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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교회상 (행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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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라는 단어 속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온힘을 쏟은 성도들의 땀이 있으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충성한 성도들의 눈물이 있으며 믿음을 버릴 수 없어서 자신의 피를 쏟고 죽어간 성도의 피가 있다.

인간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교회만큼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역사속에 수많은 악한 세력들이 교회를 이땅에서 없애기 위해서 온 갖 악한 방법들을 다 동원해서 성도들을 괴롭히고 유혹해 왔다. 사실 역사 속에 있는 여러가지 비 인간적인 고문의 방법들은 성도를 핍박했던 박해의 방법으로 개발 된 것이다.

교회가 겨우 시작되던 예루살렘 교회도 이 아픔을 겪었다. 기둥같은 지도 자이던 야고보가 목베임을 당하여 순교를 했고 신실했던 교회의 일꾼이요 열렬한 전도자 였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다.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도 그러한 아픔을 안고 조직된 교회였다. 스데 반 순교이후 많은 성도들이 안디옥으로 모여들었다. 심지어 이방인들 중에 서도 안디옥 교회의 소문을 듣고 안디옥 교회로 몰려왔던 것이다.

신앙 때문에 정던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교회였다. 믿음 때문에 일터를 잃고 떠나온 성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교회였다. 한번 잘 믿어 보기 위해서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믿음으로 하나된 교회였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 장 교회 다운 교회가 된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 [답다]는 말은 참으로 많은 뜻을 가지고 있 다. 여자답다 혹은 대장부답다, 교인답다, 직분자답다, 교회답다. 답다 는 말은 그 내용이 그이름에 합당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안디옥 교회야 말로 교회 다운 교회였다. 초대교회사에 등장하는 많은 교회들이 다 훌륭한 교회들이였지만 약간씩은 다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린도 교회는 분쟁과 파당이 많은 교회였고 대개 많은 교회들이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나 안디옥 교회는 교회 다운 모 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전도하는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가 급속히 부흥하게 될때 예 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잊 어 버리고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교제를 나누며 말씀을 듣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바로 이때 예루살렘에는 무서운 핍박이 일어나 온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 질수 밖에 없게 되었고 핍박을 피해서 각국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흩어진 곳 에 교회를 세우므로 복음이 소아시아 지방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교회가 시련을 받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이 다. 또한 성도가 시련을 당하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 했다. 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라고 했 다.

그러나 안디옥교회는 교회의 성장과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므로 초대교 회의 중추적 교회가 된 것이다. 교회 역사의 중요한 특징은 인물사가 아 니다. 건물의 이야기도 아니다. 교회 역사의 핵심은 바로 전도의 역사 이다. 누구의 이야기든지 전도자의 이야기가 바로 교회의 역사이다.

그래서 전도자 스데반의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빌립의 전도의 이야기 바울의 전도의 이야기로 교회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교회의 역사 를 기록할 때 철저히 전도의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역사를 잃어 버린 잠자는 교회요 전도 하지 않는 성도는 교회역사 안에 속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전도하지 않 는 성도는 교회안에 있는 이방인인 것이다. 교회의 설립 목적이 복음을 전 하는 데 있다.

딛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 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고 했다.

어떤 우편 배달부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이러한 자부심을 이야기 한적 이 있다.

자신이 배달하는 우편물이 자신에게는 종이 한장에 불과해도 그것을 받 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내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러므로 자신은 종이 한장을 배달한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운명을 배달 한다는 사명으로 편지를 배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지가 가진 물질적인 무게를 넘어서서 그 내용이 가진 무 게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전도자의 사명 역시 그러하다. 내가 전하는 단순한 메세지가 한 영혼을 깨우고 멸망의 자리에게 구원하는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2.일꾼을 키우는 교회가 교회 다운 교회다.

안디옥 교회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좋은 일꾼을 길러내 는 교회였다는 것이다. 바나바와 같은 일꾼이 그 교회에 있었고 바울 사도 역시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였다. 뿐만 아니라 마나엔 같은 헤롯의 동생이 있는가 하면 시므온과 같은 흑인이 그 교회의 중직을 맡아서 충성하였다.

그 교회의 일꾼을 보면 그 교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어떤 교회이든지 그 교회의 수준은 그 교회가 세운 일꾼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의 직분자의 수준은 우리 교회의 수준이다.

안디옥 교회는 흑인인 시므온이 바나바 다음 가는 중한 책임을 지닌 직분 자였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같은 유력한 사람이 있음에도 믿음을 쫓 아서 직분자를 세웠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안디옥 교회의 믿음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 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 교회 역시 믿음의 사람이 존경을 받는 교회로 가꾸어 가야 한다. 충 성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 교회로 가꾸어 가야 한다. 그래야 이 교회가 충성된 사람을 키울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고 전도하는 사람 이 보배롭게 대접을 받는 교회로 키워야 한다.

복된 시대는 충성된 사람이 존경받는 시대를 말한다. 저주받은 시대는 충성된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고 간사한 사람이 대접을 받는 시대를 말한 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3.남을 돕는 교회가 교회 다운 교회다.

안디옥 교회는 흉년으로 고생하고 있는 어려운 교회들을 위해서 힘껏 연 보를 거두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어려운 교회들을 도운 교회였다.

우리 교회만 하는 생각이나, 내 가정만 하는 생각이나, 내 자신만 하는 생각은 참 무서운 생각이다. 어려운 교회들을 돕는 일은 주님을 돕는 일이 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 역시 주님을 돕는 일이다. 그래서 주님은 어려 운 자를 돕지 않음이 바로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이 어떤 일을 만날때 자신에게 돌아 올 이익을 계산하는데 지혜가 있 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돌아 갈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 다. 자기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사람은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데 항상 자기를 먼저 계산에 넣는 사람이 있 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도 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 다. 바보스러워 보이고 안타까와 보인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바로 이러한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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