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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알려면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시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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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자 요한 칼빈은 인생이 알아야 할 첫째가는 중요한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며, 둘째는 사람에 대한 지식인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사람도 알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 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 말할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사람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수 없다고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사람을 알면 하나님을 알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도 하나의 역설적인 진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역설이란 모순되어 보이지만 진리인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역설이 진리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가깝게 닮은 존재로 지음 받은 까닭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인간속에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그러므로 하나님을 알려면 먼저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의 시편에서 시편기자는 인간이 질문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물음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4절에 제시된 것처럼 사람은 무엇인가 즉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영어로는 What is man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시편기자가 이 질문을 통해서 얻고 싶어하는 보다 근원적인 해답은 하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물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은 누구입니까 시편기자가 본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1. 사람은 사랑가운데 지어진 존재입니다.

본문4절에 사람과 인자라는 두 개의 단어는 모두 인간의 연약함을 시사하는 단어들입니다.처음에 나오는 삶은 히브리어로 '에노쉬'인데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뜻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인자라는 말 역시 히브리어로 '벤 아담'인데 '흙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흙으로 지음받아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4절의 의미는 그런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깊이 생각하셔서 창조한 존재요 끊임없는 사랑으로 돌보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이 시편은 다윗의 어린 시절 그가 목동이었을 때 지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아마 하루를 마치고 양떼들을 쉬게 한 다음 풀밭에 누어 깊어가는 밤 하늘의 달과 별들을 바라보며 지금의 기타(깃딧)와 비슷한 악기를 꺼내어 연주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하늘에 가득한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이 가슴 가득히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도 담을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1절과 3절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어서 그 하나님이 어린아이같은 자신을 쓰시고 있다는 경이가 스스로를 놀라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2절입니다. 이 고백이 드디어 4절로 이어져 연약한 인간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찬미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닌 존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부부중에 조금 늦게 결혼하여 가정을 만드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결혼하자마자 아기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총각 노처녀이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신부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데 그 출생한 아들은 자폐증이 있는 장애 아들이었습니다. 얼마나 실망이 컸을까요 아내는 도대체 왜 하필이면 이런 아들을 주셨느냐고 눈물로 원망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이렇게 아내에게 진지하게 말하더랍니다. 여보, 나도 이 아이 때문에 진지하게 기도해 보았는데 하나님이 깊이 생각하시다가 당신과 내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아 우리에게 맡기신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어 이런 대화이후 이 부부는 다시는 원망하지 않고 이 아이를 기쁨으로 키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며칠전 밤에 잠이 오지않아 텔리비전을 켰더니 조영남이 만난 사람 프로그램에 가수 인순이가 출연하여 대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담을 듣다가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나 불행하게 출생한 운명의 여인입니까 그러나 자신이 혼혈아라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밝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가 있었던 이유가 모든 것의 배후에 사랑이 있었다는 쪽으로 생각을 했다는 거에요. 그녀는 자신의 인생의 절정의 순간이 카네기 홀 공연이었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뉴욕공연에 이어 와싱톤 국방성에서 공연하게 되었을 때라고 말합니다. 그 공연을 위해 그녀는 특별히 6.26 전쟁에 출전한 군인출신들이 많이 참여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마련된 자리에서 장내에 가득찬 참전용사들에게 인순씨는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모두 내 아버지이시고 나는 당신들의 딸이라고 나와같은 딸을 둔 것 때문에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말라고. 난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난 당신들의 사랑 때문에 아니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난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난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이 말을 할수 있었던 그 순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의 절정의 순간이었다고, 아니 어쩌면 그 순간을 위해 그때까지 자기는 살아온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태어났던 한 사람 예외없이 하나님의 깊은 사랑가운데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믿을수 있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를 사랑으로 지으신 하나님이 또한 사랑이시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2. 사람은 영광과 존귀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영광과 존귀는 모두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들입니다. 본래 이 단어들은 '무겁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무겁고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 단어들은 본래 왕과 하나님에게만 쓰여지던 말들입니다. 고대의 왕들이 영광과 존귀의 상징이듯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지어졌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왕이신 하나님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며-라는 표현은 본래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며-라는 말로 히브리어 원전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엘로힘이라는 단어입니다. 시편기자가 정말 말하고 싶어한 것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닮아 영광과 존귀로 지어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하고 계십니까 그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목숨의 가치, 생명의 가치는 온 세상의 가치보다 더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일찍이 가장 심각하게 경고한 죄는 바로 이런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죄 곧 살인 죄였습니다. 창9:6에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1912년 4월 14일 밤10시 유명한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기 직전 특등 귀빈실에 타고 있던 한 귀부인이 마지막으로 자기 방을 빠져 나와 구조선으로 향하다가 잠간만 하더니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가더랍니다. 그래서 안내하던 경비가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어요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를 좇아갔다고 합니다. 가드는 혹시 이 부인이 귀금속을 챙기려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방에는 물론 보석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마지막으로 챙긴 것은 오렌지 3개였다고 합니다. 오렌지가 소중해서 그랬을까요 아니지요. 그 오렌지로 지켜야 할 자기 생명의 소중함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무엇과도 아무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생명 그것은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지켜지고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명이 그렇게 소중하거든 이웃의 생명도 그렇게 소중히 여기십시오. 사람을 존중히 여기십시오. 사람을 비하하지 마십시오.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 사회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그 사회안에서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존중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워진 존재입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을 그렇게 지으신 우리 하나님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분이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에게 기도할 때마다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3. 사람은 다스리도록 지어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드리는 가장 보편적인 고백가운데 하나는 그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시편에서 시편기자는 그가 이 만물을 다스리는 책임을 우리에게 위탁하셨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이런 위탁하심으로 인하여 인간은 소위 문화를 발전시켜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이 책임을 언제나 훌륭하게 감당해 오지는 못했습니다. 소위 인재라고 불리우는 많은 사고들은 우리가 이런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불행한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 땅에서 발전시켜온 놀라운 문화적, 과학적인 진보들은 이 다스림의 결과라는 것 또한 부인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만물의 주인이라고 할만 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실을 가르쳐 주와 함께 왕노릇한다고 말합니다. 주께서 당신의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주신 이유도 바로 이 왕노릇 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왕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까 하다못해 집에서라도 우리모두 왕노릇 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옛날 독일 프러시아 제국시절 프레데릭이라는 왕이 성밖으로 암행 시찰을 나갔다가 공원에서 산책하는 어느 노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었다고 합니다. 노인은 무엇을 하면서 지내십니까했더니, 나는 왕이요하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어느 나라를 다스립니까했더니 나는 나 자신의 왕국의 왕이요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만 왕인줄 알았더니 백성 모두가 왕인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다스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중의 하나가 이 다스림의 모범을 세우려 하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다스림의 가장 훌륭한 방법이 사랑이심을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에게서 다스림은 곧 섬기심이셨습니다. 사랑으로 섬길 때 우리는 가장 아름답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 마지막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2장에서 오늘의 본문의 정신을 성취하신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고 계신것을 아십니까 히브리서2:6-9을 보십시오. 9절에서 드디어 영광과 존귀로 관쓰신 예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시고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그분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자유한 섬김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는 사랑으로 지금도 만유를 다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물기 머금은 풀 한포기, 피어나는 꽃잎하나, 새근 새근 숨쉬는 아기들의 심장마다에 그의 사랑의 섬김의 손길이 있습니다. 피곤으로 지친 내 곁에 어느 날 소리 없이 다가와 도닥거리며 '힘내' 하고 속삭이는 이웃들의 눈동자 속에서 우리를 향해 미소짓는 그의 사랑의 섬김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확신이 없다면 십자가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 아닙니까 인생에 짐에 눌려 죽어 버리고 싶었던 분이 마지막 교회당에 와서 기도하며하나님, 아직도 저를 사랑하십니까소리치는데 눈앞에 십자가상이 또렷하게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사랑하신다면 도대체 얼만큼 저를 사랑하십니까했더니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주님이 움직이시더랍니다. 십자가상에서 양팔을 벌린채 고통스럽게 꿈틀대며 이렇게 대답하시더랍니다. 이만큼. 우리가 이런 그의 섬김, 그의 다스림으로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안다면 우리 또한 한 평생을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인순이는 사랑가에서 오늘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랑은 우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사랑은 아직도 여기 있다고 노래합니다.

