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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방위 군복무를 할 때, 사무실 안에 행정병이 없거나 제 위로 상관이 없을 때, 매우 긴장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화가 걸려 오는 일이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하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기라도 하면 가슴이 콩콩 뛰었습니다. 이게 과연, 기쁜 소식일까 아니면 나쁜 소식일까 대부분 군에서의 전통은, 상부에서 내리는 명령이고 그에 준하는 책임이 뒤 따르기 때문에, 매우 강하면서도 조심성있게 받아야 합니다. 한 번 잘못 받으면 문책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곤 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간혹 전화가 걸려오거나 어디선가 편지가 날아오면, 이것이 기쁜 소식일까 아니면 나쁜 소식일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거나 또는 편지봉투를 뜯곤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왕이면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듣기 원합니다. 불안하고 걱정되고 절망스러운 소식보다는 희망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좋은 소식을 듣기 원합니다. 좋은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소망이 넘쳐나고 삶의 활력과 일에도 능률이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소식을 기다립니다.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들은, 평사원에서 대리로, 대리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주부들은 남편의 월급날을 기다립니다. 학생들은 '대학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임신한 부인들은 무사히 순산할 날을 기다립니다. 몸이 아파 질병으로 고생하던 환자는 이제 다 나았으니 약을 드실 필요도 없습니다라는 의사의 진단소견을 기다립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다 기쁘고 좋은 소식들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소식 중에 '제일 좋은 소식'은 어떤 소식이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구원의 소식이며, 생명의 소식이며, 치료의 소식이며, 은혜의 소식이며, 축복의 소식입니다. 그 어떤 소식과도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눅2:10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보통 기쁜 소식이 아니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천사가 전해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소식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은, 역사 이래로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가리켜 '복된 소식', 복음(福音)이라고 말합니다. 그냥 복음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실 유일한 희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가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수십억되는 사람들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죄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눅19:10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막2:17에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하시면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딤전1:15)고 말씀했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려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생명의 구세주이십니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며 놀라운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분명한 증표이자 사랑의 확증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들을 귀 있는 자가 복된 자요, 믿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셨는데,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려 주시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시는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영접하고 언제나 주 안에서 기뻐하며 승리하며, 이웃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한 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들은 사람은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보면,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잠든 한 밤중에, 목자들은 밖에서 자기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추위에 상관하지 않고, 혹여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이리나 늑대의 습격을 대비하여, 목자들은 밖에서 밤중에 자기 양 무리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언젠가 새벽녘에, 길에서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 아저씨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서 거리는 어두컴컴하였고, 날씨는 겨울문턱에 들어선 때라 찬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습니다. 누구하나 인정해 주지 않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 청소부 일이지만, 그 청소부 아저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그져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에 떠 있는 새벽별은 유난히도 초롱초롱하게 새벽녘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너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새녘에 집집마다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토바이를 타고 편지를 배달하는 집배원들, 작은 가방 하나 어깨에 매고 야쿠르트를 파는 야쿠르트 아줌마들, 어찌보면 매우 보잘 것 없는 일 같지만, 실상 이들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깨닫고 바로 행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오늘 목자들은,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문화권에서의 양이나 소를 치는 '목자'라는 직업이, 그리 좋지 않은 직업이었습니다. 아주 천시 받던 직업이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소나 돼지를 잡아 팔던 상인들을 가리켜 '백정' '백장' 또는 '포정' '포한'이라고 부르면서 아주 천시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 중에 '포한'이라는 말은, '가슴에 한을 품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시를 받았으면,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았겠습니까

이처럼 천시를 받던 직업이 이스라엘에서는 '목자'라는 직업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목자들을 대할 때, '천한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였고,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보다 중요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직업이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임을 깨닫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선하지 못한 직업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향락과 쾌락을 쫓는 직업들이 그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직업을 천직으로 깨닫고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밤에 자기 양 떼들을 지키던 목자들은, 천군 천사를 보았고, 천사를 통하여 구세주가 나셨다는 지상 최대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목자들은 비록 누구하나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였고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들이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직분을 감당하며 주어진 일에 충실했을 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 듣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한 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어 찾아오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이 작다가 투덜대지 마십시오. 작은 일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좋은 소식이 되어 만나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빈부귀천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어 주십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목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성실함을 인정하셨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천사들을 통하여 세상에서 가장 먼저 그들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들려주십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주시고, 필요마다 채워주시고, 응답해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목자들이 한 밤중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때에,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 들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비록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충실한 삶을 살아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큰 기쁨의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겸손한 사람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십니다.

