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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가치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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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다면 옳은 것인가. 우리가 좋다면 좋은 것인가. 인간을 「근거없는 모든 가치의 근원」이라고 한 사르트르의 주장대로 가치는 정말 주관적인가.
과학적 혹은 철학적 진리 판단의 맞고―틀림이 객관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이들까지도 옳고―그름의 도덕적 가치나 아름답고―추함의 미학적 가치가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이라는 생각을 쉽게 청산하기 어려웠다. 과학적 혹은 철학적 진리마저도 상대적이라는 포스트모던적 주장이 지배하게 된 오늘날, 모든 가치가 결국 주관적이라는 생각은 이제 하나의 객관적 신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런 입장을 밀고가면 가치란 각자 그때 그때 그의 주관적인 욕망이나 기호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난다.
과연 그럴까. 한 개인은 물론 한 집단의 주관적 욕망을 넘어서는 객관적 가치 기준은 정말 없는가. 이런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이 절실하다. 문명사적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 오늘날 우리가 다같이 겪고 있는 정신적 및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가치관의 무정부주의적 혼돈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전직 대통령의 가치전도된 비자금 파동을 겪는 요즘은 더욱 그러하다.

▼ 나보다 인류가 우선 ▼

가치란 무엇인가. 가치는 중요성을 뜻하며 중요성은 욕망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인간마다 갖는 욕망은 다를 수 있고 한 인간의 욕망은 때와 장소에 따라 무한히 변할 수 있다. 다른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생물학적 생존보다 더 근원적인 욕망은 없다. 그렇다면 각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모든 다른 생물체만이 아니라 자신 이외의 모든 인간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생존과 주관적 욕망 충족이 가장 귀중한 객관적 가치라는 것은 자명한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론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한 개체로서 나의 생존이나 욕망충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종족의 생존가치이며 내 종족의 생존보다는 인류라는 종의 생존과 번영이 더 귀중한 가치임을 모든 인간이 무의식적―본능적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는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즉 집단적 주관성을 초월하며 이런 점에서 객관적이다. 자식이나 후손에 대한 부모의 본능적 희생정신, 그리고 같은 민족에 본능적으로 느끼게되는 끈끈한 동질감, 가족이나 민족, 인류를 위한 희생적 봉사 정신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높이 평가되어 왔다는 사실등이 가치의 객관성을 뒷받침한다. 이런 식으로 나타난 가치의 객관성은 동물―생물의 행태 관찰을 통해 더욱 확실해진다. 과학적 연구는 모든 동물―생물들의 개별적 생존과 번영이, 종으로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바치는 아름답고 숭고한 희생정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가치는 자연―우주의 객관적 질서의 한 측면이다.

나의 욕망이 결정한 가치는 한 씨족적 욕망이 선택한 가치에 비추어서, 한 씨족의 가치는 한민족의 욕망이 택한 가치에 비추어서, 한 민족이 택한 가치는 인류의 번영이란 가치에 비추어서 객관적으로 분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 개인, 각 가족, 각 민족의 욕망이 중요하지만 만약 나 개인의 가치와 내 가족의 욕망이 갈등할 때는 가족의 욕망을 선호해야하고, 내 가족의 생존과 내 민족의 생존이 충돌할 때는 민족적 생존가치를 선택해야하며, 한 민족의 생존과 인류의 존속이 양립할 수 없을 경우는 전자가 후자에 종속되어야 함은 이성이 요청하는 객관적 진리다. 나의 죽음이 곧 씨족의 죽음을, 한 씨족의 몰락이 곧 민족의 몰락을, 한 민족의 멸망이 곧 인류의 멸망을 뜻하지 않는데 반해 인류의 멸망은 곧 한 민족의 소멸을, 민족의 소멸은 곧 한 씨족의 몰락을, 한 씨족의 몰락은 곧 나의 죽음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 최상 가치는 생태계 ▼
나는 씨족 속에서만, 나의 씨족은 민족 속에서만, 내 민족은 인류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류의 생존이라는 가치와 생태계 유지라는 가치가 양립하지 않는다면 후자가 전자에 우선한다는 결론은 객관적으로 자명하다. 인류의 종말이 곧 생태계의 종말을 뜻하지 않지만 생태계의 죽음은 곧 인류의 죽음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가치의 궁극적 잣대는 나, 우리 가족, 우리 민족일 수 없고 프로타고라스의 주장과는 달리 인류도 만물의 척도일 수 없다. 인간의 생존―번영이란 가치와 생태계적 가치, 즉 지구상의 생명체의 존속―번영이 양립할 수 없다면 인류의 가치는 상대적 가치에 종속돼야 한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모든 것이 다 똑같은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생태계 즉 생명의 존속은 모든 가치의 지상의 척도다. 그런데도 우리의 가치관은 아직도 자기 중심적, 씨족 중심적, 민족 중심적, 인간 중심적이다. 지금 기술물질 문명이 지구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다. 인가 살려면 먼저 생태계가 살아야 한다. 더 이상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혁명으로 생태학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찾아야 한다. (박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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