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 (창 18:1-15)

첨부 1


오늘은 아브라함이 길손들을 잘 대접하는 것을 봅니다. 이 길손들은 다름 아닌 야훼 하나님이시었고, 두 분은 천사이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브라함이 손님을 극진히 대접했더니 이 가정에 가장 좋은 소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늙었고 사라도 노쇠하였지만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하시며 찾아 주시고 내년에 아들을 낳게 되리라 하십니다.
우리는 비록 죄 가운데 살고 휘청 휘청 하고, 때론 불신을 해도 “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하시며 찾아 주시는 야훼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길손을 대접한 아브라함(1-8)
한낮 가장 더운 시간이라 일을 못하고 아브라함이 장막 문 어귀에 앉았다가 사람 셋이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나타나므로 고개를 들어서 보니 길(路) 손이 맞은 편에 서 있었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18:22), 다른 두 사람은 19;1절을 보면 천사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두 천사를 데리고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실 때는 말씀으로 임하시기도 하시고(15:1) 깊이 잠든 중에 환상으로 임하시기도 하셨습니다.(15:12)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사람의 모양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표상이겠습니다.
이렇게 사람 셋이 나타나자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자 말자 얼른 일어나서 달려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길손들을 청합니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한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3-5)
대접한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성경에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 대접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미풍양속입니다. 특히 유대 나라는 더욱이 더 그러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우리 농촌에서는 논, 밭에서 일을 하다가 새참(사이에 먹는 간식)을 먹을 때나 점심 식사를 할 때면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앉아 음식을 나누다가 길손이 지나가면 꼭 부릅니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잡수고 가라고 합니다.
또, 저 건너편 논, 밭에서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이 먹자고 손짓을 합니다. 이리 와서 좀 쉬었다가 하라고 합니다. 이런 사랑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도 그러합니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그냥 지나가지 마시고 내가 물을 가져오리니 발을 씻으시고 음식을 잡수시고 지나가소서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여기 “은혜를 입었사오면” 하는 것은 공동 번역에 “괜찮으시다면” 이라 번역하였고, Living Bible에는 “제발 부탁드리건대”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 표준 새번역에는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손님들이 저를 좋게 보신다면(괜찮으시다면) 이 종의 곁을 떠나 그냥 지나쳐 가지 말아 주십시오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남을 대접하면서도 오히려 대접을 받는 자보다 더 겸손한 자세를 보입니다. 이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때는 대접을 받고도 기분 나쁜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6:15절에 루디아란 여인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큰 은혜를 받은 후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했습니다. 대접받는 분들이 편안하도록 합니다. 도리어 대접하는 분이 더 겸손합니다. 이런 섬김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어떤 때는 대접을 받으면서도 뭘 부탁하려나 하는 걱정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점심이나 한 그릇 같이 합시다” 하고 전화가 오기라도 하면 때론 불편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심에서 합니다.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신다면 이 종의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을 조금 가져오라 하셔서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서 쉬시기 바랍니다. 쉬고 계시면 잡수실 것을 제가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종에게 오셨으니 좀 잡수시고 가시지 어찌 그냥 맨 입으로 가시겠습니까” 하니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네 말대로 그리하라” 했습니다. 길손들이 먹고 가겠다니 아브라함은 좋아서 물을 가져와 발을 씻겼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자신의 집에 방문하면 제일 먼저 손님의 발을 씻을 수 있는 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일반적인 풍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피곤한 여행자의 발을 씻어 주는 일이 손님 접대에 있어서의 최상의 예우였으며 팔레스틴에서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6)
그런데 아무리 남편이 손님을 대접하고 싶어도 부인이 손님 오는 것을 싫어하면 손님을 대접할 수 없습니다. 손님 대접은 부인이 잘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대개가 다 손님을 집에 초대하기 좋아합니다. 또, 본문에도 나옵니다만, 고운 가루 세 스아를 내어서 떡을 만들라고 일러줍니다. 뭐 부인이 손님을 보고서 알아서 할 일이지, 고운 가루로 하라, 세 스아로 하라 하면 좁쌀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들은 손님이 오면 자꾸 대접하고 싶어서 뭐 과일 없나, 마실 것 없나 그거 있잖아! 하며 없는 것까지도 들먹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손님이 가고 나면 싸우는 집도 있지요.
이건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랬으므로 그러려니 하고 남편이 시키는 대로 사라처럼 손님 대접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스아(Seah)라는 말은 히브리어(세아)를 우리말로 음역한 것입니다. 한 세아는

