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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부흥의 원리 (행 1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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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교회 부흥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4월의 월명은 “부흥의 달”이고, 월표어는 “힘써 부흥하자”입니다.
첫째로, 생각해 볼 것은 부흥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부흥을 히브리어로 가야흐(Kayah)라고 말합니다. 그 첫번째 뜻은 “숨쉰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면 호흡 곤란 상태의 사람에게 산소호흡을 통하여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호흡곤란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영적 산소호흡을 시켜서 숨을 통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부흥입니다.
사단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아 영적 호흡을 하지 못합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게 되어 영적 호흡이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호흡 곤란자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 숨이 통해지게 하고 다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이날 아침에도 영적 호흡이 곤란한 심령이 있다면 성령충만함을 받아 영적 호흡이 계속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흥의 두번째 뜻은 “다시 산다,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르밧 과부의 유일한 흼앙이었던 독자가 죽었습니다. 삼년 육개월 동안 선지자 엘리야를 모시고 잘 대접했는데도 그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실망함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내가 주의 종을 잘 받들어 섬겼는데, 아들이 죽다니”하는 원망과 불평을 들은 엘리야가 달려 와서 그 죽은 시체를 부둥켜 안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영적으로 죽어있는 심령들을 주님의 능력에 의해서 다시 살게 해 주는 것, 일으켜주는 것이 부흥입니다.
에스겔서 37장에 에스겔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골짜기로 내려가 보았더니 뼈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마른 뼈들이 심히 많았습니다. 그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러자 째깍째깍 소리가 나며 연결이 되어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러나 생기가 없었으므로 “생기야 이 사망을 당한 사람에게 들어가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생기가 그 심령속에 들어가서 죽어있던 시체가 벌떡 일어나 극히 큰 부대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에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병든 영혼이 고침받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리에 있는 영혼이 깨어 일어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흥인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심령이 살아나고 깨어 일어나고 고침받고 열심을 품게 되어 몸된 교회를 잘 섬기게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축원을 드립니다.
부흥의 세번째 뜻은 소생하다, 생명을 회복하다, 원기를 되찾다“라는 뜻입니다. 에스겔서 47장에 보면 생명강수가 흘렀는데 그 양쪽 언덕에 생명나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에 이 생명수로 인하여 그 나무들이 살고, 또 생명수가 흐르는 곳에 고기들이 살아나고 생명수가 흘러 들어가는 곳에 바닷물이 소성함을 입었다고 햇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생수를 공급함을 받을 때에 모든 영혼이 살아나게 되어지고 원기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그런데 진펄과 개철은 소성함을 입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회개하는 심령은 소성함을 입지만, 회개하지 않는 진펄과 개펄과 같은 심령은 소성함을 입지 못한다고 하는 뜻입니다. 한가지 예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게 됩니까 회개하는 심령이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날 아침에도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 나가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하나님을 슬프게 해드리고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했던 모든 죄를 낱낱이 주앞에 고백하고 회개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 성도 여러분들의 심령이 소성함을 입게 해 주실 것이고 원기를 회복하도록 은혜를 입혀주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부흥의 동기, 즉 부흥의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부흥된 요인, 원동력이 어디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예루살렘교회의 박해로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로 말미암아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 흩어진 교인들이 사방으로 복음을 전하고 전도의 불을 일으키므로 각처에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활활 타는 숯불을 막대기로 해집으면 그 숯 덩어리가 사방으로 번져서 사방에 불을 붙이게 되는 이치와 같이 초대 교회에 핍박이 임하자 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고, 흩어진 교인들로 말미암아 교회가 생겨지고 교회가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끼리 끼리 살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러한 안일한 생각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시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전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안일한 생각을 갖고 그저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을 때 핍박을 가하시는 것입니다. 고난풍파가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난 풍파의 결과가 결국은 교인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들고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므로 부흥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육체적으로 힘이 들고 괴롭겠지만 복음을 전하게 되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되어지고, 교회가 부흥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바랍니다.
부흥의 원동력이 되는 두번째 요인은 희생의 씨앗을 심는 데에 있습니다.
