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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초대교회의 논쟁-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나 (행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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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11장 1절입니다. 먼저 1절부터 3절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시작!-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수 있는가 이것이 초대교회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이방인들도 구원 받을수 있는가 왜냐하면 유대율법과 로마 전통에 자라온 그들에게는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도저희 상상할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벽이라는 것은 우리 이방인들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을 만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리더격인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가서 교제하고 했던 사실에 분노하며 돌아오자 마자 많은 사도들과 제자들이 힐난을 받는 것이 1-3절까지 기록된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 말씀 속에서 몇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다를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방인을 만나지 않는것. 이방인과 밥을 같이 먹지 않는것.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비록 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듀오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사야서 55:8절에도 내 생각은 네 생각과 다르다, 네 길은 네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네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네 생각보다 높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옳다고 늘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 경험이 최고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 생각만이 전통적이고 성경적이고, 어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앞에 서 보면 얼마나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뭐 하나님 앞에 설 것도 없이요 성경 한번만 정직하게 읽어보면 야!-이렇게 다르구나!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전혀 다른 하나님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일수록 이런 쇼크가 더 큽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들은 성경을 안읽고 오래 믿었거든요. 세월만 보냈어요. 교회와서 봉사만 했고 프로그램만 참여했지, 난 예수믿는 사람들중에 성경 많이 본 사람 본적이 없어요. 누가 성경을 잘 읽냐면요 예수 갓 믿은 사람이 성경 많이 읽어요. 하나님이 날 여기에 집어 넣었다는 것에요. 내가 그렇게 해석을 해요. 들어온지 한달만에 성경 다 읽었어요. 부끄럽지요 교회 들어온지 한달 만에 성경 다 읽었어요. 우리 어머님이 과거에 교회의 집사였고 내가 대학교때 교회를 다녔는데 그 후로 지금까지 교회를 쭉 안다녔습니다. 이 사건이 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더라고요. 내가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예수 오래 믿은 사람은요, 내가 정말 성경 잘 읽는 사람 제가 못 봤어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만나면 쇼크를 먹고 은혜 받으면 쇼크를 먹는 거예요. 야! 내가 믿는 예수하고 성경이 말하는 예수하고 다르구나!-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만 구원하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한 이유는 이스라엘만을 사랑해서 택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메시야가 나오게 하고 그 메시야를 통하여 온 인류가 구원을 받게 하는데 이스라엘의 의미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스라엘들은 착각을 했어요. 우리만이 선민이고 하나님은 우리만의 하나님이지 절대 이방인의 하나님이 될 수가 없고 우리만의 구원이라고 그들은 착각을 한거예요. 그들은 축복을 착각한거예요. 우리가 이런 착각을 참 많이 합니다. 이스라엘이 선택받기 전에는 그들이 어떤 존재였습니까 선택받기 이전의 이스라엘. 그들도 똑같은 이방인이었지요. 아니. 선민으로 태어났나요 아니예요.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고, 그들이 처음부터 선민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선민을 만들어 주신거지요. 좀더 올라가 봅시다.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유대인들이 가장 최고로 생각하는 아브라함. 그가 부름받기 전에는 어디서 살았습니까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라는 우상이 많은 이방인의 한 곳에서 그냥 살고 있는 그런 곳에 보통사람으로 살고 있던 사람이예요.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선민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요. 하나님이 그런 우상동네에 살고 있는 이방인 세계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목욕을 시켜주고, 때를 벗겨주고 옷을 입혀 주고 그를 닦고 갈고 믿음을 입혀 주어서 믿음의 조상을 만들었고 그를 통하여 이삭을 나오게 했고 그를 통하여 야곱을 나오게 했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만들어 주신 것이지, 아브라함이 언제부터 이스라엘입니까 아브라함이 언제부터 택한 백성입니까 아니예요. 