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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못된 믿음 (행 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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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모범적이고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들만 열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실패한 인생을 살았던 예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통해서도 우리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앞에 자기의 가진 것을 드려서 헌신을 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물질을 드리고 어떤 사람은 재능을 드리고 어떤 사람은 시간을 드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드릴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자세로 드릴 것인가 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잘못된 헌금에 대하여 하나님이 강하게 징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땅을 팔아서 하나님 앞에 드릴만큼 믿음을 가진 자요 헌신할 줄 아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땅 판 값의 일부를 감추고 나머지만 사도들 앞에 내어놓았을 때 즉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죽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남의 땅을 도적질한 것도 아니요 남을 해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간음을 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헌신할 줄 아는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가혹한 징벌을 받은 것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듣고 두려워한 것을 보면 그것이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는 교훈이 매우 큰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 어떠한 자세로 헌금을 해야 하는 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행 5:1-3상, 7-8).1) 본문 설명:
초대 교회에는 자기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혀 강제적인 것이 아니며 철저히 자발적인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값을 일부를 드리든지 전부를 드리든지 그것도 자유로운 의지에 속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서도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 없더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소유를 팔아 일부를 사도들의 발 앞에 두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여기에서 ‘‘감추매’’란 말은 자신을 위해 횡령하여 뒤로 가로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감히 사도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모의하는 그 계획이 마치 자기들만이 알고 있는것처럼 사도들 앞에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땅을 판 후에 순간적인 욕심으로 그 값의 일부를 감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그 값을 감추기로 작정하였고 부부가 서로 공모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신 것입니다. 본문 7-8절에서도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또 볼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벌을 받아서 이미 죽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삽비라는 또 다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죽는 그 순간에서야 가슴이 철렁했겠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자신이 꾸미는 일이 어떤 결과가 될 지도 알지 못하고, 잠시 전의 일도, 잠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재물에 욕심을 내었습니다. 이 땅에서 잠시 소유하는 일시적인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바꾸는 어리석음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깨달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할 수가 있고 더욱 더 겸손하고 낮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성경에는 부부가 앞에 범죄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 3장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범죄입니다. 부부는 서로 신앙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고(고후 1:24),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해야 하는데(히 10:24) 도리어 함께 모의하여 범죄하였다는 것은 더욱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사람들을 속이고 사도들을 속였습니다. 이렇게 인류 최초의 죄악이 부부에 의해서 생겨난 것처럼 초대 교회의 최초의 범죄도 부부에 의해서 발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20:16에서도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 부부는 사람들을 속였을 뿐 아니라 베드로가 질책한 것처럼 성령을 속였습니다. 마태복음 12:31에 모든 죄는 사함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이렇게 날마다 범죄하고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3) 적용:
인간은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생각대로 계획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귀함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겸손해 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복하지 않으면 초대 교회 시절처럼 지금도 날뛰는 마귀 앞에 우리도 거꾸러질 것입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성령의 사역을 거역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며 우리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신데 우리가 성령님을 속이려고 한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그리고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달읍시다. 우리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의 어리석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더욱 더 낮아지고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2. 외식적인 신앙을 버려야 한다(행 5:3하-4)1) 본문 설명:
본문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 값의 일부를 감춘 후에 나머지를 사도들 앞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칭찬은 커녕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아나니아를 꾸짖고 있습니다. 4절에는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라는 것을 보면 여러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헌금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산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성도들처럼 그 소유를 팔아 사도들 앞에 내어 놓으며 ‘‘나도 이만한 믿음은 있노라’’하는 자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재산을 바칠 때 그 칭송은 즉시 여러 사람들에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 부부가 징벌을 받아 죽었을 때 온 교회와 모든 사람들이 즉시 알았던 것처럼 소문이라는 것은 빠르게 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보다는 사도들과 사람들을 더 의식하고 이 재산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보다는 사람들의 귀와 사도들의 말을 더 존경한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마 23장).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행하라’’고 하셨고(마 6:3) ‘‘은밀한 중에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을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삼상 16:7에서도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도 139:2에서 ‘‘여호와는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팔기 전부터 그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판 값을 내어놓고 베드로가 질문할 때에도 이미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아시는 분이며 중심을 꿰뚫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3) 적용: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읽고 계십니다. 우리가 겉으로 아닌 척해도 그 분은 다 알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남을 의식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한다지만 남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언제나 우리의 머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다시는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연말이 되면 방송국이나 신문사에는 이런 전화가 많이 걸려옵니다.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얼마 내면 내 이름과 사진이 나갈 수 있읍니까’’하고 묻는 전화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금을 작게 나누어 모든 신문사와 방송국에 보낸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남을 의식하는 외식적인 행위입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러한 겉으로 보이기 위한 행위는 참으로 미련한 것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는 결코 하나님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은밀하게 행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절대로 보이지 맙시다.

3. 하나님 앞에 아낌없이 드리자(행 5:5-6;9-11)1) 본문 설명: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소유를 판 것의 일부만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들을 책망하는 것은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것과 더불어 땅 값의 일부를 감추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 드리려는 아낌없는 마음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에 대한 욕심과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은 재산의 일부를 드리기가 너무나 어려웠던 것입니다. 세상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진실로 참다운 헌신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진실치 못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물질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고 반대로 강한 징벌을 내리셔서 많은 이들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2) 성경적 연결:
재물을 탐하여 하나님께 벌받는 모습은 구약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7:1에는 하나님께 바칠 물건을 감춘 아간 때문에 전쟁에서 패하고 많은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재물을 탐하는 자는 재물 때문에 멸망받게 됩니다. 그리고 부정직한 마음도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잠언 15:8에서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 판 값의 일부는 바치고 일부는 취하여서 하나님의 사랑도 받으며 세상과도 관계를 끊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마 6:24). 주님의 말씀은 가진 것을 무조건 많이 바치라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21:3-4에서 과부의 두 렙돈을 예수님은 칭찬하셨고, 요한복음 12:3-5에서는 300데나리온이나 하는 값비싼 향유를 부은 마리아도 칭찬하셨으며, 누가복음 19:8-9에서는 삭개오가 소유의 전체가 아닌 절반을 내어놓을 때에도 칭찬하셨습니다. 물질의 크기보다는 거기에 담겨있는 마음과 정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3) 적용: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커다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드릴 것은 다 드립시다. 참다운 헌신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우리의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이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은사든지 모두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우리의 정성과 마음이 담겨질 때 하나님은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잘못된 믿음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지녔던 좋은 신앙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대한 욕심과 성령을 속이는 어리석은 죄로 말미암아 비참히 죽어버리는 징벌을 받았습니다. 아낌없이 모두 드렸으면 다른 믿음의 선진처럼 칭찬받는 이름을 성경에 남길 수 있었는데 반대로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었고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인정합시다. 또한 우리는 외식적인 신앙의 태도를 버립시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기보다 하나님 앞에 먼저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우리의 마음을 실어서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께 드립시다. 우리의 몫을 챙기는 어리석은 신앙을 버리고 우리의 시간, 재능, 정성 아니 우리 자신 전체를 주님께 아낌없이 모두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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