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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요 0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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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김대두 그는 1975년 경기도 송탄에서 일가족 4명을 죽이고 두 달 동안 전남과 경기, 그리고 서울에서 17명을 살해한 사람입니다. 이 살인마 김대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건 제가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니라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누가 저에게 어느 대회사 사장 자리를 줄 테니 예수님을 버리고 오라 하면 저는 확실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사형의 날을 기다리며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기쁨을 기대하는 지금이 내게는 더욱 행복합니다라고요” 이러한 고백은 그의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후 나온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 같은 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로 변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심하게 변화될 수 있는 것인가 누가 그를 그렇게 변화되게 했는가 부모도 할 수 없는 일이고 형제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많이 배우고 모든 것이 만족할 만큼 충족된다고 해서 이렇게 살인 강도가 변화될 수 있는 것인가 지금은 돈이면 못하는 일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돈이 이 사람을 이토록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우리 주님께서만이 이렇게 사람을 크게 변화시키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 십자가 오른편의 강도와 같은 은혜를 받았다 할 것입니다. 그는 평생에 불행하게 살고 못된 짓을 하여 사형을 당하였으나 예수님 때문에 결국 이런 칭찬을 듣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니고데모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충격적이며 놀라운 말씀입니다.
1.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인가
1절 “바리새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엄격히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엄격히 지켰습니다. 채소의 십일조도 드렸고, 안식일에는 절대로 일하지 않고 무거운 것도 들지 않았습니다. 멀리 여행도 가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이러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이라고 했고, 또 “유대인의 관원”이라고 했습니다. “관원”이란 뜻의 ‘아르콘’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을 가리키는데, 산헤드린은 당시 유대인의 최고 종교회의 기관으로 71명으로 구성이 되었으며, 고위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사회적으로 고위층의 사람입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소위 성공한 사람이 였습니다. 그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였습니다. 그에게는 물질도 명예도 사람들의 존경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지 못한 성공한 사람이 였으며 심령의 갈급함을 해결하지 못한 구도자였습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은 그의 심령의 호전함과 불만족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2. 거듭나야 하는 복음의 인식
그런 그에게 예수라는 분은 대단히 호기심이 가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 였습니다. 그는 드디어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조용히 찾아옵니다. 그가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으로 보아 예수님께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았고, 그 결과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믿었습니다. 아니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니고데모는 종교적인 관심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하여 관심을 예수님과 이야기하고 싶어 한 것 갔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심령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자기의 문제 즉 심령의 허탈함을 해결하기 위해 에수님을 찾아 왔다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의 말에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엉뚱한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① 처음부터, 완전히, 철저히 의 뜻과 ② 다시, 두 번째 ③ 위에서부터, 곧 하나님께로 부터의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의 본성이 새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을 말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을 지나가시게 되었을 때 우물에 앉아 계시다가 수가성 여인을 만나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신비한 물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목마름이라는 것은 인간이 바라는 끝없는 욕구를 의미하는 것이며 목마르지 않는 생수란 그 끝없는 욕구를 충족되게 하는 성령의 은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받아먹는 것을 중생이라고 하고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거듭나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보다’라는 말은 시각적인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경험하다’, ‘참여하다’ ‘인식하다’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고, 참여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중생하여야 하나님 나라를 인식할 수 있고, 중생하여야 하나님 나라를 참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①. 가시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즉 돈이 많고 명예가 높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니고데모는 그런 모든 것을 가지고 갔었으나 그 나라 밖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 대답은 “(눅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오”
②.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눅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복지 사회라든지 선진 국가는 참으로 좋은 국가요 사회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나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언제나 실패를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에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물질적 사회주의를 이상적 인간 삶으로 목표했던 공산주의는 100s년도 못 가서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어리석은 먹고 마시는 복지 사회나 선진국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③. 하나님의 나라는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오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하신 말씀대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리석은 자들이 말하는 말은 무엇이며 하는 짓들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리석음과 우매함에 빠져 진실과 의를 보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심은 인간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열심히 있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완전하게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 있는 인간은 그에게 지식이 있든지 없든지, 그가 높은 명예나 권력이 있든지 없든지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이라도 그냥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 “아 나도 거듭나야 하는구나”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3. 어떻게 거듭나는가
4절에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아마 이 질문은 니고데모나 우리에게 있어서 같은 질문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가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 같다가 나올 수 있는가 육신적 생육 법만 아는 우리들에게 이해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5-6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십니다.
①. 우선 ‘물’로 거듭 나야 합니다.
물은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회개의 세례를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사람이 새 옷을 입으려면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만든다 든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의 죄를 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회개라는 게 ‘잘못했습니다’ 정도의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픔이 있는 회개, 뼛골 깊이 스며드는 추위고 고통과 슬픔과 괴로움이 있는 회개여야 합니다. 주님은 죄도 없으시면서 십자가를 우리 대신 지시는 회개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피땀을 흘리며 회개를 해야 할 죄인들은 주님을 보면서 생각하기를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라고 생각한다고 한탄을 했습니다.
②.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회개를 했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태여 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다시 출생해야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노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돈이나 어떤 인간적인 수단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벌거벗은 체로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겸손 합입니다. 죽이시던 살리시던 우리의 바라는 것과 요구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욥은 이것을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이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이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사실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마끼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면서도 자기는 좋은 믿음을 가기고 있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믿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지 못하는 것만 하나님께 마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마끼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새로운 각오가 아닙니다. 완전히 새롭게 탄생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행2: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고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약간 고치셔서 사용하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사람 중에 그 누구도 하늘에서 온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죄인을 거둡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내개 원하여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요5: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라고 하시고 바울도 “(롬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듭 난 사람에게는 거듭 난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1).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게 됩니다. 전에는 안보이고 믿어지지 않던 하나님이 이제는 실체적으로 믿어지며 살아 계신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마치 바람이 안 보이고 잡을 수 없어도 바람을 확실하게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2).자기 자신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3). 거듭난 사람은 인생의 참된 목적을 알게 되고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4).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감화하심과 감동하심으로 세상에서 생명 살리는 일에 힘쓰게 됩니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며 헌신하게 됩니다.
5). 또 그 사람의 가치관이 변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6).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의 옛 생활이 완전히 변화됩니다. 성령께서 그를 새롭게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대하여 열심을 냅니다. 그의 모든 삶이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7).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의 가족도 미워하는 사람이 이제는 용서가 무엇인지 알며, 사랑한다고 말하게 됩니다.
8). 거듭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압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부끄러움을 자랑으로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늘 권세와 능력이 넘치게 됩니다. 귀신이 물러갑니다. 병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병이 물러갑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에게 이루어집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 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새 창조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기커녕 볼 수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관원이나, 종교가나, 율법가나, 철학가도 중생을 위해 고민한 자들도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 일수 없습니다. 목사의 가정 식구들도, 집사의 가정 식구들도 믿음 있는 사람과 결혼해도 그 자신이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이 땅의 일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하늘 일을 알지 못합니다. 신령한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거듭 난 사람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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