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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싹, 한 줄기 (사 11:1-5)

첨부 1


새천년 성탄절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 날이 흥이 나질 않아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이 땅에 오신 날인데 감격과 감사가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줍니다.
괴로운 인생사 속에서도 성탄의 의미를 깨닫고 감격할 수 있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이사야는 B.C 739년부터 680년까지 약 60여년 동안 유다에서 예언 활동을 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고, 그의 사역은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시작되었습니다(사6:1).
당시 국제 정세는 북쪽의 앗수르와 남쪽의 애굽의 팽창이 극대화되었고, 반면에 이스라엘은 몰락되어 가는 그 어두운 시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토록 쇠약한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교훈을 외면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결국 B.C 722년에 북왕국인 이스라엘은 강대국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도 유다 왕국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계속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기울어져가는 유다 왕국의 장래를 바라보면서 이사야는 백성들의 경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와 온갖 악행을 버리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도덕적인 부패에서 돌아설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로 말미암은 모든 재난에서 벗어나 복된 생활을 하려면 죄에서 돌아서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긍휼과 은혜가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메시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영화롭게 회복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내다보면서 그 시대가 오면 평화의 나라가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6-8절).
오늘 본문은 그 메시야의 출현과 사역, 그리고 그의 나라에 대한 기록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사야는 장차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야를 가리켜 '한 싹', '한 가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한싹', '한 가지'는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오늘도 본문을 중심으로 '한싹, 한가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에게 평화와 축복을 주실 메시야를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1. 겸손한 메시야의 출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본문 1절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메시야는 '이새의 줄기, 이새의 뿌리'에서 출생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입니다. 이새는 미천한 농부였습니다(삼상16:1,삼하7:8). 그의 가문은 다윗 왕의 등장까지는 그다지 유명한 가문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 특별히 다윗의 후손으로 표현하지 않고 '이새의 줄기'라고 한 것은 평범하고도 보잘 것 없는 한 혈통을 통하여 메시야가 출현할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새의 줄기' 곧 유다 왕국은 시들고 황폐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심령은 메마르고, 국력은 쇠퇴일로에 있었습니다.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던 때입니다.
그렇게 시들어 버린 줄기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싹, 한가지'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메시야의 외형의 비천함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메시야는 화려하고 강력한 왕국의 제왕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다 무너진 왕국의 잿더미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천한 목수의 집안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겸손하고 비천한 메시야는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생애가 천박하고 미미한 생활이었습니다. 결코 화려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메시야에게 걸맞는 왕궁이나 보좌와는 상관이 없는 소박한 한 평민의 삶이었습니다.
아사야 53장 1절과 2절에서도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한싹, 한가지'는 비천하게 낮아지신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화려한 것으로도 꾸미지 않고, 과장도 없는 순전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사람의 보기에는 미천하고 미약한 종의 모습으로 우리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렇게 낮아지시고, 겸손하게 오신 메시야를 하나님은 높이 드셨습니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빌2:10).
성탄을 맞는 성도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낮아지시고, 겸손하신 주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유일하신 메시야이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본문 1절에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싹', '한가지'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했습니다.
여기 한싹, 한가지는 유일한 싹, 유일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는 여럿 일수가 없습니다.
요즘 종교계가 타락되어 이제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하는 자들이 기독교안에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들은 모든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안 믿어도 그들이 믿는 종교로 인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괴변을 토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괴변이 이제 교회 안에서도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데 대해서 우리는 큰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시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도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그리스도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얼마나 나타났는지 모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이 예수의 흉내를 내며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말세가 될수록 거짓 그리스도들이 메시야인 것처럼 위장하고 사람들을 현혹시킬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대신 죄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 분만이 유일하신 메시야이십니다.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축복의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본문 1절에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미한 존재였던 한가지였고, 한 싹이었는데 이제 그 가지를 통해서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심을 보여줍니다.
생명체의 특징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생물은 성장이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결실하는 가지입니다. 즉 생명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을 통해서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많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런 진리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요12:24).
그러므로 결실은 희생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계나, 자연계나 공통된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희생의 제물로 오신 메시야입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막10:45).
이는 죄인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침내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는 마침내 사망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사망에 종노릇하며 두려워하는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히2:14-15).
많은 영혼 곧 구원의 열매를 맺으신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암울한 조국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 그분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환난 중에 있습니까 고난 중에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만나면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바라보면 삽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
이사야가 바라본 메시야는 한싹, 한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작은 대단히 미약했지만 나중에는 심히 창대하여질 메시야입니다(욥8:7).
바로 그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시작은 실로 마른 땅에 나온 연한 순같이 약하고 천하고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보십시오!
오대양, 육대주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얼마나 왕성하게 뻗어 나가고 있습니까
전세계 수많은 족속과 민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왕으로 모시고 그 분께 충성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마다 축복의 결실을 거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마다 넘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요, 구주이십니다.
그분만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지옥에 갈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비천하게 낮아지신 모습으로 오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2000년도의 성탄을 맞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성탄이 기쁨이, 구원의 기쁨이, 영생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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