오늘 하루도 많이 힘들었나요/무엇을 갖고 무얼 버렸나요/처음 시작했던 때가 너무 멀리 있어요/사랑과 꿈과 자유로움 어디 있나요-사랑 사랑 떠나간줄 알았어요/잊혀진줄 알았어요/아직 여기 있어요-사랑 사랑 여기까지 왔잖아요/그전처럼 하면 되요/항상 여기 있어요-사랑 사랑 이미 알고 있잖아요/떠나지 않는 사랑과 자유로움 속에서-사랑 사랑 떠나간줄 알았어요/잊혀진줄 알았어요/아직 여기 있어요-사랑 사랑 우린 알고 있잖아요. 사도 요한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사랑이 필요하십니까 십자가로 오십시오. 거기 영광과 존귀로 관쓰시기에 합당하신 예수께서 대신 가시관을 쓰시고 피흘리시는 모습을 지켜 보십시오. 왜 였습니까 당신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회복을 위해서 였습니다. 그가 죽으심으로 당신이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이 다시 영광과 존귀로 관쓰고 당당하게 사는 것을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분앞에 서서 그분이 당신의 주라고 고백하십시오. 그 순간이 당신이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한 평생 사랑이신 하나님, 영광과 존귀의 하나님,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행복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설교 적용 질문>

1. 시편 8편의 대의는 무엇입니까

2. 본문 4절에서 시편 기자는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3. 본문 5절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4. 본문 6-8절에 의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 무엇입니까

5. 본문에 입각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자아상을 생각해 보시고, 최근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를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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