성탄절하면, 쉽게 떠 오르는 그림 하나가 있습니다. 낙타를 탄 세 명의 사람이, 하얀 모포를 머리에 쓰고, 유난히 빛나는 커다란 별을 바라보며 손짓하는 모습입니다. 이들이 바로, 동방박사들입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 태어나셨을 때에, 멀리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찾아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생각하기를 메시야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으니, 분명 왕궁에 계실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헤롯왕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 성으로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성 안에는 메시야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계시지 않는 메시야를 찾으니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은 웅성 웅성하며 소동이 일어날 뿐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말을 종합하여 들어보니, 그리스도는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실 것이 예언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가는 도중에 동방에서 보던 커다란 별 하나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별은 마치, 조용히 그들에게 손짓하는 듯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 마굿간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너무나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을 만나 엎드려 절하며, 자신들이 가지고 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아기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다시 동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동방 박사들에 대한 여러 가지 구전이 전해 내려오고는 있지만, 이들의 출신지가 정확히 어디인지, 또 그들이 이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한가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은 동방에서부터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러 온 박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하여, 동방박사들로부터 겸손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은 남부럽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 먼저 그들은, 매우 학식이 높았던 박사들이었습니다. 별을 보고 역사를 꽤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 천문학 박사들이었습니다. 해박한 지식과 예언자적인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시대를 바라보던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에게도 존경받고 높임 받았던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헷롯왕 앞에 가서도 굽힘없이 당당히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할 정도로, 너무도 의연하였습니다.

또한 아기 예수님을 뵙고 드린 예물을 보아서 그들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세가지였는데, 첫째는 황금이었습니다. 황금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값지고 귀중한 보물입니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은,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황금보다도 더욱 빛나고 값지고 소중하신 분임을 고백하는 의미로 드린 것이며, 또한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는 표시로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예물은 유향이었습니다. 유향은 나무에서 채취한 아주 향기로운 송진인데, 성전 제사나 헌물에 자주 사용되는 값비싼 액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즉 제사장으로서 이 땅에 오셨음을 인정하고 또한 참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예표로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드린 예물은 몰약이었습니다. 몰약은 시체를 염할 때 방부제로 사용되는 향기로운 약제인데, 이 약제는 매우 구하기도 힘들고 값비싼 제품이어서, 귀한 자의 시체에만 바를 정도로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이 몰약을 아기 예수님께 예물로 드린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예비하는 의미로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대속물이 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믿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살려 주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버리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수난과 죽음을, 미리 예비하는 의미에서 동방박사들이 몰약을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동방박사들이 가장 귀하고 가장 값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수님께 드렸다는 것은, 그들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 추측하건데, 동방박사들의 외적인 모습도, 아주 덕망스럽고 인자하고 풍채 좋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동방박사들 중에는 백발이 서리고 흰 수염을 한 나이 많은 박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인생의 경륜과 삶의 지혜를 겸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분명, 많은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듣고 존경받던 사람들이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어떤 권위보다는, 도리어 자신을 무한히 낮추려는 겸손함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의 체면이나 명예나 권위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그져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찬양하기를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겸손한 자에게 찾아 오시며 만나주십니다.

남보다 많이 아는 지식이나 높은 학벌이나, 많은 물질이나 명예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그렇다고, '지식이 쓸모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명예나 물질이 필요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자에게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부유한 동방박사들에게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상관없이, 예수님은 겸손한 자에게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겸손한 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찾아 오십니다.

오늘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면서, 비록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한 없는 겸손함을 마음 중심에 가지고, 주님앞에 나오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성탄은 겸손한 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줄로 믿습니다.