그런데 주제파악을 잘못한거예요. 그런데 정말 자기가 처음부터 이스라엘인줄 알고 처음부터 택한 백성인줄 알고 처음부터 자기가 다른 종0족인줄 안단말이예요. 나는 별난 사람. 아주 저 만나보면 제일 힘든 사람이 특수 대우를 받으려는 사람이 사실 힘들어요. 나는 별나다. 그거예요. 나는 열외예요. 그거에요. 어떻게 우리가 열외에요. 다 죄인이지. 여러분 어렸을때부터 우리는 피난 나온 가족인데 피난 나올 때 어떻게 들 나왔습니까 뭐 숟가락 하나 들고 나왔습니까 뭐 집한채 들고 나왔습니까 다 죽끓여 먹다가 이제 이만큼 먹고 살만큼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들의 근본이 뭡니까 우리들의 존재의 근본이 뭡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공부를 잘 한 분입니까 처음부터 여러분들이 그렇게 위치가 좋은 사람들이었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훌륭한 분들로서 태어날 때부터 태어난 분들입니까 안그래요.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이 네생각과 내 생각은 다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한마디 따라해봅시다. ‘주제파악’하고 삽시다. 허허허 다 주제파악하고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본질상 죄인이요. 진노의 자식이요. 우리는 이스라엘 밖에 사람들이요. 외인이요. 이방인이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버림받은 자식들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불쌍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정말로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로 들게 한. 그런거 생각해 보면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장할 것이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이 1-3절까지 보면 하나님과 내 생각이 다르다고 판단되었을 때 즉각 뭘해야 되요. 빨리 회개하고, 생각을 빨리 바꾸는 것이 최고입니다. 최고. 주저하지 마세요. 따지지 마시고. 자존심 내세우지 마시고 그냥 빨리 바꾸세요! 회개하고 바꾸시고 순종하십시오. 17절 읽겠습니다. 시작!-여기서 그러지요 내가 누구관대 능히 하나님을 막겠느냐 하나님이 그러겠다는데. 하나님이 이방인을 택하겠다는데 내 전통, 내 지식, 내 과거. 이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포기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이방인들을 전도하기로 합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4절 시작!-그래서 베드로가 조금전에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처럼 자기도 같은 입장이었지요.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고넬료를 만나서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그는 세계관을 새롭게 갖게 된거예요. 그는 생각을 고쳐먹게 된거예요. 그는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거예요. 나는 오늘 여러분의 마음이 이렇게 변하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그 원하시는 것. 그것을 여러분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4절을 보면 그들에게 차례대로 어떻게 했지요 설명을 했지요. 자기한테 비판을 하고 욕을 하면 사람의 첫 번째 반응은 뭐에요 감정적으로 화가 나는 거예요. 그는 여기서 그러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하나하나씩 설명을 했다. 두가지로 설명을 했는데 5-10절까지인데 환상을 본 설명을 했습니다. 지난주에 다 설명했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흰 보자기가 내려왔고 그 안에 불결한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뭐지요 그것을 먹으라! 베드로는 못먹는다. 이 싸움에 하나님은 이것을 먹으라! 베드로는 나는 속된 것을 먹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9절에서 이런 성령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그것이 깨끗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면 더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깨끗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깨끗게 했다면 네가 더럽다고 말하지마라!!-두번째 스토리는 고넬료 집에 가서 받았던 경험입니다. 11-16절까지입니다. 고넬료의 집에 가보니까 그가 굉장히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15절. 시작!-이제 고넬료의 설명을 듣고 그가 막 설교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게 된 거에요. 그것은 베드로 자신이 120명의 성도들과 함께 경험한 오순절날의 체험이 지금 이방인의 집인 고넬료의 집에도 똑같이 임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성령의 능력이 오늘 온누리교회에도 임하는줄 믿습니다. 나는 온누리교회를 보면 너무너무 재밌고 좋아요. 제가 4부 예배를 그렇게 좋아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보면 그냥 어쩌면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아니 이럴수가 있을까 이 좋은 주일 오후 2시에 어쩌자고 여기에 앉아 있을까 갈데도 많을텐데. 하나님의 역사지요 여러분을 누가 여기다 붙잡아 놓았겠어요. 이 황금시간에. 낮잠도 안자고. 기가 막혀요. 기가 막혀. 베드로의 역사는 오순절날 임했던 그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그때도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그 성령이 임했던 방언이 일어나고, 불의 혀같이 역사하는 것을 보고, 성령의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막 뒤집어 지는 것을 보고 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6절. 