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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상한갈대 (마 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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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란 성경에 자주 나오는 화본과에 속하는 식물로서 주로 중동지방 특히 유브라데강 하류와 나일강 상류 그리고 요단강 골짜기에서 많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이 갈대는 옛날에 매우 당야하게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이 되었는데 좀 튼튼한 것은 지팡이로 썼고 곧고 길기 때문에 측량용 자로도 사용되었으며 또 글을 쓰는데 필요한 붓으로도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사람을 가리켜 갈대와 같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유명한 베르디의 가곡인 [리고렛트]가운데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귀절이 있는가 하면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 [팡세]에서 인생은 생각하는 갈대라고도 했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성경 본문에 보면 상한 갈대를 인생에 비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이와같이 인생을 갈대에 비유한 까닭은 인간이 갈대와 같이 연약하여 부러지기 쉽고 또 환경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고 상하기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11장7절과 누가복음 7장24절에 보면 예수께서 무리에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고 물으신 일이 있습니다. 여기서 흔들리는 갈대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9절에 로마 병정이 예수를 향하여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난 다음에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는 갈대가 예수님을 때리는 도구로 사용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십자가에 달려 신음하는 주님의 입에 신포도주에 적신 해융을 꿰어 드린 그 막대기도 갈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그 약한 갈대 가운데서도 인생을 상한 갈대라고 표현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썩은 갈대와 같은 인생이지만 주님은 꺾지도 버리지도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무력과 한계성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란 가장 연약한 것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물가에서 농사를 짖는 사람들의 최대의 골치거리가 무엇이냐면 갈대입니다. 거름을 주지 않아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 나는 것이 갈대입니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갈대가 꺽이어 버렸으니 그것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꺼져가는 등불도 그렇습니다. 옛날 기름으로 켜는 등불은 요사이 전드에 비하면 있으나 마나한 불입니다. 거저 형체나 어스름하게 알아볼 정도의 불빛에 부과합니다. 그마나 그것도 꺼져 가고 있으니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또 심지불은 꺼져가면 그울이 배나 많아지면서 사그러듭니다. 그러니 얼마가 무가치 합니까/
그런데 성경이 인생의 무가치함을 설명하면서 자주 쓰는 것이 이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인 것입니다.
인생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실은 가장 약한 존재가 인간입니다.사람은 우선 육체적으로 허약합니다. 강한 것으로 하면 인간보다 힘센 동물이 얼마든지 있고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장수 동물도 많으며 청각, 시각,후각 등 인간보다 월등한 것이 동물계에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질병에 매우 약합니다. 의학의 눈부신 발달에도 불구하고 각가지 질병의 수는 늘어만 가고 병원은 더욱 만원입니다. 인간은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시련이 오면 그 앞에 굴복하고 고난이 닥치면 그 아래 짓눌려 버리기 쉽고 좌절과 실망의 심연 속에서 울고불고 한숨짓는 인생, 마치 창파의 일엽편주처럼 세상 풍랑에 이러저리 밀려 다니는 무력한 인생, 이런 약한 존재가 인생입니다. 인간의 의지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가리키 듯이 꾸준하지를 못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죄악에 대항할 능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날마다 죄의 멍에 아래 신음하고 패배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이것이 죄에 대해 무력한 인간 영혼의 절규입니다.이렇게 하나님을 외면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한계선에 부딪쳐서 불안과 절망을 안고 몸부림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실존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상한 갈대 와도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도 같은 인간을 주님은 꺾지도끄지도 아니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분명히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신다고 했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란 전혀 쓸모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불어서 꺼버리거나 아니면 이미 쓰레기 통에 들어 갔어야 했을 것인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도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미 버렷어야 할 상한 갈대와 쓸모없는 꺼져가는 심지를 재생시켜서 다시 쓰시겠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어느 날 열두 제자들 앞에서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장과 장로와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권좌에 앉으시는 날 그 우편과 좌편에 차례로 앉아서 천하를 호령해 보겠다는 부푼 기대에 꽉차있는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대낮의 날벼락과 다름없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크게 실망시켰으며 동시에 그들을 몹시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경유로 해서 매우 위축되어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위로와 격려와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의 기록은 유명한 예수님의 고별 설교인데 그중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먼저 위로를 하셨고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18)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인 예수께서 가장 그들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순간인 최후의 만찬 장소에서 자리 다툼으로 서로 언쟁을 하였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는 주님을 돕기는 커녕 깨어 기도하며 나를 도우라는 요청에 아랑곳 없이 모두 잠에 빠져 있었으며 예수께서 악당들에게 붙잡혀 법정으로 나가실 때 그들은 모두 도망을 치거나 그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른다고 부인하고 헤프닝을 벌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한 갈대요꺼져가는 심지와도 다를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약하고 쓸모없는 제자들을 주님은 꺾지도끄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셔서 신생의 기쁨을 맛보게 하시고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에는 바로 필요한 능력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 나약한 제자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상한 갈대들을 들어 세상의 지혜롭고 강한 자들을 정복하고 복음의 세계화를 촉진시킨 역군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의 복음서 끝부분과 사도행전의 전반부를 대조해서 비교해볼 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를 역력히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상한 갈대인 우리를,꺼져가는 심지인 우리를 꺾지도 끄지도 아니 하셨습니다. 오히려 불러내어 구속의 감격을 맛보게 하셨고 삶의 보람을 깨닫게 하시며 성령을 보내셔서 주님을 위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인생을 불러 구원하시고 세상의 빛이되고 소금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새로 지음받는 신생의 축복과 새로운 봉사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
라(히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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