3. 언제나 희망을 간직하고 인내하는 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십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중에, 나의 환경은 최적의 환경이야. 나처럼 좋은 환경에서 이렇게 멋지게 사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환경에 만족하지를 못합니다.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더 큰 것을 쫓아 살아갑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우리를 만족하게 해 주지를 못합니다.

아담 이후로 '죄의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세상에는 참 만족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종신토록 수고해야 먹고 살게 되었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한다(요16:33上)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온갖 시험과 환난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래서 수고와 고생이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때로는, 나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도 없을거야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주변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니 그러기에 더욱,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희망'이란, 자신이 믿고 있는 그 무엇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는 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희망을 간직한 자에게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들려 오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현실의 삶이 열악하고 불우하다고 하더라도, 희망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져 '말 먹이통'만 바라 본다면, 결코 희망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 누울 곳이 없어서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오셨겠습니까 우리는 약한 것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구원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웅장한 대궐'이나 또는 '아름다운 저택'에서 태어나실 수도 있었지만, 도리어 천하고 보잘 것 없고 허름한 마굿간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약한 자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낙심한 자를 위로하시고, 절망에 빠진 자에게 새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기 위하여, 보잘 것 없는 말 구유에 오신 것입니다.

처음에 목자들을 비롯하여 아기 예수님을 만났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께서 보잘 것 없는 말 먹이통에 누워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라고 말했습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가 오죽하겠습니까 풍채는 고사하고, 고운 모양은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져 초라한 모습 뿐이라는 것입니다.

더러운 마굿간 구유에서 태어났으니 얼마나 한심하고 볼폼 없는 일이었겠습니까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요1:46)는 말처럼, 말 구유에서 태어난 사람에게서 무슨 희망을 기대하고 발견할 수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는, 우리가 측량할 길 없습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도리어 구세주로 오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참된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의 질고를 지고 대속자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마굿간 구유처럼 냄새나고 볼폼없는 인간들을 떠 받들기 위해서 섬기는 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모든 영광을 버리셨고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인간의 질고를 대신하여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마음은 냄새나고 지저분한 마굿간 같진 않습니까 온갖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가득차 있고, 허용과 욕심과 교만으로 얼룩져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우리 마음속에 찾아 오신 것입니다. 마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먹이감이 되시기 위하여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입니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시며 나의 모든 죄악을 말끔히 씻겨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병든 몸을 치료해 주시고, 우리의 상처입은 영혼을 감싸주시고, 가난한 심령을 부요케 하시며, 온갖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십니다.

밖에서 밤중에 양떼들을 지키던 목자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상황을 한탄하지 않고, 도리어 어두운 밤 하늘에 더욱 빛을 발하는 별빛을 바라보듯이,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고,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절망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절망하는 자에게는 결국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암담하고 삶이 버겁다 하더라도, 결코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자포자기는 곧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11:4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복음은 약한 자에게 희망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병든 자를 치료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며,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간직한 자에게, 성탄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은, 누구든지 처음 난 자는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했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눅2:22-). 그리고 그 곳에서, 정결예식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날 성전에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서, 성령이 충만하여 메시야가 오실 것을 늘 사모하며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도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전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아기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시므온은 메시야이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너무나 감격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또 여자 예언자 안나라는 사람도, 그 날에 성전에 있었습니다. 안나는 결혼한지 7년만에 남편이 죽고, 그 후에 84년동안 혼자 살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니 족히 100세가 넘는 고령의 할머니였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항상 밤낮으로 기도하며, 때로는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섬겨 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주님은 찾아 오시고 만나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외롭고 가난하고, 약하고 부족해도, 주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간직하고 인내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찾아 오십니다.

이 말씀을 믿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은 산타크로스 만나는 날이 아닙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나의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모셔들이는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내가 처한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갈 때, 예수님은 우리곁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부하건 가난하건 간에, 항상 겸손한 자로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와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 때, 주님은 무한한 기쁨으로 우리곁에 다가오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밤에 양을 치던 목자들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여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 들었듯이, 또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나아갈 때, 만왕의 왕을 뵈올수 있었듯이,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처럼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길이 참고 인내할 때, 마침내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듯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하고, 늘 겸손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여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복된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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