에 엎드리며 강력한 인도를 요구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긍휼과 자비가 뒤따를 줄로 믿습니다.

의인에겐 고난과 환란이 많습니다(시 34:19). 분명한 것은 그 환란이 재앙이 미치지 못하게 하시고 모든 고난에서 건져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욥 5:19). 우리는 넘어지거나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4)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환난 날에 미약함을 보이지 말고 기도로 승부하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보여서 승리하심을 받고, 삶에 희망을 주는 믿음을 활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만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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