핍박을 당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뤘겠습니까 이 희생을 통하여 교회가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으면 그 마음이 세상을 향하는 데서 돌이켜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안할 때는 세상에 마음을 둡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게 되고 세상의 영화를 구하게 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풍파가 닥쳐오면 세상을 향했던 마음이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동경하게 되고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게 되고 씨앗을 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늘 하늘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육신이 평안해지고, 무슨 일이 잘 되면 하늘나라는 뒷전에 버려주고, 세상 일만 집착도 이 세상에 재물을 쌓아 두고, 세상의 부귀 영화만을 누릴려고 하며,
자꾸 세상에 마음을 두면 안된다는 신호로 고난과 핍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러 성도 여러분! 고난이 다가오고 핍박이 다가올때에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고, 또 여러분의 마음을 하늘나라에 두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인 줄로 믿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형통한 날에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곤고한 날에는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에 더욱 더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다가올 때에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이 깊이 반성하고 회개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당할 때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감사하면서 희생의 씨앗을 심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희생이 지불되는 일은 대단한 가치가 잇는 일이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심는 귀중한 일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공짜라고 하면 우습고 시시하게 여깁니다. 값싼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행사가 있을 때에 교회에서 선물을 마련해 드립니다. 각 개인에게 돌아가는 양(금액)은 적지만 수천명에게 선물을 만들어 드리는 교회의 입장은 그 액수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시시한 것이라 생각하여 형편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값싼 비지떡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희생과 노력이 지불된 것은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입니다.
직분을 맡는 일, 장로 권사, 집사가 되는 일에도 희생이 지불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중히 우습게 여기고,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가장 값있는 희생을 지불할 때에 직분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고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임직을 받으시는 분들도 가장 값진 희생의 씨앗을 심으시기를 바랍니다. 희생의 씨앗을 심는 곳에 우리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부흥을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1852년 2월 영국의 버큰 헤드호가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 희망봉 앞바다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 배에는 군인 472명과 그 가족 162명이 승선하고 있었는데 두동강 난 배의 한쪽이 바닷물에 잠기자 나머지 한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상어 떼가 우글거리는 밤다에서 풍랑은 점차 거칠어져 갔고, 배는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배의 뒤쪽에는 세척의 구조선이 실려있었는데 60명씩 180명이 구조선에 탈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에 휩싸여 울부짖거나 기도를 하는 아수라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때 어디에선가 북소리가 들려왔고 병사들은 갑판에 올라 함장의 명령에 따라 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척의 구조선에 부녀자들이 다 승선하기까지 함장과 병사들은 부동자세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꼼짝하지 않고 정렬한 수백명의 군인이 배와 함께 물속으로 잠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보트에 구조된 부녀자들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버큰 해드코 병사의 희생정신을 참다운 신사의 미덕으로 본받으려고 곳곳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 희생정신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을 사는 종교인의 모급을 통해서 이화 같은 희생정신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요즈음 생명없는 우상종교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육체적인 유익을 위해서 폭력배를 동원하여 난장판을 만드는 삼심각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가 타락하여 이쯤되면 끝장일 수 이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교는 생명없는 우상종교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어지지만 구원의 종교, 생명의 종교인 교회 안에도 이따금씩 폭력 사태가 일어난다는 뉴스를 접할 때 가슴아픔을 금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러한 현실을 내려다 보시면서 무엇이라고 한탄하시겠습니까 크리스챤의 삶은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러한 희생정신이 없이 육체의 유익을 위해서, 평안함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요, 있어서도 안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려다 보실 때에 얼마나 안타까와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ㅕ러분! 오늘 우리는 희생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교회가 부흥 성장하게 되어 질 줄로 믿습니다.
부흥의 원동력이 되는 세번째 요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것입니다.
20절 하반절에 보니 ‘주 예수를 전파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만을 전파했습니다. 그것이 부흥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흥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면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것이 전파되는 것은 부흥이 아닌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설교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맘을 전하는 것이 설교요, 그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철학을 전하고, 사회개혁을 논하고 어떤 사상살을 전달하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전하는 것, 그 따위의 것들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영혼을 구원해지고,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도의 최선의 방법은 “와보라”입니다. “예수님을 체험하라, 예수님을 만나보라”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와서 은혜를 나누받으십시요”라고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 방법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본 다음에 변화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고 변화받게 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다음에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라고 전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에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나에게 재앙이 떨어질 것이다. 전도하지 아니하면 당장 벼락맞고 심판받아 죽을 것이다.”라는 불타는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예수 그리스도 만을 전파하십시다. 이렇게 전도하면 복음의 원동력이 되어서 교회가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21절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전도를 하면서 “내가 전도하면 열매가 맺어질까”하는 염려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고 전도하면 주님의 손이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고 여러분이 전하는 전도의 말씀을 듣고 상대편이 감동을 받아서 주 앞에 나오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요, 열매맺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하님님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을 붙들어 주셔서 전도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은혜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예수 그리스도 만을 전하고, 환란과 핍박이 닥쳐오더라도 담대하게 목숨을 내대고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므로 몸된 교회가 부흥되어 지도록 충성을 다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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