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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친구 되신 하나님 (창 18:16-33)

첨부 1


지난 시간에는 아브라함이 길(路)손을 잘 대접하다 하나님과 천사를 대접하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장면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의 친구가 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키우사 당신의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친구라고 하셨습니다.(요15:15) 그러면 하나님의 친구가 된 자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Ⅰ.친구에게 숨김없이 말씀하시는 하나님(16-21)

이사야 41:8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 하시고, 야고보 2:23절에도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친구에게는 비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친구 된 아브라함에게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숨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친구 된 아브라함에게 뜻을 알리고 당신의 일을 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한 목적과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강대한 나라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또한 그로 인해 온 천하 만민을 복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은 그로 통해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의와 공로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낳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안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특권입니다.
고린도전서 2:10절에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사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깊으신 뜻, 하나님의 소원을 알아 우리 성도가 그 뜻을 이 땅에 이룰 수 있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이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16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융숭한 대접을 받은 하나님과 두 천사는 사라에게 믿음을 심고,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했는데 아마 소돔이 다른 지대에 비해 지형이 낮았던 모양입니다. 표준 새번역이나 공동 번역에 보면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데로 갔다”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려 얼마쯤 걸었습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17)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계획을 숨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1) 첫째,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다”는 것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18)
2) 둘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실 일을 미리 알리시는 것은 그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도(道)를 가르쳐 행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19)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브라함을 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손자들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올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고 한 뜻에서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 셋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실 일을 미리 알리시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었습니다.(20,21)
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므로 이제 내가 내려가서 그 모든 진상을 보고 심판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볼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친구로 삼으시고 하나님이 하려는 것을 알리시는 것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것 같이 우리를 통해 이 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하시고(요15:14) 동역 자로서 일하도록 하시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비밀을 알려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Ⅱ. 중보 기도를 하는 아브라함(22-33)

그래서 22절을 보십시오.
두 천사는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멸하시겠다고 하니까 아브라함은 두려웠습니다. 피붙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조카 롯이 사는 곳과 그 사람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니까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대로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또한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네가 자식을 낳아 나의 도를 가르쳐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여라는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를 않고, 다만 조카 롯이 사는 소돔 성을 심판하시겠다고 하니 아브라함이 급해서 그대로 엎드려 중보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잘됐다, 아버지 같은 삼촌도 생각지 않고 좋은 것이 주어졌을 때는 노른자위와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택해서 가더니 잘됐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모와 같은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입니다.
소돔 성은 사해 남단에 있는 소알 성읍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소돔 성의 사람들은 극도로 타락되었으므로, 인류 역사에 있어서 이 소돔이 “죄악의 도시”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이 성읍이 얼마나 아름다웠습니까 창세기 13:10절에 롯이 처음으로 이 땅을 선택하여 갔을 때는 물이 넉넉한 땅이었습니다. 롯이 요단 들을 바라볼 때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했습니다. 에덴 동산처럼 아름답고 가지가지 과일이 있고, 기름지고 비옥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여호와의 동산 같고 비옥한 애굽 땅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외적 부요를 가지고 내적 죄를 많이 저질러서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잘못 사용하여 이제는 심판의 대상이 되었으니 얼마나 비참합니까
특히, 그 당시 소돔의 성적 타락은 극도에 달했습니다. 남색을 가리키는 말인 “Sodomy”로 바로 Sodom에서 왔습니다. 남색(男色)이나 짐승과 교접하는 등 모두가 Sodom에서 기인됩니다.(Sodomite sodomy)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겠다고 하니까 여호와 가까이 나아가 간절히 기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23-2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50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의인 50을 인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 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나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마땅히 받아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간절히 간절히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죄악으로 심판을 받아 마땅한 백성들을 품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열 국의 아버지다운 내면성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또한 세상을 심판하시되 공의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도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인을 보시고 악인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홍수의 사건을 기억하며 의인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신뢰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을 신뢰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 도성에 의인 50인을 찾으시면 그 온 성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을 때, 그 성에 의인 50인을 찾으면 그 온 성을 용서하시겠다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하며 생각해 보아도 소돔 성에 의인 50명이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기도하다가 그 숫자를 필사적으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45인의 의인이 있다면.......
의인 5명이 모자란다고 해서 그 성을 멸하시겠습니까 하고 기도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내가 거기서 의인 45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28) 하셨습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의 인구가 얼마인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만, 또, 왜 의인 50명이라고 기도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는 기도하다 보니 의인 50명도 없을 것 같고, 또 5명을 내려 45인을 두고 기도해 봐도 또 없을 것 같아 또 5인을 내려 40명으로 줄여서 기도합니다.
“4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여호와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40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29)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소돔과 고모라 도성에 그래도 40명의 의인은 있으려니 생각하여 그 숫자를 내리고 내려서 기도 했는데, 또 40명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또 10명을 줄입니다. 열 명을 줄여서 기도하기를 “내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30인을 찾으시면 어찌하시려나이까” 하나님은 “거기서 30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30)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또 10명을 더 내려서 20명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의인 20명은 있으려니 생각을 하고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지금 시대에 기도를 했더라면 아마 이렇게 생각하며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장로님 몇 명, 권사님 몇 명, 집사님 몇 명, 또, 그 집사님, 그 성도 ....
아브라함은 20명이 될 만한 성도들을 머리에 생각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20명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31)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도성에 의인 20명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마지막으로 32절에 말씀합니다. 이번만 말하리이다 하고 의인 10명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거기서 의인 1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나이까” 하나님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10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32)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 드렸습니다. 6번이나 하나님 앞에 다시 숫자를 내리고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50에서 45인, 30인, 20인, 10인까지 기도했습니다.
결국 소돔에는 의인 열 명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보의 기도를 감당하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기도의 내면성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대한 겸허한 자세와 경외심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기도 드렸지만, 두렵고 떨리는 경외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①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27)
② 내 주여 노하지 마옵소서(30)
③ 내 주여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32)
아브라함은 지극히 겸허하게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경외심에 사로잡혀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벗이라 하시고 친구로 삼아 주셨다고 해서 하나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지를 않았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참다운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라”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둘째는 양 떼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성 사람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다시 한 번 회개를 할 기회를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다가 세상을 사랑하여 소돔 땅에 들어가 살게 된 롯을 생각할 때 견딜 수가 없어서 간절히,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린 것입니다.
50명에서 10명에 이르기까지 필사적으로 숫자를 내려가며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롯을 구해 내고자 하는 심정에서이겠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9:2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엎으실 때에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중보의 기도가 없었더라면 롯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심판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보의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았습니다.
또, 중보의 기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온종일 손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손을 든다는 것은 기도를 말합니다. 모세가 중보의 기도를 하는 동안 이스라엘이 이기고 있었습니다.(출17:10-16)
우리는 롯과 같은 집안 식구들이나, 양들이 있으면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돌아올 것 같지 않으면 포기해 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또, 믿지 않는 부모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너무 완고하다거나 고집이 세다는 핑계로 그만 낙심을 하고 기도를 그쳐 버릴 때가 있습니다.
또, 태(胎)신자를 위하여 기도하다가 믿을 가망이 보이지 않자 힘이 빠져 기도를 그만 두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듯이 우리의 중보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야고보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크다” 고 했고(약5:10) 사무엘 선지자는 이 중보의 기도를 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삼상12:3)
이 중보의 기도가 있는 한 그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 중보의 기도가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고 선교사님들이 새 힘을 얻고 선교 사역을 감당할 것입니다.
교회와 교역자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많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기도 까닭에 들의 성도들을 엎으실 때에 롯을 그 엎으시는 성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1996.

4. 2

1.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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