시작!-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무엇을 받으리라!-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어떻게 되었어요 생각났노라! 생각났노라!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난거예요. 그렇다. 주님의 뜻이 여기에 있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택한 것은 이스라엘을 위함이 아니요. 이방인을 위한 것이요. 하나님이 온누리교회를 택한 것은 여러분을 택한 것은 우리 온누리교회를 위함이 아니요, 여러분을 위함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하여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이 있다라는 거예요. 그거 아세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동의하십니까 그럼 아멘해 보세요. 그거에요. 하나님의 그 계획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나만, 우리 온누리교회만, 내가 하는 일만 축복하라는 거예요. 이 선교단체도 얼마나 웃기냐면 자기가 관계된 것만 축복해 달라는 거예요. 아 좀 다른데 축복해 주면 어때요 다른 교회좀 나누어 주고 축복해 주면 어때요 사람들은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자기랑 관계된 것만 축복을 달래요.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한국교회 전체가 축복받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축복받기를 원하시고 내가 그 축복을 나누어 주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고 계세요.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다 병낫고요.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건들기만 해도 귀신이 다 나가고 얼마나 좋아요. 그게 축복. 나만 만나는 사람이 다 부자가 돼.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사람이 되십시요.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부자가 되고.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나 만난 사람마다 다 복받고. 나 만난 사람다 장사 잘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게 싫어요 그게 싫으세요 뭐 싫다면 어쩔수 없지만. 아무튼.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축복의 도구로 삼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것을 자기만의 축복으로 삼았을 때 그렇게 많은 고난의 세월을 보낸 거예요. 자 17절 시작!-그들이 받은 선물은 무엇이었을까요 구원의 선물과 성령의 선물이었어요. 그 구원의 선물과 성령의 선물이 이스라엘에게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주어졌다 이거지요.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막겠느냐 그거지요.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사도행전 1장 8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이 되리라. 자 지금은 유대인들이 어떤 논쟁에 빠져 있어요. 이방인들도 구원받았느냐 과연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교제를 하고 한 것이 옳은 것이냐라는 논쟁이 벌어진거예요. 2천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습니까 온 이방인들이 다 예수를 믿게 되지 않았습니까 인류의 반이 복음의 소식을 들었어요. 이 얼마나 엄청난 사실입니까 어느 한 외국인이 저에게 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자기가 한국에 들어와서 받았던 인상은, 밤에 들어왔는데 김포공항에서 서울시내로 들어오는데 곳곳에서 십자가 네온 사인을 봤다라는 거예요. 이럴 수가 있냐라는 거예요. 자기는 그게 아주 신기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오늘 저녁에 저녁을 잡수시고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보시면 이렇게 보면 십자가가 한 3-4개 보입니다. 어디를 가서 보나. 남산에 올라가서 서울 시내를 보십시오. 얼마나 놀랍습니까 복음의 꽃이 핀거예요. 이럴 수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비판을 해요. 아! 기독교 십자가 너덜너덜 많은 것을 비판하면서 상가아파트 1층도 교회고 2 층도 교회고 뭐 그러고 있다고 말이지요. 그래도 술집이 1층,2층 있는것보다는 낫지요. 뭐 조금은 잘못된 것이 있을수도 있어요. 뭐 우리가 봐도 이런 것은 조금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교회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지 전부가 아니예요. 건강한 교회가 있어요. 성령충만한 교회가 있어요. 정말 사도행전적 교회가 있을수가 있다고요. 놀라운 일이예요. 자 우리나라 보세요. 우리나라가 단군문화입니다. 단군문화. 좋게 말해서 단군문화지. 뭐 무당이지. 단군이 뭐 있습니까 우리나라가 무당문화예요. 무당문화. 무속신앙. 무속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5천년동안. 자 그 다음부터 우리나라를 지배한 것이 뭐예요. 삼국시대부터. 불교에요. 불교. 그 다음부터 지배한 것이 뭐예요. 정신사를 지배한 것이 유교예요. 다 우리가 유교전통에 있어요. 다 불교 전통에 있어요. 그것도 뭐 1-200년이 아니예요. 몇 천년이예요. 무속 전통이 몇 천년이요. 유교전통이 몇천년이요. 불교전통이 몇천년이요. 또 일본의 군국주의 전통을 또 얼마나 우리가 현대사에서 받아 왔습니까 일본의 군국주의가 지나갔고 이 강산에 공산주의가 유교를 송두리째 불태우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런 민족입니다. 