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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행 10: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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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은 구제가 아주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도하며 구제하는 고넬료를 기억해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기도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대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누구하고 일을 하느냐 지식이 많은 사람이거나 열심히 많은 사람과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과 일을 하는가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하십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고넬료였습니다. 고넬료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을 터셨습니다. 베드로도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율법이나 전통의 아래에 있었지만 그 율법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그대로 조건 없이 순종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를 이루십니다.
드디어 두사람이 순종하는 모습을 봅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가이사랴에 들어가 고넬료에게 갑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순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환상을 볼 때에 세 번이나 부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의 28절, 29절 베드로에게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자신도 이방인을 만나는 것이 위법인 줄을 알았습니다. 이방인과 만나서 교제를 한다는 것이 율법을 어기는 일입니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 알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법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을 택했습니다. 우리에게 세상 살면서 갈등이 참많습니다. 전통적으로 보면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의 명령에는 하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해야 되느냐, 안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넬료의 순종이 나타납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초청해 놓고 기다립니다. 고넬료는 환상을 보고 나서는 지체없이 베드로를 초청합니다. 베드로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종을 보내 놓고 나서는 일가친척을 다 불렀다는 것입니다. 일가친척만 부른 것이 아니라 또 누구를 불렀습니까 사랑하는 친구들을 전부 불렀습니다. 그들과 함께 밤을 새우면서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넬료의 영적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영적인 태도입니다. 겸손한 태도입니다. 순종하려는 태도입니다. 순종은 그 내용이 무엇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순종은 그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그 내용을 들어봐서 순종할만하면 하고 순종하지 않을 만하면 안한다. 이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순종이란 명령하시는 분이 어떤 명령을 내리든 간에 일단 순종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 영적인 태도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보고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싸움을 합니다. 무슨 명령을 내리기 전에 먼저 순종하기를 결정을 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를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미운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기분 좋으면 사랑하고, 그 사람이 나한테 태도가 부드럽지 않으면 사랑이 안됩니다. 나한테 아무리 악하게 한다 할지라도 사랑하기로 결정을 해야 해요. 용서하기로 결정을 해야 해요. 순종하기로 결정을 해야 해요. 그래야만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고넬료는 일가친척 모두를 불러다 놓고, 물론 방을 깨끗이 청소를 했겠지요. 꽃도 한 송이 꽂아 놓았을거에요.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려고 그러실까,’ 정말 가난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결정하는 사람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어디에 있던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아름다운 영적인 태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무엇이든지 순종하겠다. 죽으라면 죽겠다. 내가 계획 세워 놓은 모든 계획들을 포기하라고 하면 하겠다. 늘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 이것이 믿음의 태도입니다. 또한 가지 고넬료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25절, 고넬료는 베드로가 들어올 때 엎드려 절합니다. ‘엎드려 절하다’는 말은 경배를 의미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경과 기다림과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베드로는 그럴 만한 인격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 그런 태도를 가져 주면 그렇게 그 관계가 좋을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이 누구건 간에 그런 태도를 갖는 겁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그의 삶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가정에 이런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에 이런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만민중앙교회에 그런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모두 엎드려 절하는 그런 영적인 분위기, 서로 사랑하고 그렇게 격려하는 그런 아름다운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일은 진행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26-29, 베드로의 또다른 위대한 점입니다. 베드로의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모든 영광과 존경이 쏠려 있는데 것을 단호히 물리칩니다. 여기에 베드로의 겸손이 있습니다. 그가 거절한 말은 “나도 사람이다” 나를 신처럼 생각하지 말아라, 나도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돈을 가졌거나,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처음에는 나도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몇 년을 지나면 ‘나는 신이다, 나는 별난 사람이다. 나는 신과 같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생각을 합니다. 언제든지 자기는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어디서든지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런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인기가 있어도 조심해야 해요. 항상 나는 사람이다. 나는 구원받은 죄인이다. 여러분 영광과 존귀는 절대로 사람이 받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는 고넬료를 말렸습니다. ‘이러지마시오. 나도 사람이오’
베드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나 고넬료 두사람 다 하나님이 왜 환상을 보여주셨는지 모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고넬료가 대답합니다. 30-33절,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가 모릅니다. 순종을 했을 뿐 모릅니다. 베드로도 모릅니다. 순종했을 뿐입니다. 두사람이 왜 만났는지 모릅니다. 순종이란 순종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아요. 순종하게 하시는 분이 중요해요. 다음 단계가 무엇입니까 묻지마세요. 그냥 순종하는거에요. 요셉이 수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나님이 총리가 되기 위한 각본이다.’ 이말씀만 하시면 되는데 말하지 않습니다. 매시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삶입니다. 다음 일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보며 순종하세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가 필요했는데 제자들에게 동네에 가서 나귀를 가져오라, 그냥 가져오라니 도둑질이죠. 왜 가져가냐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주께서 쓰신다”고 하라. 다음일을 알지못해요. 오직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이런 믿음의 삶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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