7.33ℓ입니다. 그러면 세 스아는 22ℓ나 됩니다. 많은 양의 가루입니다. 그리고 또, 아브라함은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어 빨리 잡도록 하여 요리를 했습니다.(7) 요리를 다 해서 아브라함은 버터(엉킨 젖)와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가 나무 그늘 아래 시원한 곳에서 상을 차렸습니다. 이 나그네들이 다 먹는 동안 아브라함은 서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보십시오. 길손들이 마므레 상수리 근처에 서 있는 것을 보고 ① 달려나갔습니다. ② 그리고 반가이 영접합니다. ③ 그리고 몸을 땅에 굽혀 절을 합니다. 겸손했습니다. ④또,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그냥 어떻게 가시렵니까 맨 입으로 못 가십니다. 하고 ⑤ 물을 조금(4) 떡을 조금(5)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 조금 조금 이라고 해 놓고 풍성하게 차렸습니다. 히브리서 13:16절에 “오직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Ⅱ.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9-15)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할 때 처음부터 이들이 야훼 하나님이시고 천사들인 줄을 모르고 대접했습니다. 모르고 지금 대접하다 보니까 히브리서 13:2절에 “부지중(不知中) 천사들을 대접했다”고 했습니다. 모르고 대접하다 보니 한 분은 야훼 하나님이시었고, 두 분은 천사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브라함은 앞에 있는 분들이 누군지 모릅니다. 우리도 대게 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을 잘 모르잖아요 대화를 하다가 보면 이 분이 누구구나, 어떤 분이시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얼마만큼 배우고, 그 가문이 어떻고, 성품이 어떻고, 대화를 통해서 서서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도 그러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들이 지금 잔뜩 차려 놓은 음식을 먹다 말고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예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 때 그가 말씀합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10) 이 10절의 말씀을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내가 틀림없이 너를 찾아오리라 그 때 네 아내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또, 현대인의 성경이나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다음 해 이 맘 때에 내가 반듯이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 때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고 합니다.
이 때 사라는 장막 뒤에 있었는데 장막 문 뒤에서 남정네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야기를 듣고 사라가 속으로 웃었습니다. 웃으며 하는 말이 “내가 노소 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는데 무슨 낙이 있으며 지금 어떻게 아기를 낳는단 말인가 단산한지 언제인데, 경수가 끊어진지가 언제인데, 내 나이 90인데 무슨 아기는 아기라는 말인가!” 사라는 남정네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하는 말을 듣고 주책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웃었습니다.(12) 그 손님들 되게 웃기시네 했을 것입니다.
이 때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어찌하여 웃으며 늙은 내가 어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하시며 책망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하고 선언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여호와”라고 밝히십니다.(14)
사라는 장막 문 뒤에서 그냥 그냥 보통 손님이겠거니 했는데 친히 “내가 야훼 하나님이다” 라고 밝히시니까 얼마나 두려워겠습니까 그래서 사라가 두려워서 하는 말이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하나님은 장막 문 뒤에 있는 사라에게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자식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휘청휘청하여 외도하고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내년 이맘때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라, 그래서 내가 반듯이 올 때 아기를 안고 있을 것이라 하십니다. 그것이 10절의 말씀인데, 이렇게 말씀하셔도 11절부터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나이 많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져 단산한지 언제인데” 또, 사라는 사라대로 장막 뒤에서 듣고 속으로 웃고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는데 무슨 낙이 있겠는가” 합니다.
이 늙은 영감, 늙은 할멈이 무슨 아들을 낳아 하는 불신을 가졌습니다. 낙심해 있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고 하나님은 말씀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능치 못 할 일이 있겠느냐”
여러분, 한 번 따라 하십시다. “여호와께서 능치 못 할 일이 있겠느냐”
야훼 하나님은 완전히 낙심하고 늙어서 안된다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찾아 오셔서 “여호와께서 능치 못 할 일이 있겠느냐” 하십니다. 이런 이 물음은 아브라함에게만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완전히 절망하고, 낙담하는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여호와께서 능치 못 할 일이 있겠느냐” 하십니다.
벙어리 되고, 귀 먹고, 귀신이 들려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죽어져 가는, 그리고 불에도 물에도 넘어지는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온 아이의 아버지가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십시오 라고 했을 때(막9:14-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건강케 해 주셨습니다.
이 병은 안돼, 38년이나 되었어, 수족이 말라서 비틀어졌는데, 피가 통하지 않는데, 별별 약을 다 복용해 봤는데, 안돼, 이병만큼은 안돼 하며 낙망하고 한 숨 쉬는 자에게 주님은 “여호와께서 능치 못 할 일이 있겠느냐” 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다 되어도 저 인간은 사람 안돼, 틀렸어. 싹수가 노래, 그놈 몹쓸 놈이야, 끝난 인생이야, 이런 말을 성도로서는 하지 맙시다.
인간으로서는 가망 없어도 야훼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능치 못 할 일이 있겠느냐” 지금도 찾아와 물으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도 내가 저주하거나, 자학해서도 안됩니다. 늘 죄에 빠지고, 이미 회개한 죄를 또 짓는 자신을 바라 볼 때 한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원망스럽고, 자신이 미울 때가 있습니다. 이런 학벌 가지고, 이래 가지고서야 내 인생 빛 보겠나 낙담하지 맙시다. “여호와께서 능치 못 할 일이 있겠느냐” 하십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죽이고, 가두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서고 또 살기가 등등하여 믿는 사람을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올라가는데 하나님이 그를 돌려 세우셨습니다.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었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를 되돌려 새사람을 만들어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종으로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요, 사라는 90세입니다. 할머니요, 할아버지입니다. 이들은 늙었고, 노쇠하였고, 단산했습니다.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 가정에 하나님은 찾아 오셔서 “여호와께서 능치 못 할 일이 있겠느냐” 하시며 아브라함 100세에, 사라 나이 90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그래서 낳은 아들이 “이삭”입니다. 우습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 하는 뜻입니다.
한마디:여호와께서 능치 못 할 일이 있겠느냐
1996.

4. 1

4. 주일 낮 예배 설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