이런 정신사의 흐름속에서 오늘 기독교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 이것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후 2시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서 예배드리게 한다는 것이 누가 시켜서 하겠습니까 성령의 역사요. 이 이방인의, 극동의 한 작은 나라에 그렇게 수많은 세월동안에, 이 수많은 이런 다른정신들이 지배하고 있던 이 땅에 예수님이 들어오자마자 100년만에 이런 기적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난 이 모든 것이 기적으로 보입니다. 축복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복 받았구나!- 복받은 나라구나! 뭐 이런문제. 저런문제. 환경문제, 노동문제, 뭐 정의 문제. 다 있지만. 나는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축복받았어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제가 믿음의 눈으로 보며 감사드리는 거예요. 18절 읽어주세요. 시작!-자 이말을 듣고 저들이 어떻게 했지요 할말을 잃어버렸어요. 잠잠하여. 여러분도 잠잠하기 바랍니다. 헛소리 하지 마십시오. 쓸데없는 오만과 편견과 비판과 잘못된 비판. 냉소주의적인. 그래서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 지성이라고 착각하는 그런 오만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잠잠하여. 두 번째 뭐였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의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황금같은 시간을 주셨고 젊음을 주었고, 건강을 주었고 능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열등감에 빠져있을 시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좀 못생겼으면 못생긴대로 살지.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그게. 절대 그런곳에 시간낭비하지 마요. 자악하고 열등감에 빠지고. 그것도 일종의 사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백성이예요. 군인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 우리의 시간을 써야하며 주어진 능력들을 활용해야 하며 기회들을 활용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워할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사랑하는 시간만을 써도 부족한거예요. 복음을 가진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한 시간도 없어요. 다른데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그들의 간증은 이것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 하나님은 회개할기회를 주셨다. 오늘 메시지의 요점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키슨투데이라는 목사님이 이번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서 주신 말씀 메시지 가운데 하나 내 마음에 담아 있는게 있어요. 그분이 우리에게 이런 도전을 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사도행전의 상황과 정 반대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라는 것이지요. 지금의 이방인은 당시의 유대인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2천년전의 유대인처럼. 그래요. 전혀 예수를 믿을수 없을 것이라고 상상을 했던 이방인들. 당시에 이런 이방인을 향해서 전도를 해야하느냐 안해야 하느냐라는 이런 심각한 논쟁을 했던 초대교회를 보면은 요. 지금 전 세계 인구의 반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일이예요. 거꾸러. 당시의 이방인이 지금의 유대인이 된거예요. 거꾸러. 지금 현대의 유대인은 그 당시의 이방인처럼 느껴지는거예요. 그게 좀 이상하지요. 우리가 이스라엘 같지요 우리가 유대인같고 유대이들은 예수 안믿는 것도 참 신기해요. 그것도. 그들이 이방인 같애요. 그래서 그분이 이런말을 했습니다. 초대교회에 그리스도인들은 다 유대인이었는데 유대인으로서 메시야를 믿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 당시에 그들은 이방인들을 전도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쳤고 순교를 했다라는 것입니다. 뭐 그말이 맞습니까 네. 그래서 바울이 전도하기 위해서 3차전도를 다녔고 이방인 하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강의 위험과 산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과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고 정말 살 소망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선고까지 받고. 그는 정말로 말할수 업슨ㄴ 고난과 고난과 고난의 연속선에서 그가 이방인을 전도하기 위하여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말이죠. 그래서 그 양반이 그럽디다. 그 당시 유대인이 이방인을 전도하기 위하여 순교했던 것처럼 지금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위해서 순교해 줘야 하지 않냐 이말이예요 우리가 이렇게 예수를 안믿고 우리가 이렇게 유대인이 강퍅한데 그때 우리가 당신들을 도와 주었던것처럼 지금 당신들은 우리를 도와주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기도해 줘야지 않겠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제가 굉장히 도전을 받은 말입니다. 우리에게 두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방인을 전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 사실은 그 당시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의 부담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향한 부담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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