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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와 고난 (행 14: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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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는 영광도 있지만 고난도 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돌에 맞아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이 영광을 주십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에 따르는 고난이 함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이 고난을 친히 겪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겪은 고난을 읽었습니다만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보면 세 가지의 고난이 있었던 것을 봅니다.
그의 육체적 고통을 소개하는 글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26-27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복음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다가 그는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육체적 고난을 겪었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12:7를 보면 질병의 고난을 겪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얼마나 은혜를 크게 받았던지 사실 은혜를 크게 받은 사람은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아주 쉽게 교만해지는데, 사도바울은 계시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하나님이 교만하지 않기 위하여 육체에 가시를 하나 딱 박아놓았어요. 늘 그것 때문에 그는 괴로워 했고, 그는 늘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바울이 당했던 육체적 고난들입니다.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했었으면 고후1:8에 보면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우리들도 사도바울과 같은 처지는 되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했으면 ‘살소망까지 끊어졌고 그가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하는 그런 느낌까지 갖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난의 모습들을 조금 보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고난을 쉽게 이길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도바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소유하고 있는 복음의 능력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는 복음 때문에 이 모든 고난을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사도바울을 고난에서 이기게 했던 능력의 복음은 무엇이었습니까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분명히 복음 때문에 고난을 겪지만 분명히 복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이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하나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 때문에 이 모든 고난들을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의 영광스러운 모습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육체적으로 고난을 겪는 것을 봅니다. 19절
복음의 반대자들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지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을 공격했던 무리들과 이고니온에서 사도바울을 비판했고 공격했던 무리들이 루스드라에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복음에 감동된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을 죽여야 된다 해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다음에 ‘죽은 줄로 알고’ 라는 말을 보면 죽을때까지 때렸던 것입니다. 얼마나 돌로 쳤는지. 여러사람이 돌로 내려쳤어요. 그리고는 죽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성밖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20, 21절,
복음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보다 더 큰 영광과 기적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죽은 줄 알았는데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다음에 일어나자마자 어디로 들어갑니까 성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이런 경험들을 합니다. 서로 싸우게 되어 감정이 격하면 그사람 보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사람 곁에 가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일어나서 바로 그 성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자기를 돌로 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다시 들어갑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또 만나는 겁니다. 사랑하니까.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나바와 함께 전도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황은 심각합니다. 돌에 맞아 죽을만큼 심각합니다. 자기를 환영하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누가 우리들을 환영하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환영을 잘 안합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그 옆에 성인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세상에 관심을 갖는데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연애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돈버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삽니까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삽니까 복음에 관심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복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이런 시시한 것들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복잡한 생활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중요한 사람은 다른 것들을 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매를 맞아 기절을 할 정도로 되었지만 하룻밤 사이에 다잊어버린 것입니다. 또다시 전도하러 간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과 내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제밤에 그렇게 싸웠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할렐루야!’ 하면서 전도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고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환경은 돌에 맞아 죽을만큼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은 그런 환경을 이겨냅니다. 사도바울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들이 복음으로 변해야합니다. 우리들이 복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상황을 탓하고 있지 마십시오. 환경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복음으로 무장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능력이 있습니다. 이 복음이 나를 승리하게 합니다.
21절,
더베라는 곳은 1차 전도여행의 반환점입니다. 이곳까지 전도한 다음에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에 바울은 그냥 안디옥으로 오지 않고 자기가 전도한 데를 다시 역으로 심방하고서 돌아옵니다. 갈때는 전도하고 돌아올 때는 전도하지 않습니다. 올때는 전도된 사람들을 양육을 하고 돌아옵니다. 전도한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양육입니다. 전도한 것으로 끝나버리면 안됩니다.
어떻게 양육을 했습니까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예수를 영접은 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거지’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없으니까 그래요. 그때 마음을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양육입니다.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두 번째로 ‘믿음에 거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골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양육은 흔드리는 생각을 붙들어주고 그 사람이 혼자 설수 있도록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세 번째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22절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대개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복받고, 기쁘고, 즐겁고, 편안하고, 이런 것만 다가르쳐 줍니다. 기적만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예수를 처음 믿음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냐하면 예수를 믿으면 축복도 있지만, 고난도 있다. 환난도 있다. 이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것만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이사람이 시련을 당하면 감당을 못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고난을 겪어야 한다. 복음은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영광에 이르기까지는 고난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저하늘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땅에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땅에 살면은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통과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사실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믿으면 항상 좋은 것만 있는 것을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극복하면서 영광스러운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23절,
그다음에 그냥 떠나지 않고 장로들을 세워 교회를 맡기고 ‘주님을 바라보도록’ 하고 갑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혼자 설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일을 마치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24-26절
안디옥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습니다. “안디옥을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라고 했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은혜에 위탁하는 것입니다. 내방법, 내 능력, 내 열정,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아래 모든 일들을 맡기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그분이 역사하는 대로 순종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을 자기의 뜻대로, 자기의 방법대로, 자기의 의지대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쉬운 일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위임하고 맡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할 수 있습니다.
(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내뜻 온전히 포기하고 주의 뜻을 좇아서 기도하며 그분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주를 따르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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